문화/생활

지난 3월 30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 21층 뷔페식당에 원로 영화배우 40여 명이 모였다. 신영균(83)씨가 총회장을 맡고 있는 ‘신우회’의 오찬 모임이었다. 황정순 고문, 남궁원·윤양하·이대근 회장, 이해룡·거룡 부회장, 김영인 총무, 전계현·조학자·조형기 이사,
김동호·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현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신영균 총회장은 한두 달에 한 번씩 원로 영화배우들을 초청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신 총회장은 “처음에는 20~30명 정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했는데 지금은 40~50명으로 불어났다. 나를 비롯해서 최은희씨, 남궁원씨 등이 돌아가며 식사 제공을 했는데, 오늘은 배우 겸 가수 장나라씨와 부친 주호성씨가 내는 날”이라고 말했다.
황정순 고문은 “모두들 건강을 유지해서 만남의 기쁨을 유지하자”고 말했고 조형기 이사는 “오늘 모임에서는 내가 막내지만 앞으로 후배 배우가 많이 참석해서 중간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신 총회장은 신우회 모임뿐만 아니라 쌀 보내기, 장학금 지급 등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신 총회장은 지난해 문화예술계를 위해 5백억원의 사재를 기부했다. 작년 10월 출연해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을 출범시켰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은 그의 사재로 설립된 재단으로, 세계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영화계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올해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을 통해 장학금 지급이 이뤄졌다. 지난 3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예술문화재단 현판식과 함께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2011년도 상반기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달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영화인회의 등 8개 영화 관련 단체로부터 추천받은 영화인 자녀 이동규(서원대 유아교육학과 1학년) 등 대학생 10명과 홍민호(경복고 3학년) 등 고교생 9명에게 4천여 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학사업은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인들의 작업 환경이 아직도 열악합니다.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와 보탬이 된다면 그것처럼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어 신 총회장은 “명보시네마테크 운영, 신영균연기예술상 제정과 함께 영화 인재 발굴 사업으로 청소년 영화제 ‘필름 게이트’와 방학 시즌 어린이 영화 체험 교실인 ‘꿈나무 필름 아트 캠프’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 연말에는 제1회 신영균영화연기대상 수상자가 처음으로 나올 예정이다.
그의 나눔과 기부 사례는 이전에도 많았다. 2006년 부인 김선희(77)씨와 금혼식(결혼 50주년)을 맞은 신 총회장은 가족과 친지를 초대하는 특별한 행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일주일 전 돌연 호텔 예약을 취소하고 한 신문사에 불우이웃돕기 성금 1억원을 쾌척했다. ‘화려한 행사를 벌여 돈을 없애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0년 초에는 아이티 지진 피해 주민 돕기 성금으로 10만 달러를 내놓았다. 그의 결정에는 가족들의 적극적인 성원도 한몫했다.
“저는 행복한 사나이입니다. 집사람에게 기부 얘기를 하자 제게 ‘장한 일을 했다’고 격려해 줬습니다. 아들은 굉장히 속이 깊고 효자입니다. 딸은 ‘아버지, 멋쟁이’라며 저를 응원했습니다. 손녀는 ‘할아버지, 존경해요’라며 기뻐했습니다.”
신 총회장은 자신도 가난과 배고픔을 몸소 겪었기에 연기에 자질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청춘극단’에서 2년 동안 연기를 하다가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해군 대위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58년 서울 회현동에 ‘동남치과’를 개업했으나 도저히 끼를 못 버려 2년 뒤 황순원 원작 <과부>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 연극을 했는데 생활이 영 말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직업적으로 전망이 좋다는 치과의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꿈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데뷔작 <과부>에서 처음 주연으로 발탁될 당시를 회고하며 그는 “배역도 좋고 작품도 좋았는데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며 “많이 고민했지만 순전히 연기에 대한 욕심 하나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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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총회장은 배우 시절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늘 불안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1960년대 친구와 함께 서울 금호동에 동시상영을 하는 ‘금호극장’을 지었다. 이후 명보극장 바로 옆에 있는 명보제과를 인수했다. 이때 부인 김선희 여사가 직접 빵을 굽고 장사도 하면서 사업을 키워 나갔다. 당시 명보제과는 뉴욕제과, 태극당, 풍년제과 등과 함께 4대 제과점으로 꼽혔다.
1977년 8월에는 명보극장을 인수했다. 그가 지난해 기부 대상을 ‘명보극장’으로 정한 것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스카라극장이 헐린 자리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섰어요. 명보극장도 팔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것마저 허물어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제 대표작인 영화 <빨간 마후라> <연산군>도 개봉했고요. 가족회의에서 아들이 ‘건물을 영원히 남겨 좋은 일에 쓰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 재단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신 총회장은 배우를 그만둔 후에는 제주도에서 영화박물관 건립에도 열정을 쏟았다. 영화는 1967년 제주도에서 촬영됐는데 당시 그는 드넓은 초원에서 영화박물관을 생각하게 됐다. 결국 1999년 제주 남원읍에 ‘신영영화박물관’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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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