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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中 한인 유학생 동아리 만든 베이징대 김용환씨



“매년 수천 명의 한국 젊은이가 ‘중국통’을 꿈꾸며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 유학 오지만, 결과는 ‘베이징통’도 아닌 ‘왕징(望京·한국인 밀집지역)통’만 돼서 돌아갑니다.

중국 신문도 제대로 못 읽는데, 인근 맛집과 관광지 몇 개 아는 정도로 그들을 미래의 ‘중국통’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제가 재중 한인 연합동아리를 만든 첫째 이유는 바로 제대로 된 ‘중국 공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베이징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생 김용환씨는 ‘베이징 마당발’이다.

베이징 외환은행 경제 강연회, 칭화대 한국유학생회 교양강좌, 장강상학원(長江商學院) 유학생강연회 등 짧은 유학 기간에 많은 강연 행사를 직접 기획·진행했다.


<주중 중국경제신문사>, 한인잡지 <좋은아침>, <Aving news> 등중국 현지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며 중국인들과의 인맥을 넓혔다.

김씨가 만든 PnF(Pioneer and Frontier)는 매일 중국 10대 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요약·번역한 웹진을 제작해 한국의 정계·재계·학계 인사 2백여 명에게 발송한다. 2009년 9월 출범해 매년 회원 모집 때마다 평균 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학원생과 직장인은 물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지원했고, 북한 대학생도 가입 문의를 했다고 한다.

김씨가 중국 기사 요약 웹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국 신문을 한 줄도 안 읽는 유학생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중국에 와서까지 한국 포털에 뜬 연예뉴스만 읽는 친구들을 보며 ‘억지로라도 함께 모여 공부해 보자’며 동아리를 만들었다.

고위 관료, 기업가, 정치인 등 일명 ‘VIP’들이 본다는 헤드라인 보고서를 입수해 비슷한 형식으로 중국발(發) 기사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PnF는 2009년 9월부터 최근까지 2백14개의 웹진을 펴냈다.

“고생해서 중국에 유학 왔는데, 이러다간 나태해지겠다 싶어 무작정 혼자 동아리 기획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중국인에겐 한국 유학생과 국가 이미지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고, 한국인에겐 중국의 진정한 실체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웹진을 통해 가장 큰 도움을 얻은 사람은 기사를 받은 분들이 아니라 직접 번역하고 공부한 저희 유학생들이었습니다.”

일명 ‘강남 8학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김씨의 학창시절 꿈은 ‘명문대를 졸업한 의사’였다. 하지만 원하던 대학을 가지 못하고 국내대학 수학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 不如樂之者·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란 논어의 말은 큰 전환점이 됐다. 대학 자퇴 후 김씨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장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학문인 커뮤니케이션을 배워보겠다”며 중국 유학을 결정했다.

유학 준비 중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여읜 김씨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 되려면 스스로 실력을 쌓아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학업에 열중했고, 결국 베이징시가 지원하는 우수유학생 장학금을 받아냈다.

“큰 꿈을 품고 중국에 왔는데, 저 자신이 중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어요. 어머니나 저나 한국 돈 20만원쯤 가져가면 대충 잘산다며 20킬로그램짜리 여행가방 하나 들고 출국했죠. 중국 물가가 싸서 다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무식했죠. 베이징과 상하이 물가는 서울과 큰 차이가 없잖아요.”



유학 준비를 제대로 못 한데다 베이징엔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살 곳을 구해야 하는데 부동산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열심히 공부한 중국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매달렸습니다. 남들보다 두세 배 더 공부했고, 대사관과 현지 기업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을 만나 교류하게 됐고, 그들이 여는 행사에 참여해 진행을 도왔습니다. 학생으로선 쉽게 만나기 어려운 분들을 뵙고 조언을 들으며 제가 중국에서 뭘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됐어요.”

김씨는 최근 한국의 예술의전당 격인 중국 국가대극원의 인턴이 됐다. 한국인으로선 최초다. 지난해 한국 정부의 고위 인사와 국가대극원 원장과의 면담에 통역으로 참여한 게 첫 인연이었다.

1년 동안 관계자들에게 꾸준히 안부를 전하며 관계를 맺어온 결과 오페라 <투란도트> 관련 인턴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었다.

“문화원 관계자분이 간단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행사에 참석했죠. 공식 면담은 영어로 진행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중국 국가대극원 측 분들이 영어를 못 하는 겁니다. 얼떨결에 제가 중국어 통역을 맡았어요. 워낙 전문용어가 많이 나와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습니다. 어학실력보다는 거의 눈치로 한 통역이 그래도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그 후로 1년간 계속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했더니, 그 ‘콧대 높은’ 국가대극원도 문을 열어주더군요.”

김씨의 꿈은 ‘진정한 중국전문가’다. 일명 ‘G2’로 급부상한 중국의 정치현상과 문화를 심층 연구해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언론인이 되겠다고 한다.

“베이징대나 칭화대는 미래 중국 리더십을 미리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그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유학생의 참모습이겠죠. 이들을 친한(親韓) 리더십으로 만들어 미래 한중 관계에 기여하는 민간외교관이 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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