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스물아홉 살 딸이 아버지의 생일에 우연히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훔쳐본다. 퀵서비스 배달원인 아버지의 휴대전화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그만 가고 싶다.’ 울컥하는 눈물을 참으며 딸은 결심한다. ‘마구 웃으며 살겠다. 오늘도 아버지는 나를 위해 죽고 싶은 거, 힘든 거, 서러운 거 꾹꾹 참아가며 살고 있는데….’”
‘박시호의 행복편지’ 가운데 한 구절이다. 박시호(56)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은 매일 아침 5백명에게 ‘행복편지’를 보낸다. 2003년부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전자우편을 통해 편지를 띄우고 있다. 정확히 아침 7시에 보낸다.
그는 “하루 일을 시작하기 전 잠시나마 제 편지를 보며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낸다”며 “컴퓨터를 켜놓고 편지 오기를 기다린다는 사람들도 있어 시간을 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편지는 읽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 시름을 잊고 행복감에 젖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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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이후 그는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새벽 공기로 마음을 맑게 한 뒤 컴퓨터를 켜고 편지를 쓴다. 평소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써놓은 글 가운데 그날의 계절, 날씨, 뉴스에 맞는 것을 골라 다듬고, 사진작가의 안목으로 사진과 음악을 더해 편지의 맛을 살린다. 실제로 그는 꽃 전문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사진과 음악을 고를 때는 아내(화가), 딸(광고 디자이너), 아들(인테리어 전문가)의 도움도 받는다. 박시호의 행복편지는 딱 5백명에게만 전달된다.
“왜 5백명이냐고요? 구글 e메일을 쓰는데 무료로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게 5백 통이거든요.” 이 때문에 편지를 받다 ‘짤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답장이나 이벤트 참여 정도로 판단해 행복편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되면 기존 독자를 빼고, 새로운 사람을 넣는다. 행복편지는 행복을 주고받는 편지인 만큼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행복편지를 받는 사람은 5백명이지만, 읽는 사람은 5천명이 넘는다. 행복편지를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구, 직원들에게 포워딩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경영철학도 ‘행복경영’이다. 그는 우체국 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으로 올 때도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을 행복하게 만들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영등포역 맞은편에 있는 우체국 예금보험지원단 사무실은 갤러리에 가깝다. 사무실은 물론이고, 복도와 화장실까지 1백50여 개의 꽃 사진 작품이 전시돼 있고, 복도와 화장실에서는 사람의 기척이 있을 때마다 음악이 흐른다.
그는 또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과 손님의 사진을 찍어준다. 아예 사무실에다 사진관에서나 볼 수 있는 스튜디오 장비까지 갖춰두었다. 방에 들른 직원이나 손님을 의자에 앉힌 뒤 카메라를 들고 갖가지 포즈와 표정을 요구한다. “20분 정도 사진을 찍으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에 대해 알게 되고 친근감도 생깁니다.”
직원이나 고객 쪽에서 보면 다른 어느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색다른 체험이다. 며칠 뒤 다양한 표정의 얼굴 사진 5백여 장을 담은 시디가 배달된다. 그는 “직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 결과는 2008년 공공기관 평가에서 기관과 기관장 모두 최상위 평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이사장은 한국타이어 직원으로 근무할 때 그 회사 사장으로 온 나웅배 씨를 만난 뒤 그의 보좌관으로 국회와 정부에서 오래 일했다. 이후 예금보험공사 설립위원을 거쳐 구제금융 시절 조사부장을 맡아 부실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을 가리는 일을 했다. 그는 “한때 정치를 할 생각도 했었으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를 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접었다”고 말했다. 사진에 관심을 가져 꽃 전문 사진작가가 되고, 행복편지를 보내 ‘행복 전도사’가 된 계기도 흥미롭다.
“예금보험공사로 왔더니 만나자는 사람이 딱 끊겼어요. 흔히 하는 말로 ‘물먹었다’고 보는 거지요. 퇴근 뒤에 바로 집으로 가는 날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곧 한계를 느껴 사진으로 바꿨어요.”
그는 친구인 유명 사진작가 김중만 씨에게 사진을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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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행복해지는 게 꿈입니다.”
그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해마다 지난 한 해 동안 보낸 행복편지 가운데 반응이 좋은 것들을 골라 ‘행복편지’란 제목의 책으로 펴내고 있다. 편지 수신자들에게 “책이 필요하면 인쇄비와 발송비로 한 권당 5천 원씩 내라”고 해서 모인 돈만큼 발행하는데, 여러 건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아 낼 때마다 2만 권을 넘었다.
그는 최근 ‘파란 행복’이란 부제를 단 세 번째 행복편지 책 편집을 마감했다. 3백30쪽 분량으로 11월 18일 발행된다. 주문이 2만7천 권이나 들어왔다. 선물용으로 수십 권씩 주문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3만 권을 발행해, 3천 권은 미처 신청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판매할 예정이다.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낼 생각이다. “책 판매 수익금과 기고나 강연을 하고 받은 돈 등을 합쳐 지난해 1천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냈는데, 올해는 강연과 기고 요청이 많아 더 많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담은 책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직원과 친구 등 사람을 만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이댄다.
박 이사장의 행복편지는 신종플루보다도 전염성이 강하다. 행복편지에 감명받아 자신도 ‘행복을 쏘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음식점 사장은 행복편지 수신자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연극 연출자는 공연에 초대한다. 행복편지가 ‘자가 증식’을 해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행복 사업 할 만하죠?
글·김재섭(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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