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독일도 수도를 분할해놓고 보니 행정 비효율과 예산 낭비 등 많은 부작용이 생겼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수도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11월 4일 한국의 세종시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논리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한국과 독일은 출발점이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각국의 문제는 각자 결정해야 한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뗀 뒤 “한국은 행정수도 분리를 경험한 독일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고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수도 분할의 부작용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와 행정부가 한곳에 있지 않으면 의견 불일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의회, 행정부, 사법부, 언론 등 민주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은 한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 분할을 강하게 만류하는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가 있다”며 “첫째는 과도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고, 둘째는 시간 낭비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행정부처를 본과 베를린으로 분할한 뒤 매년 공무원들의 출장에 따른 교통비와 체류비로만 1천만~1천2백만 유로(약 1백74억~2백8억원)가 지출되고 있다. 또 분할된 행정부처를 베를린으로 통합하는 데만 50억 유로(약 8조7천3백5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슈뢰더 전 총리는 11월 3일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독일은 통일 이후 베를린과 본으로 행정수도가 나뉘면서 좋은 경험은 하나도 없고 나쁜 경험들만 있었다”며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행정부처 분할을)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 분할로 엄청난 비용이 낭비되고 있지만 이런 비용 문제도 국가적 손실 차원에서 보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의회와 행정부가 한곳에 있지 않으면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도 분할이 국토의 균형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헛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쪽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 다른 한쪽은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의 예를 들어 “특정 부처가 다른 도시로 옮기게 되면 모든 부처가 대통령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싶어 하고, 이러다 보니 나중에는 핵심 부처와 인력은 베를린으로 모이고 크게 중요하지 않은 행정부처들만 본에 남는 상황이 일어났다”며 수도 분할의 명분으로 삼는 지역균형발전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런 현상 때문에 본이 ‘베를린의 미끄럼틀’로 전락했다고 비유했다.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핵심 부처들은 베를린에 남고 그렇지 않은 부처들은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본으로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의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논리로 정부 부처의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크게 웃었다. 그는 “한국의 상황은 한국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독일도 통일 이후 정치논리에 의해 수도가 분리됐고, 이제는 이를 통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답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로 대신했다.
 

한편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덜 받은 것은 그동안 독일이 꾸준히 추진해온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감세정책 덕분이었다”면서“2003년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시행한 경제개혁 프로그램 ‘아젠다 2010’의 결과가 이제야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슈뢰더 전 총리와의 일문일답이다.

 

만성적인 ‘독일병’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개혁정책을 추진했는데.

개혁이 어려운 까닭은 정책 입안과 집행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간차’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견해의 유권자들을 설득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젠다 2010’의 내용과 추진 배경은.

과다한 사회보장체계로 재정부담이 늘어나고, 통일 후유증으로 경제성장률이 유럽 평균 밑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노동시장의 경직으로 실업률이 매우 높았다. 이런 문제들을 타파하기 위해 2003년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보장제도 개혁, 소득세·법인세 인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아젠다 2010’을 추진했다. 이 계획을 저돌적으로 추진한 결과 독일경제는 이제 위기에도 강한 체질을 갖게 됐다.

 

개혁안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이 심했을 텐데.

당시 노동계는 개혁안에 거세게 항의했지만 심각한 위기에 빠진 독일경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심정도 무거웠기 때문에 정부를 믿고 따라줬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등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세계경제가 좌우 이념을 초월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위기는 세계경제가 더 나은 시스템을 찾아가는 과도기적 ‘성장통’이다. G20 정상회의가 새로운 세계경제 시스템의 틀을 짜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다. 빠른 속도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과 한국의 역할이 클 것으로 본다.

 

각국이 출구전략 시행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세계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시기상조다. 경제(Economy), 환경(Environment), 교육(Education) 등 ‘3E 정책’을 고려하면서 출구전략을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보는가.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가장 빠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투기성 짙은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위기 대처 인프라도 잘 갖추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정부는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세계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국의 공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한 견해는.

독일의 경험에 비춰볼 때 남북 정상의 대화는 북핵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불러오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그랜드바겐 구상은 올바른 결정으로 보인다.
 

글·성선화(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