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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희망, 기부② - 철도차량관리단 김윤섭 씨




 

서울 용산구 수도권 철도차량관리단에서 일하는 김윤섭(35) 씨는 점심시간마다 분주하게 휴게실을 돌며 폐지와 빈 종이상자를 모은다. 이것을 고물상에 팔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우간다, 몽골 어린이와 국내 소년소녀가장을 도운 지 벌써 7년째다.
 

1999년부터 철도차량 정비사로 일하고 있는 김 씨가 기부를 시작한 것은 2002년께 우연히 책에 실린 월드비전 광고를 보고서였다고 한다.
 

“‘단돈 1천원이 몇 명을 사람답게 살도록 도울 수 있다’는 구절이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적은 돈이라도 기부해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다짐했죠.”
 

이후 월드비전, 기아대책, 북한밀가루보내기 단체까지 그가 다달이 돈을 보내는 단체는 하나둘 늘어갔다. 하지만 당시 1백만원 남짓이던 월급에서 매달 9만원씩 기부하는 게 부담이 됐다. 빠듯하게 살림을 꾸리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효과적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던 김 씨의 머릿속에 노인들이 회사 후문 앞 고물상에 폐지를 모아 가지고 와서 돈으로 바꿔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차피 버려지는 전동차부품 상자와 휴게실에 버려진 신문 등을 모아 기부금을 충당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폐지가 많이 나오는데 그 폐지들이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보다는 고물상에 가져다 팔면 돈도 되고 자원 재활용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매일 점심시간을 아껴가며 부지런히 폐지를 모아왔다. 휴게실에 동료들이 보고 내버려둔 신문, 전동차 부품을 담았던 빳빳한 종이상자, 부품이 망가질까봐 꼼꼼하게 싼 속지까지 김 씨에게는 더없이 소중했다.
 

김 씨는 모은 폐지를 회사 빈터에 모아두었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고물상에 가져다 판다. 폐지가 일주일에 보통 70~80킬로그램, 많이 모을 때면 1백 킬로그램까지 모으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5만원 정도다. 여기에 김 씨의 용돈을 보태 아동복지 후원단체 네 곳에 매달 9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후원금은 몽골, 우간다 소녀와 우리나라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북한에 밀가루를 보내는 데 쓰인다.
 

“제가 처음 후원할 때 중학교 1학년이던 여학생이 올해 대학에 들어갔어요. 마치 제 딸이 입학한 것처럼 기쁘더라고요. 입학 기념으로 지갑을 선물해줬는데 이런 게 바로 기부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김 씨는 이제 자립할 수 있게 된 여학생 대신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을 새롭게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 남학생은 몸이 편찮은 홀어머니를 간호하며 가장 노릇까지 하고 있어 더욱 마음이 쓰인다고 한다.
 

김 씨의 따뜻한 손길이 스치는 곳은 국내뿐만이 아니다. 몽골에 사는 콩고루줄이라는 이름의 8세 여아를 4년째 돕고 있고, 2년 전엔 12세 된 우간다 어린이도 돕기 시작했다. 우간다 어린이는 김 씨가 매달 보내주는 3만원으로 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걸 포기하고 힘들게 일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가 보낸 돈이면 가족 한 달 생활비가 해결돼 아이가 돈을 벌어야 하는 부담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며 뿌듯해했다.
 

김 씨의 월급은 처음 기부를 시작할 때보다 두 배로 늘었지만 네 살배기 아들과 곧 태어날 아이가 있어 생활 형편은 지금도 빠듯하기만 하다. 그래서 매달 일정액을 기부하는 게 여전히 부담이다. 하지만 김 씨의 아내도 어느새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남들은 다 쉬는 시간에 왜 힘들게 나서서 폐지를 모으냐’고 말하던 아내가 이제는 텔레비전에 어려운 사람이 나오면 ‘우리 남편 장하다’고 말해요. 기부는 좋은 일이니까 어렵더라도 앞으로도 꾸준히 하자며 저를 격려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어요.”
 

회사 동료들도 시간 날 때마다 김 씨를 틈틈이 도와준다. 같이 폐지를 모으기도 하고 무거운 폐지를 옮겨주기도 한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70~80명의 동료들은 점심시간마다 분주하게 회사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김 씨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그의 후원자가 됐다. 7년째 김 씨가 폐지를 모아다 파는 회사 앞 고물상의 60대 노부부도 “(폐지를) 더 많이 가져오면 (폐지 값을) 더 많이 줄게” 하며 그를 격려한다. 그의 ‘선행 바이러스’가 서서히 주위로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다른 사람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지저분한 걸 깨끗이 정리하는 의미도 있고 어차피 버리는 폐지를 모아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부담 갖지 않으려고 해요.”
 

부지런히 ‘폐지 기부’를 이어가겠다는 김 씨는 “(기부금) 액수를 늘려가면서 앞으로도 쭉 사람들을 도울 예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김연정(연합뉴스 사회부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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