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저는 자연을 좋아해서 동물과 꽃을 그려요. 제 꿈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임윤아)
“정확한 발음이 어려워 노래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제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임승준)
임윤아(25)·승준(24) 남매는 이 짧은 이야기를 하는 데도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남매는 5만명 중 한명 꼴로 나타나는 페닐케톤뇨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그런 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윤아 씨는 삼육대 미대를 졸업한 후 지금까지 두 번의 개인전을 통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이미 여러 점의 작품도 팔린 화가다. 승준 씨 역시 삼육대 음대 김철호 교수와 가수 장사익 씨를 사사한 촉망받는 성악가다.
윤아 씨 작품의 매력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순수함이다.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단순한 선과 색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승준 씨는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가사전달이 힘들다는 약점이 있지만 대신 아무리 어려운 음정과 외국어 가사라도 한 번 들으면 통째로 외워버리는 비상한 능력을 지녔다. 목소리 역시 타고나서 승준 씨를 1년 간 가르친 가수 장사익 씨는 “영혼이 녹아 있는 최고의 목소리”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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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어머니 정선자 씨는 남매가 지금처럼 성장한 것이 그저 꿈만 같다고 한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남매는 출생 후 9년 가까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윤아의 상태가 이상해 병원에 갔더니 뇌성마비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휩싸였죠. 그래서 둘째 승준이를 갖기 전에 의사 선생님과 오랜 시간 상담했습니다. 그러나 승준이 역시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의사는 승준이도 뇌성마비라고 진단했습니다. 아무리 뇌성마비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중증뇌성마비인 경우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오진이었습니다.”
정 씨는 “당시 심정은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고 말했다. 숨만 붙어있을 뿐, 누워만 있는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간병한 지 9년 만에 국내 유일한 페닐케톤뇨증 전문가를 만나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치료제를 먹인 뒤 1분이 지나자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홉 살까지 꼼짝도 못하던 아이들이 약을 먹은 지 1분 만에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믿어지지 않았어요. 이후 6개월 뒤에 걸음마를 시작하고 아이들의 상태는 급속도로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들 남매와 부모의 고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선 경제적 문제가 피부에 와닿았다. 워낙 희귀병이라 치료제가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아 유럽에서 수입해야 했다.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비싼 데다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1년치 약값만 1억원이 넘을 정도로 경제적 부담은 살인적이었다. 중산층 가정이던 이들 가족은 계속 집을 줄여나간 끝에 반지하 셋방으로 옮겼고, 무역회사에 다니던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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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백 알의 약을 먹지 않으면 아이들은 생명을 잃습니다. 한 알에 2천원 정도 하니 두 아이들이 하루 먹는 약값만 40만원입니다. 청와대 등 당국에 수십 번 넘게 민원을 넣어 겨우 약에 붙는 세금을 낮추고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험 혜택을 받은 뒤에도 약값은 이들 부부에게 큰 부담이다. 게다가 페닐케톤뇨증과 관련해 더 나은 약이 개발되면 이 약을 국내에 들여오는 모든 일은 이들 부부의 몫이다. 보건복지가족부나 병원 등에서는 희귀질환자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기 때문이다.
“윤아와 승준이가 페닐케톤뇨증으로 밝혀진 국내 첫 환자였어요. 치료가 진행되어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KBS의 ‘아침마당’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병의 특징 등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우리 아이들과 같은 병을 앓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 방송국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윤아·승준 가족의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자칫 평생 힘들게 살거나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젖먹이 페닐케톤뇨증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아 지금은 큰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 정 씨는 “우리 아이들도 일찍부터 제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오진한 의사들이 원망스럽고, 아이들이 더욱 가엾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아이들 주위에 좋은 분이 있어 지금까지 잘 자라줬다고 생각합니다. 윤아를 친자식처럼 지도해주시는 삼육대 김천정 교수님, 승준이를 지도해주시는 김철호 선생님 모두 은인이에요. 무엇보다 자신들의 처지에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 아이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지내왔는데, 앞으로가 진짜 문제입니다.”
정씨 부부와 윤아·승준의 소원은 부모와 주위의 도움 없이 혼자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독립생활’이다. 특히 약이 생명과 같은 이들 남매는 부모나 주변의 경제적 지원이 끊긴 뒤엔 말 그대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의 경제적 독립은 더욱 절실하다.
“제가 바라는 건 다른 게 없습니다. 정부와 관련기관에서 윤아·승준이와 같은 아이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겁니다. 보험 혜택을 늘려 앞으로 혼자 살아갈 아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미술에 재능 있는 아이들에겐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공방을, 노래에 재능 있는 아이들에겐 합창단이나 그룹 등을 만들어 공연 기회를 준다면 아이들도 자신감이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최철호 객원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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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