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신지승(46) 감독과 이은경(40) PD는 10년 넘게 ‘마을영화’를 만들고 있는 부부 영화인이다. 연출은 신 씨가, 제작은 아내 이 씨가 맡는다. 배우는 전국의 마을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배우일 뿐 아니라 때론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고, 손이 모자라면 촬영 스태프로 일손을 돕기도 한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영화 자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촬영하는 일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마을영화의 개념을 세우고 활동하기까지 부부는 지난 10년간 고군분투했다. 영화사와 드라마 프로덕션에서 10여 년간 연출부 생활을 하다 한계를 느낀 남편 신 씨는 부인과 함께 1999년 경기도 양평에 터를 잡았다. 연고도 없는 곳이라 처음 몇 년 간은 힘들었지만 부부는 오히려 이곳에서 새로운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바로 한 명 한 명 개인의 소망을 담은 돌탑처럼 함께 만드는 영화, 이것이 마을영화의 시초였다.
2003년 두 사람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의식주가 가능하도록 개조한 5톤 트럭을 마련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기 시작했다. 양평, 안양, 공주, 통영, 무안, 부산 등을 다니며 바로 ‘그곳’에서만 찍을 수 있는 마을영화를 만들었다. 예정된 시나리오도 없이 실제 마을 사람들의 개성과 지역성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기본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60편의 마을 영화들은 ‘보통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공과 복수,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빚어낸 평범한 일상으로 가득차 있다. 고추 값 1백원 차이로 서로 싸우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추전쟁>, 지체 장애인과 자원봉사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포도밭의 아이들>, 농촌 마을에 놀러온 도시 아이들을 구경하는 시골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우리 마을에 횡단보도가 생겼어요> 등 마을의 단면이 담긴 모든 것들이 소재가 돼 영화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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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을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제작이 진행되는 걸까. 우선 마을 주민의 참여가 가능하고, 이야기가 있을 만한 적당한 영화촬영지를 고른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영화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한다. 처음엔 이 과정에서 “뭘 팔러 왔느냐”고 오해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입소문이 나서 ‘우리 마을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도 많이 들어온다.
마을 주민들이 동의를 하면 이때부터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영화 소재를 수집한다. 이를 통해 전체 주제를 잡아나가면서 본격적인 촬영을 하고, 편집 등 마무리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이 보통 한두 달 걸린다고 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하이라이트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달빛영화제’. 학교 운동장이나 마을회관 등에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영화 시사회를 즐기면서 하나의 축제로 마무리짓는다.
부부는 지금 이주여성들의 일상을 담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강원도 홍천, 인제 냇강마을, 경기 양평 연수리마을에서 이주여성들과 영화를 찍고 있다. 신 씨는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지에서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여성들의 얘기를 통해 이주여성들의 한국 농촌 적응기를 그려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농촌마을 사람들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영화만 만들다 보니 <집으로>나 <워낭소리>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을 때, 주변 지인들은 이게 이들의 작품으로 오인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부는 마을영화는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와도 구별된다고 말한다.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는 적은 돈으로 만들지만 극장에 상영되는 것이 목표예요. 하지만 마을영화는 극장 개봉을 위해 만드는 건 아닙니다. 또한 마을영화는 감독 개인 중심의 콘텐츠가 아닙니다. 주변 이웃과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인 거죠.”
전국 각지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닐 듯싶다. 부부는 빙그레 웃으며 마을 주민 외에도 신지승 감독의 영화 사이트(www.changc.com)를 통해, 혹은 그가 쓴 책 <떠돌이 감독의 돌로 영화 만들기>를 읽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때 마을영화를 만들었던 아이가 대학생이 돼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의 영화 만들기는 외롭지 않다.
신 씨는 “한국 사람들의 살아 숨쉬는 다양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을 담아 콘텐츠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로벌 문화산업 시대에 오히려 경쟁력이 있는 게 지역문화이고,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마을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든 마을영화를 콘텐츠로 삼아 세계 마을영화 페스티벌 붐을 일으키는 게 꿈이다. 그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올해 홍천, 양평, 인제 등지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전국 마을영화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영국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농촌프로젝트를 기획 중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세계적인 페스티벌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마을영화를 통해 삶의 소소한 일상과 행복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죠.”
글·변인숙 객원기자/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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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