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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 2년 만에 자산관리사 된 북한이탈주민 김 씨


 

2007년 2월 서울 땅을 밟은 북한이탈주민 김 모(37) 씨는 다수 북한이탈주민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 없이 식당이나 건설현장 등을 전전하는 것과 달리 서울생활 2년여 만에 고객 80명을 관리하는 금융자산관리사(FP·Financial Plan-ner)로 일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본인 말대로 ‘체제와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당황스럽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을’ 텐데 말이다.
 

그는 겉모습은 온순해 보였지만 말할 때 눈빛은 진지했고 단어 하나하나도 허투루 선택하는 법이 없었다. 조리 있는 말솜씨는 타고난 것 같다. 과연 인민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최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다웠다.
 

“아는 분이 ‘돈 벌게 해주겠다’기에 따라간 곳이 다단계 회사였습니다. 열심히 교육받고 2백50만원 떼이고 나서야 ‘사기’라는 걸 알았죠(웃음).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경험과 최선을 다해 받은 교육 덕에 한국사회의 진짜 모습을 빨리 알게 된 것 같아요. 다양한 배경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한국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배울 수 있었거든요.”

 


 

국내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들은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사회적응 훈련을 받은 뒤 임대아파트(주거지원금 1천3백만원 상당)와 정착지원금 6백만원을 받는다. 3백만원은 하나원 교육을 마친 뒤 농협 통장으로, 나머지 3백만원은 3개월로 분할해 지급된다. 통장에 들어 있던 돈을 다 날린 셈이니 국내에서 손꼽히는 보험사에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셈이다.
 

“사기사건 이후 송파에 있는 식품가공 회사에 다녔어요. 월 1백20만원 정도 받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내가 먹고살려고 탈북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어요. 이왕 할 거 성공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영업직에 뛰어들기로 했고요.”
 

이후 김 씨는 재무, 회계, 경제, 경영, 투자이론 등 관련 서적을 손에 잡히는 대로 탐독했다. 컴퓨터학원을 다니면서 정보처리기술 관련 국제공인 자격증도 땄다. 처음엔 복잡한 금융용어 익히기에도 벅찼다. 그래도 1999년부터 8년간의 중국 망명생활 시절 틈틈이 한국 방송으로 봐둔 코스피니 주식이니 하는 개념들이 도움이 됐다.
 

탈북민 대부분이 투자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게 김 씨는 안타깝다. 전문직 종사자 북한이탈주민 모임인 ‘NK지식인연대’에서 금융 관련 강의 요청이 왔을 때 흔쾌히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씨는 하나원 이후의 교육 부재가 아쉬운 점이라고 했다. “하나원에서 받는 영어나 외래어, 한자, 역사, 정치 교육도 물론 필요하다”면서도 “이론교육보다 직업현장에서 실습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게 남한사회 정착에 더 본질적이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의 꿈은 두 가지다. 먼저 실력을 인정받는 자산운용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롤모델로 ‘워런 버핏’을 거명했다. 다른 하나는 북한에 있는 아내와 네 살배기 딸, 부모님과 형제들을 데려오는 것이다.
 

글·대한민국정책포털(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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