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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버즈 알 아랍’은 ‘세계 유일의 7성급 호텔’로 불릴 정도로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급 호텔이다. 하루 평균 숙박비가 750만 원, 로열스위트룸은 3500만 원에 이른다. 주로 국가원수들이나 세계적인 갑부, 할리우드 스타, 유명 운동선수 등이 이용한다.

당연히 음식 수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일 터. 이곳 주방장은 그야말로 세계 모든 조리사들의 꿈인 ‘세계 최고 셰프’인 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 ‘호텔 수석총괄조리장’은 한국인 에드워드 권(권영민·37)이다. 그가 만든 풀코스 요리를 즐기려면 최소 300만~5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그 돈을 낸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요리를 해주지는 않는다.

그는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선 영웅이다. 지난해 말 출간된 그의 자전 에세이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성공신화는 결코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학력 차별, 외국에서는 인종 차별이라는 장벽을 꿈과 열정으로 뛰어넘은 결과다.

원래 그의 꿈은 신부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안의 반대로 좌절되면서 인생 진로가 바뀌었다.

“재수를 위해 무작정 상경했어요. 그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주방 일이 요리에 입문하는 계기가 된 거죠. ‘제법 손재주가 있다’는 칭찬을 들었거든요.”

강릉영동대 호텔조리과에 입학한 그는 2학년이던 1995년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현장 실습을 할 기회를 얻게 됐다. 3개월 후 실습생 가운데 그만 유일하게 정식직원으로 채용됐다.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한 덕분이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주로 외국인 조리사들과 함께 일하며 실력을 쌓았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새벽마다 학원에서 영어도 배웠다. 이렇게 쌓은 외국인 조리사들과의 인맥으로 2001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리츠칼튼호텔로 옮기게 됐다. 첫 직급은 세컨드 쿡(Second Cook). 하지만 3개월 만에 퍼스트 쿡(First Cook)으로 승진했고, 이듬해에는 수 셰프(Sous Chef·조리과장)로 올라섰다. 남들은 10년 걸릴 일을 2년 만에 해낸 것이다. 2003년에는 미국조리사협회가 선정한 ‘젊은 조리사 톱10’에 뽑히기도 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2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지만 전 남들이 2년 일할 때 6년을 일한 것만큼 했어요. 처음엔 정말 힘들었죠. 인종 차별로 무시도 많이 당했고요.”

2004년 서른셋의 나이에 국내 5성급 호텔 부총주방장으로 금의환향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젊은 나이에 외국인 대우를 받으며 돌아온 그에 대해 적대적인 시선이 더 많았다. 이때 1년 동안 외국에서 당한 것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좀 더 다양한 요리를 익히고 싶다는 갈증도 있었다. 진정한 조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폭넓은 지식을 가진 셰프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세계로 눈을 돌렸다. 중국 톈진 셰러턴그랜드호텔 총주방장을 거쳐 두바이에 간 것도 아시아 요리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많은 젊은 후배들이 지금의 저를 부러워한다고 들었습니다. 전 지금 제 꿈의 반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의 제가 여러분의 꿈의 종착점이라면 너무 슬픈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음식을 세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 요리 트렌드에 맞는 한식 요리책 집필을 준비 중이다. 현재 메뉴작업이 반 이상 진행된 상태라고 한다. 또한 한국음식의 식재료와 서양요리를 접목한 레스토랑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쉽게 그들의 음식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그들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음식 세계를 보여줄 그런 레스토랑을 상상하고 있어요.”

마지막 꿈은 세계 최초의 요리사관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키부츠 형태로 운영되는 무료 요리학교지만 시설과 교수진, 기숙시설, 부대시설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갖출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이미 몇몇 세계적인 셰프들로부터 동참 의사를 확인했다며 “이제 돈만 마련되면 된다”고 웃었다.

“3년 과정으로 전 세계의 요리 트렌드와 언어, 지식 그리고 식재료에 대해 가르칠 겁니다. 학교 내에 레스토랑도 운영해 현장 실습 능력을 키우고, 데코레이션과 인테리어 교육도 병행할 겁니다. 농민, 어민, 낙농인의 땀을 아는 셰프들을 양성할 겁니다. 특히 외국학생은 한국음식 조리 교육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할 겁니다. 그게 ‘한식 세계화’의 지름길이 아닐까요.”

그는 경제위기 때문에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하려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저 역시 호텔에 취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닥쳤어요. 진급과 급여가 3년 가까이 동결됐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죠. 미국에 갔을 때도 1년도 안돼 9·11테러가 발생했어요. 다음날 출근하니 절반 이상의 직원이 해고를 당했더군요. 하루 20시간씩 일했어요. 이왕 시작한 것 끝장을 보고 싶었고, 내가 해고자 명단에 올려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거든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에겐 그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답니다.”

글·최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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