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발간된 지 몇 주 만에 30만부 이상 찍었다는 사실보다는 한 젊은 여성이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 소설을 읽고 있더라는 소문에 그 작가를 더욱 만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신경숙. ‘풍금이 있던 자리’ ‘리진’ ‘외딴방’ 등으로 이미 문단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인 신 씨는 지난 연말 세상에 내놓은 소설 ‘엄마를 부탁해’로 독자들의 눈물샘을 곳곳에서 자극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지하철,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엄마를 부탁해’를 읽어서는 안 된다”는 ‘금지령’까지 돌 정도다. 눈물로 얼룩진 모습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설 연휴를 앞둔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탈미술관 카페에서 만난 신 씨는 창문으로 스며드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말문을 열었다.
“눈물을 주려고 쓴 것이 아니라 행복을 주려고 쓴 거예요. 눈물은 사실 슬퍼서만 아니라 감정이 정화되거나 치유될 때도 흘리지요. 그런 눈물이길 바래요. 엄마라는 존재는 소중하지만 늘 잊고 지내며 소홀히 생각하잖아요. 저도 열다섯 살 때 집을 떠난 이후로 근 30년 동안 엄마랑 나흘 이상 같이 지낸 적이 없었어요. 이 작품을 쓰는 일이 엄마를 찾아나서는 일이었어요.”
행복의 동산에 이르기 위해서는 슬픔의 강을 건너야 하는 것을 작가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을 먼저 이야기했다.
“재작년 겨울에 엄마가 저희 집에 보름 동안 머문 적이 있어요. 마땅히 주무실 공간이 없어 제 서재에서 주무시곤 했는데 가끔 새벽에 눈을 떠서 글을 쓰고 있는 저와 눈이 마주치곤 했습니다. 엄마 곁으로 내려가 나란히 누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때 거의 완벽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그런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고맙더군요. 반성도 했어요. 그동안 내 일만 하느라 엄마에게 얼마나 인색했나를 깊이 깨달았던 거죠. 나는 작가니까 그 행복과 반성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뭔가에 막혀 진전이 없었는데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말을 찾아내면서 다시 집중해 소설을 쓸 수 있었습니다.”
신 씨는 그 어간에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됐다고 한다.
“엄마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존재로만 생각했어요. 엄마는 어린 시절도, 소녀 시절도 없이 처음부터 내 엄마로 태어난 사람으로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지난 이야기를 하시다가 울컥 하시더니 제 품에 안기시더군요. 엄마와 딸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이었죠. 이렇게 약하기도 한 게 내 엄마였구나, 한 인간으로서 엄마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잊혀진 엄마’는 공동체 해체의 상징
신 씨는 ‘엄마의 새로운 발견’을 위해 소설 속에서는 ‘엄마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설정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첫 문장을 만나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이 문장의 탄생이 큰 장벽을 밀어내줬어요. 늘 함께 있어줄 것 같았던 엄마를 잃어버린 후 엄마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큰딸, 아들, 아버지, 작은딸 그리고 엄마 자신의 입을 통해 엄마라는 존재가 각자의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깨달아가게 되지요. 엄마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우리가 엄마를 어떻게 잊고 혹은 잃어버리며 살고 있는지를 짚어나갔어요. 그 과정에서 엄마의 노고와 상징이 복원되는 소설입니다. 제가 소설에서 묘사하려고 한 엄마의 모습은 고전적인 전통의 어머니만은 아닙니다. 소설 속 여러 화자들을 통해 현대의 어머니, 지금 어머니로 살고 있는 모습, 앞으로 어머니가 되려는 모습 등을 모두 담고 있어요. 시대와 함께 변하기는 해도 엄마라는 상징은 정서적으로 영원한 울림을 주는 것이잖아요.”
이 소설이 올해 벽두부터 화제가 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는 상징이 사라진 것에 대한 뒤늦은 자각 때문일 수도 있다. 경기 침체로 ‘피곤한 어깨를 늘어뜨린 아빠’ 대신 그동안 우리 가족들을 잉태하고 기르고 돌본 ‘희생양 엄마’에게서 위로를 받으려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으로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소설은 엄마에게 위로받자는 게 아니라 엄마를 위로하자는 소설입니다. 전통사회의 해체는 자연스런 흐름이었지 누가 일부러 부순 건 아닙니다. 산업사회와 핵가족화 사회로 되면서 엄마 같은 느낌을 주는 전통적 공동체분위기도 파괴됐지요. 공동체의 해체는 엄마의 실종으로 상징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엄마는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을 모두 하신 분이에요. 아버지는 성품이 자상하신 데다 몸이 병약하셨기 때문에 돌보아드려야 할 분이었어요.”
그 때문인지 신 씨의 다른 작품에도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권위적이거나 억압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족을 지탱하는 큰 힘이 엄마라는 존재인데 그동안 너무 주변부에만 뒀다는 겁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하기 위해서 ‘나’ 로 살지 못했던 엄마의 시간들을 위로하고 사회적으로도 자리매김해서 제 위치를 찾아드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위로하는 관계로 봐야죠.”
북한산 자락에 살고 있는 신 씨는 “요즘 북한산을 등산할 때면 홀로 된 아버지, 늙은 아버지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면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때일수록 가족들이 경제적 짐을 나눠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에게만 지울 수 없습니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생겨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핏줄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함께 사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인 셈이지요. 인간적으로 대하고 배려하고 서로 소통하는 것, 우리가 함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신 씨를 키워온 힘이 무엇이냐고 묻자 ‘엄마에 대한 헌사’는 다시 살아났다.
“엄마의 힘이지요. 엄마의 상징이 죽어버린다면 세상은 문을 닫을 거예요. 왜냐면 엄마는 모든 생명의 시작이니까요. 누구 말대로 신이 모든 사람들을 돌볼 수 없어서 어머니를 세상에 내려 보낸 것 아니겠어요? 이 소설이 연재될 땐 4장까지였어요. 쭉 따라 읽어온 분께서 너무나 슬픈 얼굴로 ‘어떻게 길 잃은 엄마를 파란 슬리퍼를 신긴 채 움푹 파인 상처 입은 발등으로 거리를 방황하게끔 두고 끝내려 하느냐’고 말씀하셨던 게 계속 마음에 남았어요. 그래서 에필로그를 썼습니다. 엄마라는 상징을 잃어버렸을 뿐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겨두려구요.”
글·안기석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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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