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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검 검사들, 사건 뒷이야기 담은 수필집 펴내




 

최근 창원지방검찰청 평검사들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검찰 세계와 사건 뒷이야기를 담은 책 <熱(열)과 誠(성)을 담아>를 냈다. ‘창원지검 검사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단 2백45쪽 분량의 이 책은 지난해 8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창원지검 평검사들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과 결과를 담담하게 담은 수필집이다.

글을 쓴 사람은 20~40대 평검사 32명. 책에는 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진실을 파헤친 사례 23건을 비롯해 사건 관계자한테서 감사 인사를 받은 사례 7건,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된 사례 5건, 최선을 다해 피해자를 지원한 사례 3건, 기억에 많이 남는 사례 9건 등 각자 한두 건을 기고해 총 47건을 담았다.

서정화 검사는 지난 3월 인터넷 물품사기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던 피고인 A(20)씨에게 온정을 베푼 경우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집을 나가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방황하던 학생 A씨는 재판 당시 작은 체구에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서 검사는 재판 후에도 A씨가 자꾸 눈에 밟혀 희망을 줄 수 있는 책 몇 권과 직접 쓴 편지를 교도관을 통해 전달했다.

서 검사는“어려운 환경 때문에 좋지 않은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다 하더라도 환경만을 탓하기엔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너무나 눈부시고 희망이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한번 살아보라. 앞으로 언제 어디에 있든 잘 해낼 것이라고 믿겠다”고 편지를 썼다.
 

또 A씨에게 한비야의 저서 <그건 사랑이었네>를 보내면서 책 내용 중에서 ‘인생을 축구에 비유하면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아직 전반전을 반도 뛰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는 구절을 인용하는 등 희망의 메시지를 편지에 적어 보냈다.

1주일 후 서 검사는 A씨의 답장을 받았다. A씨는 “가족 외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는데 관심을 받게 돼 너무 놀랐고, 앞으로 인생을 멋지게 한번 살아보겠다”고 썼다. 서 검사는 이 답장을 ‘믿음과 희망의 부메랑’이란 글에 덧붙이며 “처음 임관했을 때 검사장님에게서 한 사람이라도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검사로서의 큰 보람이라는 말씀을 듣고 소년범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썼다.

‘50대 노총각의 잘못된 사랑’이란 제목 아래 신현성 검사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탐정소설 형식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었다. 당사자의 진술 외에 객관적인 증거가 없을 때 부단한 노력을 통해 결국 객관적 증거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근거로 진실을 밝힌 것이다.

피의자인 50대 초반의 노총각 B씨는 휴대전화 가게에 찾아갔다가 여주인 C씨에게 호감을 갖고 음식도 사주고 휴대전화 가입 건수도 여러 차례 소개해주는 등 친밀하게 지냈다. 하지만 B씨는 C씨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무시한다면서 이를 따지기 위해 가게를 찾아갔다. 말다툼을 하던 B씨는 홧김에 아이스바일(빙설 등반 시 경사진 곳을 오를 때 사용하는 등산장비)로 C씨를 때리고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B씨는 아이스바일로 때린 사실은 인정했지만, 성폭행을 시도한 사실은 없다고 결백을 거듭 호소했다. 신 검사는 딜레마에 빠졌다. 두 사람의 상반된 진술만으로는 진상을 규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건의 열쇠는 사건 당시 B씨의 복장이었다. B씨는 범행 당시 등산복 차림에 등산화를 신었다고 진술한 반면, C씨는 B씨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었기 때문에 등산 가는 복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성폭행을 하러 왔다는 취지의 진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신 검사는 결정적 증거가 될 트레이닝복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B씨의 자취방을 압수수색해 문제의 트레이닝복과 슬리퍼를 찾아냈다. 하지만 트레이닝복은 낡을 대로 낡았고, 슬리퍼도 앞쪽이 터져 밖에서 신고 활동하기가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

신 검사는 압수수색 결과를 바탕으로 C씨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실시해 성폭행 부분은 무혐의 처분을 하고, 상해 부분만 공소를 제기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성폭행범으로 몰릴 뻔했던 50대 노총각의 사랑은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김지완 검사는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 속 이야기 같은 살인사건’이란 글로 소개했다. 김 검사는 지난해 10월 말 경남 김해시 삼방동 신어산에서 발견된 백골시체 살인사건을 배당받았다.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 내용은 피의자 D씨와 E씨가 2008년 3월 16일쯤 신어산에서 피해자 F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피해자 F씨를 살해하고 흙과 낙엽으로 덮어 시신을 유기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자칫 영구미제로 묻힐 뻔했으나 김 검사는 E씨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고 D씨가 평소 거짓말을 잘한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그 후 D씨에 대한 영상녹화 조사를 실시하는 등 끈질긴 수사 끝에 D씨에게서 범행일체를 자백받아 D씨의 단독범행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김 검사는 “피의자의 사소한 알리바이 주장을 무시하지 않고 치밀하게 수사함으로써 자칫 중형을 받을 수 있었던 한 사람의 누명을 벗겼다는 데 보람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 책은 시중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7월 9일 서울 북부지검으로 자리를 옮긴 이창세 검사장이 사비를 털어 2백 권을 발간해 이임 선물용으로 나눠줬다. 이 검사장은 책머리에서 “신뢰받는 검찰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던 창원지검 검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더욱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글·이동렬(한국일보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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