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올해도 어김없이 따스한 봄날이 오고 있다. 만개한 꽃잎을 닮은 산뜻한 옷차림으로 길거리를 나다니는 사람들은 겨우내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햇살에 녹인다.
그러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길 한편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춥고 음습한 이곳은 1년 3백65일이 겨울이다. 누군가는 인생을 길에 비유하지만, 실제 길에서 사는 인생은 녹록지 않다. 어쩌다 눈부신 봄 햇살을 마주하더라도 그들은 이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린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봄을 느낀다는 것은 ‘사치’이자 ‘수치’이기 때문이다.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최준영(44) 교수는 이런 그들에게 6년째 따스한 봄날을 선물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인문학을 통해서 선물을 전한다.
2005년 9월 그가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노숙인들을 모아 인문학 강의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세상은 호기심 반 의구심 반이었다. 그러나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시작한 인문학은 점차 싹을 틔어나갔다. 재소자나 차상위계층과 같은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가정주부와 직장인들, 그리고 기업 최고경영자(CEO)에 이르기까지, 낮은 곳에서 시작된 인문학은 이제 ‘시민인문학’이란 새로운 흐름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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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인문학의 힘이 무엇이기에 노숙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인생의 답’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까. 최 교수는 “그런 질문은 숱하게 들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하루, 이틀을 견디기 위해 밥이나 잠자리가 필요한 건 당연해요. 하지만 인생이란 큰 여정을 걸어가려면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내가 왜 사는지를 모른다면 느슨해지고 나태해지다 결국 삶을 포기하기 때문이죠. 물질적인 것들이 채워주는 것은 단지 그때뿐입니다. 삶의 방법을 찾기보다 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최 교수가 노숙인 인문학 강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필연에 가깝다. 어린 시절 그는 낮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야학으로 공부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지만 졸업을 하진 않았다. 대신 자신을 가르쳤던 야학 선생님들을 따라 자신도 야학 선생님이 됐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성프란시스대학 설립자 임영인 신부의 “노숙인들을 가르쳐달라”는 간곡한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글쓰기는 학기마다 가르쳐야 했는데 몇몇 교수님들이 계속 거절했나 봐요. 아무래도 ‘선생님’들(그는 노숙인들을 이렇게 지칭했다)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겠죠. 그러나 저는 제 인생 자체가 험난하다 보니 오히려 선생님들을 만난다는 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분들과 어떤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오히려 기대됐고요.”
그를 거쳐간 ‘선생님’들은 벌써 수백명이 넘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 교수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건 첫 제자들이다.
“성프란시스대학 1기 졸업생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선생님이 말기 암 선고를 받았어요. 죽기 전 함께 공부했던 동문들을 만나고 싶다고 부탁해 모두가 함께 모여 운동회를 열었죠. 복수가 차올라 거동조차 불편했지만 여러 차례 제게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말 감동적인 것은 선생님이 돌아가신 다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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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가 없는 노숙인은 장례를 치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 교수와 그의 동문들은 단 하루라도 장례를 치르길 원했다. 빈소를 찾은 노숙인들은 가족의 죽음을 목도한 것마냥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닳아 해진 양말 속에서, 시꺼먼 점퍼 주머니 속에서 5천원, 1만원을 슬그머니 꺼내놓고 사라졌다. 그렇게 모인 돈이 1백만원쯤 됐다. 장례를 치르고도 남을 돈이었다.
“선생님들이 감정도 없고 의리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 역시 보통사람들입니다. 단지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죠.”
최 교수는 거의 모든 수업시간마다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한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문장력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을 쓰라고 강조한다.
“가장 행복했거나 어려웠던 이야기를 글로 쓰게 한 뒤 발표를 해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만 고생한 게 아니구나, 저 사람도 힘든 삶을 살았구나’ 하며 눈물을 흘리죠. 이렇게 글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의 발전도 꿈꾸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인문학의 ‘문(文)’자가 혹시 ‘무늬 문(紋)’자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봐요. 인간이 살아온 무늬를 연구하는 학문,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긴 학문이라는 거죠.”
최 교수는 그들이 인문학을 통해 회복된 삶을 얻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인문학 강의를 듣고 다시 일어선 사람도 있지만, 결국 또 혼자라는 외로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채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는 이들의 회복에 자신감을 줄 수 있는 희망의 주파수를 꿈꾼다.
“서울역이나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생각해봤어요. ‘57분 배식정보’, 개인회생·파산에 대한 금융 전문가의 조언, 이들을 찾는 가족들의 메시지 등을 들려준다면 다시 희망의 끈을 찾지 않겠어요?”
녹음이 좀 더 짙어지면 최 교수의 발걸음은 더 바빠질 것 같다. 그가 맡은 글쓰기 강의가 여성 노숙인 쉼터 아가페, 충정로 구세군 브릿지 등에서 시작되기 때문. 그는 매번 강의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 실린 니체의 명언을 읊조렸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란 말이 있어요. 삶의 의미를 알게 되면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죠. 지금은 비록 이런 상태지만 10년 후 가족을 만나겠다든지, 딸의 결혼식에 가겠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선생님들이 저의 발길을 마다하지 않는 강의실에서 그분들과 마주하며 인생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최 교수는 최근 그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고이 간직한 책 한 권을 펴냈다. 그가 만난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듯 샛노란 표지가 인상적이다. 그의 첫 제자가 인터뷰에서 말했던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를 제목으로 삼았다.
글·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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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