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당신의 꿈을 눈앞에 펼쳐드려요. 당신과 함께 꿈꾸고 이뤄나가고 싶어요.”
꿈. 생각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단어지만 입 밖으로 내본 지가 언제던가. 유년의 꿈은 삶의 더께에 파묻히고 바쁜 일상에 찌들어 마음 속 금고에 자물쇠를 채운 지 오래다. 갇힌 꿈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홀연 의식에서 맴돈다 한들 그냥 웃고 만다.
그런데 그는 호기롭게 꿈을 논했다. 사람들의 꿈을 그려주는 ‘드림 페인터’(Dream Painter) 박종신(38) 씨. 자기소개도 사뭇 꿈결 같다.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꿈이 이뤄지도록 꿈의 한 장면을 그리는 화가예요. 그저 그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꿈을 이루고 싶어요.”
그의 ‘액면’은 썩 보잘것없다. ‘드림 페인터’란 직업이 있다고 하나 돈을 받고 그려준 적이 없고, 일정한 수입도 없으니 백수에 가깝다. 경기 남양주시의 조그만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사는 처지에 부인과 여섯 살짜리 딸을 둔 가장. 통속적인 가치로 따지면 그는 남의 꿈까지 들먹일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는 빛났다. 속도 편해 보였다. 그 자신의 꿈 얘기부터 들어봐야 했다.
박 씨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나 화가였다. 만화, 상상화 등을 그리기 좋아했던 터라 예술고에 들어가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꿈은 현실을 이기지 못했다. “예술가는 밥벌이가 힘들다”는 부모의 설득에 1991년 경성대 일어일문학과에 들어갔다.
우회로, 아니 엉뚱한 이정표를 따라가서 그랬을까.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했다. 허전함을 달래고자 그림을 꾸준히 그렸고, 그 솜씨가 알려져 일본어 교재를 집필하는 교수의 부탁으로 삽화를 그렸다. 비슷한 업종이다 싶어 1997년 대학 졸업 후엔 1년간 컴퓨터그래픽과 웹 디자인 공부도 했다. 덕분에 출판사에 취직했는데, 그림은커녕 방문교육사원, 실내디자인, 온라인비즈니스마케팅 등 다른 일만 했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는 사이 그림에 대한 미련만 더 커졌다. 꿈은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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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깊어가던 지난해 9월 친한 회사 동료가 답을 줬다. “너처럼 확실한 꿈이 있으면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 일을 해보겠다. 뒷일이 두려워 못한다면 의지가 없는 거지”라고. 박 씨는 용기를 얻고 가족을 설득했다.
그간 모아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살림을 꾸려가야 했지만 부인 이학선(36) 씨는 남편의 완강한 뜻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어릴 적 꿈이 의사였으나 평범한 주부로 사는 부인은 자신은 몰라도 남편의 꿈만큼은 이뤄주고 싶었다. 박 씨의 첫 작품은 한 손엔 지구본을 들고 다른 손엔 붓을 들고 해맑게 웃는 박 씨 자신을 담아냈다.
지인들에게 드림 페인터의 취지를 알렸더니 “굉장히 이색적”이라고 신기해하며 호응했다. 이후 “꿈을 그려달라”는 부탁이 들어와 10명 정도를 그려줬다. 물류 전문가를 꿈꾸는 무역회사 직원에게는 세계지도와 거대한 컨테이너 선박을 배경으로 해상왕 장보고와 나란히 선 모습, 글로벌 MC를 꿈꾸는 이에게는 오프라 윈프리, 데이비드 레터먼, 래리 킹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 등을 그려주었다.
그의 그림들은 익살맞지만 편한 구석이 있다. 그는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라 그림 속 꿈의 한 장면을 보면서 늘 마음속으로 준비하라는 뜻을 그림에 담는다”고 했다.
박 씨는 짧게는 하루 꼬박, 길게는 일주일도 넘게 걸리는 고된 작업을 하면서도 마냥 행복했다.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제 꿈을 실현하고 상대방과 응원과 격려를 나누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드림 메이트’(Dream Mate)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죠.”
그는 “꿈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아쉬워했다. 꿈을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등바등 먹고살기 바쁜 현실에 치여 사람들은 상상을 펼칠 머릿속에서조차 꿈을 지운다고 했다.
박 씨는 특히 꿈 없는 청소년들이 많은 현실을 개탄했다. 대학 입시와 진학에만 매몰되는 교육제도 탓에 주위를 돌아보고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저도 30대 초반에 꿈을 찾았어요. 10년 정도만 빨랐어도 현재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겠죠. 꿈은 미래의 자화상인데 젊은이들이 ‘글쎄요…’라며 주저할 땐 정말 안타깝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 1월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 시대를 살며 꿈을 실현한 위인 1백명을 그리는 ‘백인몽(百人夢) SEASON 1’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인도의 독립을 바랐던 간디,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비행을 했던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백범 김구 선생 등 꿈을 실현하기 위한 위인들의 노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꿈을 이루도록 그들의 삶을 반추해보자는 게 취지다. 지금까지 20여 명을 그렸고, 1백명이 완성되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일반인 1백명을 그리는 ‘백인몽(百人夢) SEASON 2’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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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에게도 현실은 팍팍하다. “꿈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꺼려져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준 적이 없다”고 하니 생계는 웹디자인 등 부업으로 꾸릴 수밖에 없다. 꿈은 이뤘으되 드림 페인터가 온전한 직업이 되지는 못하는 현실에 부딪힌 것이다. 그래도 그는 “쉽게 포기할 거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꿈은 꿀수록 커지는 법이다. 드림 페인터로서 1차적인 꿈을 실현한 그는 앞으로 1만명의 꿈을 그리고 묘비에 ‘그와 함께한 꿈은 이루어졌다’는 글귀를 남기는 게 마지막 꿈이다. “대충 계산해보니 하루에 한 명만 그려도 30년 가까이 걸리던데, 과연 죽기 전에 가능할지 모르겠어요”라며 그가 또 웃었다.
서너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엔 수많은 이들의 꿈이 웃고 있다. 지금은 “파일럿이 되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던 한 공무원의 꿈을 그리고 있다. 그는 “그분이 꿈을 말하면서 정말로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나도 덩달아 힘이 났다”고 했다. 만약 한동안 잊었던 꿈이 떠올랐다면 드림 페인터 박종신 씨의 홈페이지(dreampainter.co.kr)로 들어가보는 건 어떨까.
글·박민식(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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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