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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래머’ 김효정



 

2003년 4월, 스물여덟 김효정(35) 씨는 15킬로그램 무게의 배낭을 메고 서부 아프리카의 모로코 사하라사막 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이후 2005년 4월 중국 고비, 2006년 7월 칠레 아타카마, 2007년 10월 동부 아프리카의 이집트 사하라, 2008년 11월 남극…. 그에게는 어느새 ‘세계 여성 중 세 번째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래머’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그리고 그 동안의 사막 레이스 경험을 담은 책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를 펴냈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사막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냥 사막이 좋아 떠났어요. 기록을 세워보겠다는 마음이었다면 진작에 주저앉았을 거예요. 사막을 좋아하게 된 이유요? 영화 <무사> 제작팀에서 일하던 2000년 중국 중웨이사막에서 처음 매력을 느꼈어요. 50도가 넘는 허허벌판 그곳에서 ‘바람 한 점도 참 아름답다’고 느꼈거든요.”

영화 프로듀서인 김 씨는 그 뒤 귀국해 사막행을 결심했다. 신한은행 박중헌 지점장이 한국인 최초로 사하라사막 마라톤에 출전한 모습을 담은 ‘사하라에서의 7일, 한 은행원의 일상탈출’이라는 방송을 보고, 그는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고 했다.

“40대 중반 아저씨도 저렇게 뛰는데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 싶었어요. 청춘을 이렇게 내버려둬선 안 되겠다 싶어 새벽 수영부터 등록했죠. 몸을 만들려고요.”

처음 사하라사막 마라톤에서 김 씨는 달리지 않았다. 지글대는 태양 아래서 뛸 힘도 없었거니와 ‘경쟁하기’는 이미 한국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부드러운 모래, 시원한 바람, 반짝이는 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했다.

사막은 그저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의 레이스 동안 내리 12시간이나 화장실을 못 갈 때도 있었고, 발톱이 빠지고 발바닥은 물집투성이였다. 어지럼증은 기본이고, 몸이 붓고 속도 메슥거렸다. 끝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혼자 걸어갈 때의 외로움은 밤이 되면 싸늘한 공포로 변했다. 김 씨는 “20, 30대를 보내면서 알지 못한 ‘동행’의 가치를 온몸으로 깨우쳤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막 레이스에 참가하며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낙오’의 두려움이었다고 했다.

“2005년 고비사막이 최악이었어요. 출발한 지 30분 만에 코스를 이탈하고 말았으니까요. 앞선 이들의 발자국은 물론, 코스를 표시하는 분홍 깃발도 보이지 않았죠. 비상신호용 호루라기를 꺼내 20분 동안 불어대며 달렸어요.”

그는 거울로 빛을 반사해 구조 신호를 보냈고 그러길 5분 만에 멀리서 행사 진행을 맡았던 자원봉사자들이 달려왔다. 알고 보니, 인근 마을 주민들이 코스 표시 깃발을 신기하게 여겨 하나 둘 뽑아가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세계 5대 사막 레이스 1천5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거의 꼴찌였고, 탈락 2분 전에 골인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박수는 많이 받았습니다. 사막에선 꼴찌에게 가장 많은 갈채를 보내거든요. 누구를 이겼느냐보다 자신을 이겼느냐를 더 값지게 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걷는 사이 내 속의 상처들이 아물었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죠.”

김 씨는 사막에서 만난 사람들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막에 간다”며 참가한 60대 일본 할아버지, 군 복무 중 22세의 나이에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잃은 시각장애인 송경태 씨 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추억 속에 남았다.
 

“2003년 모로코 사하라사막 마라톤에서는 프랑스에서 온 50대 남자 둘이서 손을 맞잡고 사막 위를 걸었어요. 그중 한 사람이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병에 걸렸고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가 ‘더 늦기 전에 이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보여주겠다’며 친구를 사막으로 이끌었던 거죠. 그는 사막을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끊임없이 친구에게 설명했어요. 시력을 잃어가는 다른 친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죠.”

김 씨 같은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래머는 전 세계 남녀를 통틀어 50명이 안 된다. 완주 메달을 거는 순간, 그도 다른 그랜드슬래머처럼 눈물을 흘렸다. 기쁨보다는 ‘허무함’에 흘린 눈물이었다.

“목표 달성, 성취 뒤의 허탈감이 그렇게 큰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열병을 앓던 것처럼 꿈꿔온 일이 이뤄지는 순간 가슴이 텅 빈 듯한 겁니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공허함에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렸어요.”

방황도 잠시, 김 씨는 ‘첫사랑’인 영화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에게 사막보다 더 황량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그가 일하던 영화사가 대거 정리해고에 들어가면서 김 씨도 33세 나이에 퇴사해야 했던 것. 영화 <무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 등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그저 영화가 좋아 초봉 월 50만원에 휴일 없이 근무했던 10여 년이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그는 다른 영화사에 들어가는 대신 사막에서처럼 홀로서기를 택했다. 영화사 ‘꿈꾸는 오아시스’를 만든 지 한 달 남짓이 됐다.

“첫 작품은 사막을 뛰는 세계 아저씨들의 사연들, 내가 보고 들었던 그 삶들에 관한 겁니다.”
 

글·김남인(조선일보 사람들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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