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벤자민 주아누(41) 씨는 최근 맛본 강원도 홍천의 된장찌개 얘기를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프랑스인인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아리랑TV 〈Tasty Trail with Benjamin〉(벤자민과 함께하는 맛있는 여행)이라는 한식 소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
‘답답한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가자’는 이 프로의 제작 의도에는 “한식의 민얼굴은 지방에 있다”는 벤자민 씨의 입김이 작용했다. 해인사에서는 김장을 했고, 전주에서는 전통 비빔밥을, 강릉에서는 초당두부를 맛봤다. 그가 꼽은 최고의 밥상은 강원도의 작은 식당에서 나왔다.
“작은 상 위에 된장찌개, 쌀밥, 나물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죠. 단출했지만 입에 넣자마자 불꽃이 튀던데요. 너무 맛있어서요. 요즘 ‘한식의 세계화’라고 하면 팬시한 퓨전 한식을 흔히 떠올리는데, ‘진짜’는 기본에 충실한 소박한 밥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전국을 돌아다닌 그는 인공조미료의 위력을 실감했다. 인공조미료가 든 음식을 먹고 나면 20분 내에 두통이 밀려오는 ‘특이 체질’ 탓에 인공조미료를 안 쓰는 식당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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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파리사회과학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군 복무차 해외파견교사를 선택해 1994년 한국에 오게 됐다. 홍익대에서 5년간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이제 귀국할까’ 망설이던 그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르생텍스’라는 프랑스 음식점을 열고 프랑스 음식을 한국인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한국음식을 본격적으로 찾아 먹기 시작했다. 김치는 물론 간장, 된장, 고추장도 직접 담그고 산나물을 캐서 장아찌까지 해먹으면서 ‘한식광’이 돼버린 것. 하지만 그도 처음에는 한식에 대한 호감보다 거부감이 컸다.
“처음 2, 3개월 적응한답시고 과식했더니 결국 탈이 나서 한동안 한식을 끊었어요. 문제는 당시 한국에 외국 음식 먹을 곳이 별로 없다는 거였어요. 굶을 수는 없으니까 한식을 다시 먹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때부터 밥이 술술 넘어가는 거예요.”
그는 “‘한식의 세계화’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했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만족할 한식을 내놓겠다는 것은 과욕이고 시간을 갖고 전통 한식으로 외국인 입맛을 길들이는 ‘정공법’을 택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한식연구원에서 ‘한식은 반찬이 많은 게 흠이니 일품요리로 승부를 보자’고 주장해 놀랐어요. 반찬 없는 한식을 상상할 수 있나요? 한국의 혼이 없는 요리가 한식인가요? ‘우리의 정체성을 맛보이겠다’는 고집, 배짱이 필요해요.”
그는 올해 한식의 세계화를 주제로 책도 낼 계획이다. 한국음식과 서양음식의 전통을 비교하고 세계 속 한식의 현실을 조명하는 책이다. 1998년 프랑스에 문을 연 한국 전문 출판사 운영에도 더 본격적으로 나설 작정이라고 한다.
“친한파 프랑스 친구 5명과 출판사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12권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출간했어요. 한국 가이드와 잡지도 만들고 있죠.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유럽인들은 늘어나는데 볼 만한 책이 없거든요.”
주아누 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아직은 책이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다 ‘정’ 때문에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글·김남인(조선일보 사람들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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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