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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 낸 서경덕 씨





스물두 살의 청년에게 그것은 곤혹스런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충격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피해서 숨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그때가 1996년 여름이었으니 88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한참 지난 시점이었어요. 유럽을 배낭 여행하는데, 글쎄 대다수의 유럽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잘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올림픽을 치른 나라요, 세계 10위권을 목전에 둔 경제대국인 한국을 생소해 한다는데 정말 속이 상했습니다.”

서경덕(34) 씨는 12년 전 딱 이때의 체험과 느낌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목소리를 높여가며 생생하게 풀어냈다. “저로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체험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오늘의 서씨는 한마디로 ‘국가 홍보 전문가’로 요약된다. 외교관도 공무원도 아닌 사람에게 붙여진 국가 홍보 전문가라는 말은 충분히 낯설 수 있다. 서씨의 이름 석 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얘기가 “뉴욕 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낸 젊은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아마도 상당수 사람들이 ‘아하~’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그렇다. 서씨는 국내 최초로 미국의 유명 신문에 독도와 관련한 광고 게재를 주도한 사람이다.

그가 주도한 독도 광고는 지난 7월 9일 뉴욕 타임스에 전면으로 실렸다. 가수 김장훈 씨가 후원, 더욱 화제가 됐던 바로 그 광고다. ‘DO YOU KNOW’(당신은 아십니까)라는 헤드라인으로 시작되는 당시 광고는 바탕이 검은 색이어서 특히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그 강렬한 인상만큼이나 서씨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해 강렬한 열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5대양 6대주에 걸쳐 180여 개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그때마다 드물지 않게 중국인이나 일본인 취급을 받곤 했는데,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또 외국의 명소에 가보면 보통 여러 나라 말로 안내문 등이 쓰여 있는데, 한글이 빠져 있을 때면 너무 속상했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그에게 독도는 어쩌면 피해갈 수 없는 홍보 소재였다. “일본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일본 사람들은 정말 치밀한 데가 있습니다. 독도 망동만 해도 우발적인 게 아니라, 철저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데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는 독도 같은 영토 문제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첫째 정부와 민간이 함께 전면에 나서야 하고, 둘째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데 해외동포와 힘을 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에 직접 대고 뭐라 외치는 것은 실효가 없다고 말한다. 국제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일만이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게 미국의 유명 신문 아니겠습니까. 뉴욕 타임스에 첫째 광고를 실은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서씨는 뉴욕 타임스 외에도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 있는 3개 신문에 잇달아 광고를 냈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반향은 작지 않았다. 세계 각국에서 전자우편 등이 그에게 쇄도했다. 특히 일본인들은 한꺼번에 수백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생명을 위협하는 내용부터 서씨의 인터넷 사이트를 해킹하겠다는 등 부정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국내 여론을 환기시킨 것 또한 부수적으로 얻은 망외의 소득이었다.

서씨는 독도 광고로 이름을 알렸지만, 사실 그의 이런 국가 홍보 전략은 독도 문제가 불거지기 전부터 시작됐다. 예컨대 앞서 중국이 동북 공정을 시작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려 할 때도 그는 뉴욕 타임스 광고로 맞대응했다. 이 외에도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우리 말 안내 브로슈어를 비치토록 한 것이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우리 말 음성 서비스를 도입토록 한 것도 그가 앞장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것 알리기에 대한 서씨의 열정과 이력은 그에 대해 국수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저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며 더더구나 국수주의자는 아닙니다. 우리 문화를 존중하는 만큼 다른 나라 문화도 존중합니다. 우리 것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것일 뿐, 오히려 제 자신은 문화 다원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서씨는 해외에 우리 것 알리기가 즐거울 뿐, 애국주의 같은 압박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신나고, 홍보 전문가로서 오히려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는 데 도움을 받아 좋다는 것이다.

“외국 신문 광고 같은 공적인 일에 제 에너지의 70% 가량을 쏟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30% 정도는 홍보 자문, 강연 등 개인 사업에 주력합니다. 동북 공정 대응이나 독도 광고 건 등이 알려지면서 저를 찾는 기업 등이 많아 좋습니다.”

프리랜서 홍보 전문가지만 그는 또래들의 평균만큼의 수입은 된다고 했다. 서씨는 속된 말로 하면 자신은 바람잡이라고 했다. 뉴욕 타임스의 독도 광고만 해도 후원금을 낸 김장훈 씨 외에 약 30명의 선후배,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쉽게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독도 문제가 부각된 뒤 개인적인 일처리가 쉽지 않을 만큼 정신없다고 했다. 뉴욕 타임스에 광고가 나간 지난 7월 9일 이후, 언론 매체 등의 인터뷰가 하루 평균 5건을 넘어설 정도로 쇄도하고 있어 몸이 2개라도 힘든 실정이라는 것. 그러나 보람이 그만큼 큰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간 신문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CNN이나 BBC 같은 유력 방송에도 광고를 낼까 생각 중입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후원금이 끊이지 않고 있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서씨는 국가 이미지 홍보는 민간과 기업, 국가가 고차원적,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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