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4월 24일 오후 인천의 문학 야구경기장. 경기 시작 두어 시간 전, 홈팀인 SK의 수석코치 이만수 씨가 3루 더그아웃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씨는 더그아웃 앞 예닐곱 발짝쯤에서 멈춰서더니 큰 소리로, 롯데 야구팀 감독 제리 로이스터 씨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미국 체류 시절, 자신이 몸담았던 시카고 화이트 삭스 관계자 안부와 최근 경기 성적을 로이스터 감독에게 전했다.
이씨의 말에 “리얼리(really·정말이냐)”라며 반문하는 것이, 로이스터 감독은 화이트 삭스의 성적을 전혀 모르고 있는 표정이었다. 한국 야구에 푹 빠져 있는 로이스터 감독에게 미국 프로야구 상황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했다.
한국 최초의 외국인 프로야구 감독 로이스터 씨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롯데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 수년간과 달리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올 들어 수위권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4월 25일 현재 8개 구단 가운데 2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와 선수 구성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자이언츠의 시즌 초반 돌풍은 로이스터 감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로이스터 감독 스스로도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내 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올 시즌 자이언츠의 최종 성적을 현 시점에서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이언츠의 초반 선전은 리더 한 사람이 바뀐 것만으로 조직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로이스터 감독을 만난 지난 24일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만 2개월이 되는 시점이었다. 중앙 부처를 비롯한 행정부, 공공기관 등은 새 정부 들어서 일대 변화를 맞고 있다. 조직이 크게 바뀌고 후속 인사이동 등이 뒤따르고 있다. 이달 말 출범하는 18대 국회까지 감안하면 올 상반기는 가히 크고 작은 리더십의 변화기라고도 할 만하다.
조직 구성원은 서로 보살펴주는 존재
리더란 어떤 존재이며, 조직이란 무엇일까. 로이스터 감독의 매니지먼트는 변화의 시기,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소간의 힌트가 될 것 같다.
로이스터 감독은 조직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했다. 사전에 나오는 말이 아닌 당신만의 해석이 궁금하다고 하자, 고개를 잠시 갸우뚱하더니 “서로를 보살펴 줘야 하는 사람들의 집합체”라고 말했다.
수직적이고 포괄적이라기보다는, 수평적이고 개별적인 미국식 리더관이 생활화된 듯한 사람에게서 나올 법한 대답이었다. 매니저를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그 같은 아우름을 개별적인 역할로 그는 인식하고 있었다. 조직원 위에 군림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기능적 관점에서 총괄이나 총무과에 해당하는 수평적 존재로 그는 매니저를 파악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조직을 성공 혹은 목표 달성을 위한 기구라고 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조직 구성원의 최고 덕목으로는 집중(포커싱)을 꼽았다. 집중에는 선택이 불가피하게 따른다는 점에서 그는 현실론자인 듯했다. 집중과 선택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실리 중심의 전략이다.
그는 자이언츠의 최근 성적이 한국식이 아닌 미국식 매니지먼트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았다. “롯데가 외국인인 나를 부른 것이 (한국 특유의 방식과는) 다른 야구를 하라는 것이 아니었는가” 하고 되물었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똑같은 야구일 터인데, 한국식과 미국식 매니지먼트에 그토록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는 이 대목에서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려는 듯, 눈에 약간 힘을 주고서 말했다. “전적으로 다르다. 모든 게 다르다. 선수를 키워내고, 선수단을 구성하고, 구단을 운영하는 방식까지 모두가 다 다르다.”
로이스터 감독은 6년 전 미국 프로야구 밀워키 브루어스 팀을 맡아 이끌었다. 그는 자이언츠 감독으로서 철학과 스타일이 그때와 거의 다르지 않다고 했다.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고,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야구 선수들을 통해 본 우리의 조직 문화에도 나름의 일침을 가했다. “선수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만큼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선수들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걸 꺼려선 안 되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런 행위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한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경쟁의 참가자가 모두 제 실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프로는 늘 배우려는 자세 갖춰야
로이스터 감독은 직종을 가릴 것 없이 프로페셔널의 가장 큰 덕목은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로로서 스스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더로서도 그는 실용론자의 면모를 보였다. 조직 운영에 실패가 따를 경우, 자신의 철학을 고집하기보다는 원인을 분석해 계속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율과 원칙,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할 경우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일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역시 실질을 강조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효율과 실리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매니저였지만 그 못지않게 인간미를 강조하는 게 돋보였다. 한 예로 그는 행크 아론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는다고 했다. 행크 아론은 위대한 야구인이기에 앞서, 인격적으로 본받을 만한 구석이 많다는 것이었다. 행크 아론은 최근 배리 본즈 선수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미국 프로야구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였다.
로이스터 감독은 17살 미국 프로야구 무대에 처음 뛰어든 이래 40년 가까운 세월을 선수와 코칭스태프로 지냈다. 로이스터 감독은 그 스스로 전성기로 꼽는 198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 시절 생애 최대 타율인 2할9푼대를 기록했다. 타자로서 스타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조금 부족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화려하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그는 나름의 ‘더그아웃 철학’을 다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더그아웃은 운동장 지표면보다 한 길쯤이나 움푹 낮은 자리다. 더그아웃에서는 선수들 움직임에서부터 관중들의 모습까지 야구장의 모든 것이 다 올려다 보인다. 낮은 데서 사물을 관찰하다 보면 남들이 갖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마련이다. 스타 출신이 아닌 그가 이국 땅에서 감독으로서 성공한다면 그건 특유의 경험과 그로 인한 시야의 확장 덕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