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통상협상은 서로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예술입니다. 일방적인 승리나 불이익은 있을 수 없습니다.” 김한수 한국·EU FTA 수석대표는 협상에서 유연성과 균형을 강조했다.
김 수석대표는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에 대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다른 FTA협상에 비해 아직까지는 비교적 빠른 편이라는 것. 또한 “당장 내세울 성과는 많지 않지만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갈지 아이디어를 찾았다”며 4차 협상까지 협상결과를 자평했다.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관심도가 한·미 FTA 때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지적하자 김 수석대표는 “한·미 FTA 때는 FTA가 마치 경제주권을 포기하는 협상인 것처럼 잘못 알려지고, 양국의 정치적, 역사적 특수 관계로 인해 지나친 관심을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FTA 본질은 경제 이익 극대화
그는 이어 통상협상 전문가답게 특유의 실전 협상론을 설파했다. FTA협상의 본질은 정치적·외교적 관계를 강화한다기보다 경제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EU FTA협상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는 현재 수준이 적정하다고 본다”고 분석한 그는 그러나 협상 결과를 최대한 활용해 국익을 증진시키는 것은 기업의 몫인 만큼 이번 협상에 대한 기업의 관심도가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연내 타결 가능성에 대해 김 수석대표는 “협상 처음부터 연내 타결은 지극히 어렵다고 했고, 현재도 여전히 어렵다”면서 “다만 완전히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아직 기회는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풀리면 연내 타결이 될까. 그는 “일반적으로 상품 부문에서 속도가 나면 다른 부문에 에너지를 집결시킬 수 있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상품과 자동차 비관세 장벽, 개성공단이 가장 핵심적인 부문”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비관세 장벽과 상품 개방수준에서 ‘한·미 FTA와 비교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EU측 주장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는 서로 분리해서 보아야 할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자동차 비관세 장벽 문제는 국제표준인 유럽경제위원회(UN ECE) 규정에 맞춰 한국의 제도를 점진적으로 바꿔 나가든지, 아니면 한국의 독자적인 표준제도와 병립해서 UN ECE 규정을 그대로 인정해서 수입차에 적용해 달라는 것이라는 것이 EU측 요구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는 대응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조화가 가능한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 제도의 선진화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의 문제라고 그는 주장했다.
또한 상품개방에서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EU측 주장에 대응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양측의 기본적인 접근방법에 차이가 있었던 데에 기인한다는 게 김 수석대표의 시각이다. 다시 말해 우리 측은 다른 협상에서처럼 주고받기식 협상을 염두에 두고 점증적으로 양허수준을 개선해 나간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했다. 반면 EU측은 의사결정 구조의 복잡성 때문에 점증적인 개선 작업이 불가능하므로 일괄적인 개선을 희망하고 있다.

상당한 진전 목표 … EU 적극 설득
그는 최근 EU 협상단을 항공모함에, 우리를 구축함에 비유한 바 있다. 우리가 이처럼 짧은 기간 내에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우리 협상단이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수석대표의 시각이다. “이런 점에서 EU가 쉽게 방향을 전환하거나 속도의 가감을 하기 어려운 항공모함이라면 우리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보다 우위에 있는 날렵한 구축함이라고 비유해 본 것”이라며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데는 우리가 보다 유리한 입장이라는 뜻”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EU FTA 협상이 분수령에 서 있는 시점에서 국내 최고 통상협상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인 김 수석대표가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는 의견이 있다.
그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다는 목표로 할 생각”이라며 EU측에 우리의 입장을 적극 설득하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김 수석대표는 “이제는 협상에 관계되는 많은 부처와 관계자들께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해왔던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를 하고 있어 협상하기가 많이 수월하다”고 밝혔다.
김 수석대표는 FTA를 포함해 각종 협상에 임할 때 상대방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에 가장 신경을 쓴다고 했다. 신뢰를 구축한다고 하면 흔히 좋은 인간관계를 떠올린다. 그보다 얽혀있는 현안들을 어떻게 같이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현실적 한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우리 측의 한계를 상대방에게 명쾌하게 전달함으로써 서로 대화가 통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평소 틈만 나면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하다 보면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과 ‘내 일엔 엄격하고 남의 일엔 관대하자’는 게 그의 좌우명이다. 그는 후배 외교관들에게 일을 겁내지 말고 부딪치면서 내공을 쌓아 나가고, 긍정적 관점에서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나가라는 말을 해주고 싶단다.
옛 상공부에서 무역분야를 담당하다 1998년 다자통상총괄담당팀장을 맡으며 외교통상부에 합류했다. 유막에 계책을 두르고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제갈공명의 지혜를 기대해본다.
글 권영일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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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