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0일 김삼웅(金三雄) 독립기념관장을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만났다. 김 관장은 ‘장마 아닌 장마’ 사이에 모처럼 반가운 햇살 잔뜩 묻어나는 집무실에서 예의 맑은 미소로 반겨줬다. 며칠 남지 않은 독립기념관 20주년 및 8·15행사 준비와 함께 전날 공표한 ‘세계반침략평화선언’의 성과를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전쟁과 침략이 아닌,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세계반침략평화선언 행사를 잘 마쳤지만 8·15행사 준비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잘 치러지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매년 3월과 8월은 특히 숨 돌릴 틈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친일 민족반역자 색출 단초 제공
그의 약력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는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학자이고,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이며, 언론개혁운동 등에 매진한 시민운동가이다. 또한 독립기념관장직을 3년째 수행하고 있는 ‘행정관료’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참여정부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활동 공과(功過)에 대해서 물었다. 김 관장은 국민의 정부에 이은, 참여정부의 과거사 관련 여러 위원회의 성과에 대해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일제 잔재의 청산을 구체적으로 시작한 것은 역대 정부가 해내지 못한 것으로 분명한 성과였습니다. 조금 더디기는 하고, 일부 보수단체의 비난이 있었지만 여야의 합의를 통해 친일민족반역자와 그 행위를 가려낼 수 있는 단초를 만든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과거사 정리와 관련, 참여정부의 활동은 더욱 적극적으로 평가받아야 함을 강조했다. 김 관장은 특히 개인에 대한 과거 국가권력이 행사한 폭력의 진실 규명은 앞으로 더욱 활발히 진행되어야 하며, 이는 문명사적 의의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진정한 문명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도, 다시는 그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또한 현재 우리 사회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서도 개인에 대한 국가 폭력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를 위로해주는 과정은 절실하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실(史實) 확인의 필요성, 부단한 진실 찾기와 소통 속에서 미래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당위성을 강조했다.
독립기념관, 역사 소통의 장으로 탈바꿈
실제로 김 관장이 취임한 이후 독립기념관은 더 이상 앉아서 관람객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역주민들에게 찾아가는 독립기념관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전국 각지를 돌며 항일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지역민의 민족적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높이는 활동에 주력했다. 또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 주체가 된다. 그런가 하면 인도, 폴란드, 중국, 러시아 등 전쟁과 침략을 겪었던 5개국 역사박물관장들과 함께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세계반침략평화선언’을 채택하고, 관련 국제학술회의를 여는 한편, 북한 혁명역사박물관과 함께 남북 공동 항일독립운동사 정리를 위한 자료 및 연구 성과의 교류를 합의했다. 이 덕분인지 정부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무려 4단계나 훌쩍 올라섰다. 박물관의 밀랍 인형처럼 교과서 안에서 몇 줄로 박제화됐던 ‘과거의 역사’가 비로소 ‘오늘’과 ‘내일’을 만나 숨쉬고 호흡하는 과정을 갖게 된 것이다. 과거의 진실을 찾아가고, 그 진실은 동세대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 속에서 소통하고, 화해하며 ‘내일의 역사’를 준비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김 관장의 자신감과 확신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천착한 친일문제를 비롯한 한국 근·현대사 진실 찾기라는 학술적 과업이 실천적으로 검증된 데 따른 오롯한 성과의 부산물이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아무튼 최근 독립기념관의 이와 같은 획기적인 변화는 우리의 근·현대 과거사를 굳이 과거에 묻어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또한 한시라도 늦기 전에 진실을 햇빛 아래 드러내고 함께 웃고 위로하며 용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이유를 온 몸으로 역설하고 있다. 내친 김에 좀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좋은 성과를 남긴 위원회, 미진한 과제를 남긴 위원회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는지 궁금했다.
김 관장은 과거사 관련 위원회 ‘단골위원’이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광복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진실과 화해분과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 자문위원,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부원장, 친일파 재산환수위 자문위원 등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에서 주요 역할을 해왔다.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에 속했고, 여전히 몸담고 있어서인지 김 관장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음인지 말을 아꼈다. 그는 “모든 위원회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자칫 그 분들과 그 활동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조심스러워했다. 다만, 참여정부에서 보여준 과거사 정리 관련 활동의 미진한 과제에 대한 지적과 앞으로 들어설 정부에 대한 주문은 단호했다.
“지난 50여 년 동안 엄혹한 좌우 이념의 대립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아직도 전국에 너무 많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도중 희생된 양민들의 넋은 여전히 곳곳에서 숨죽여 흐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일부 지자체에서 희생자들의 진실을 밝히고 위로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역사의 진실과 인간의 존엄을 위한 과거사 진실 규명 과제를 계속해야 합니다.”
“역사의 역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과거사 관련 활동이 채 끝나지 않은 만큼 다음 정부의 의지 및 관련 활동도 관심사다. 그는 최근 대선 정국 속에서 일부 후보들의 언행에 나타나는 ‘5·16 구국혁명’이니, ‘부마사태’, ‘광주사태’ 등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듯한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역시나 그는 낙관론자였다. 대답은 명쾌했다. 인류 역사의 진보와 국민(혹은 민중)의 힘을 확신하며, 그를 통해 승리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넉넉한 낙관을 갖고 있었다.
김 관장은 “이승만 정권이 반민족특위를 짓밟은 이후 50여 년 만에 과거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과 아픔이 양지로 나왔다”면서 “어느 일부 정치 세력이 이를 되돌리려 하거나 속도를 늦추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국민들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우리 국민은 4·19와 1980년, 1987년의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낸 높은 의식 수준을 갖고 있다”면서 “긴 역사를 통한 안목으로 볼 때 이러한 역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인터뷰 내내 형형한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를 놓지 않았다. 그는 책 무덤 틈에 파묻혀 육체적 고생과는 담을 쌓았을 법한 선비의 풍모를 갖고 있다. 실제로 25권에 달하는 저서를 통해 오랜 시절 ‘금기의 감옥’에 갇혀있던 근·현대사의 진실을 외치는 학문적 성과를 드러냈으며 대학 강단(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후진 양성에도 힘쓴 흠 잡을 데 없는 학자가 맞다. 하지만, 사실은 평생을 군부독재정권, 반민주, 반민족세력들과 맞서 싸워왔다. 지난 18년 동안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재야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의 무기는 원칙과 양심의 펜이었고, 진실의 역사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독립기념관 넓은 광장 하늘 위로 과거의 역사가 오늘과 내일의 역사를 향해 힘찬 날갯짓을 펼치고 있는 듯했다.
글 박록삼 서울신문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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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