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직은 칭찬보다는 욕을 더 먹는 자리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딱 맞는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올해 건강보험료가 예년보다 높게 인상된다고 하자 벌써부터 항의가 빗발친다.
“건강보험료 인상은 암 등 중증환자 지원과 6세 미만 아동 입원치료비 면제, MRI(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 식대의 건강보험 적용 등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재용 이사장은 당초 건강보험은 ‘저부담률, 저보장’원칙에서 시작됐으나 지금은 고보장으로 가고 있어 개인 부담도 적정 수준으로 올려야 형편에 맞다고 설명했다. 올해 국민의 부담률은 소득의 4.77%. 여전히 선진국의 8~15%보다 낮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모든 국민이 골고루 행복해지는 것이 그가 요즘 생각하는 전부다. 이 이사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칭을 ‘건보’가 아니라 ‘국보’라고 부른다. 국보처럼 귀중한 공단으로 바꿔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지만 건강보험은 적자가 아닌가. 게다가 지난해 말 추진한 담뱃값 인상도 무산되지 않았나.
“지난해 750억 원의 적자를 봤고, 올해도 1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지만 누적수지는 아직 흑자입니다.” 그렇다고 건강보험 재정지출 구조를 안정적 기반 위에 올려놓는 일을 계속 미뤄 놓을 수는 없다. 그는 “재정지출 구조 합리화 속에는 부당의료 청구와 의료 오·남용을 제도적으로 막는 방안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여유가 있으면서도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는 220만 가구 가운데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10개 직종 종사자(255명, 9억 원)와 재산이 있는 고액 체납자는 모두 2만7649가구(체납금액 1229억 원). 이 이사장은 이들을 특별 집중 관리하고 공매 등을 통해 강제 징수하라고 지시했다.
체납액 1000억 원을 받아내면 재정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이 이사장은 과세의 형평성에 더 관심이 있다. 보험료를 고의로 체납하는 것은 사회정의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다. 저소득·취약계층들은 자치단체, 회사, 종교단체 등과 연결해 보험료 지원협약을 확대해 병·의원 이용에 제한을 받지 않도록 배려할 방침이다.
이 같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지난해 8월 부임한 이래 불과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직원은 물론 노조와도 빠르게 호흡을 맞춰 나가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는 ‘신기하다’며 놀라워했다.

입원환자 부담률 절반으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지난해 말 이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소록도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런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 이사장을 본 소록도 주민들이 달려와 포옹하고 심지어 빰까지 비비는 게 아닌가. 한센병 환자인 그들과 음식과 술을 나누는 것은 예사였다. 봉사단원들은 이 이사장이 소록도 주민들이 유일하게 격이 없이 지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지난 24년간 소록도의 봉사단체인 ‘참길회’ 회원이었으며, 2월 2일 공단에서 이들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리게 된 연유를 비로소 알게 됐다.
호리호리한 몸매에서 어떻게 그런 강단과 배짱이 나올까 싶었다. 건강 비결을 묻자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고 침·뜸을 한단다. 부친께서 50년 가까이 침·뜸을 하고 계셔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밝혔다. 침·뜸에 대해 설명하는데 막힘이 없다. 중국 황제내경에 뜸은 북방, 즉 몽골에서 유래했으며 침은 동방, 즉 우리나라에서 유래했다고 적혀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방의 건강보험화가 저조한 이유를 묻자 그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답변했다. 다만 건강보험이 입원과 중증환자를 중요시하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고. 실제 2005년 9월 20%에 이르던 암 등 중증입원환자 부담률을 지난해부터 10%로 절반을 내렸다.
최근 환자의 법정본인부담금을 민간보험사가 부담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문제로 민간 보험업계의 반발이 크다. 그는 단호했다. “건강보험의 환자 본인부담금은 의료이용자의 도덕적 해이, 다시 말해 의료이용 남용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이 이사장은 “환자분담금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면 더 좋은 서비스를 더 많이 받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라며 “보험은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에 걸렸을 때 혜택을 받는 것인데 많은 가입자들이 더 좋은 서비스를 무한정 받는다면 보험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자의 도덕적 해이로 진료비가 늘어나면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가 살아온 삶은 얼핏 보면 세인이 부러워 할 만큼 화려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해 초등학교 10군데를 옮겨 다녔다. 어렸을 때 이 같은 체험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그래서 좌우명도 ‘The first man, the last man’이다.

남은 임기 공단개혁에 총력
그에게도 고민거리는 있다. 노력에 비해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건강검진이다. 건강검진은 국민들을 위한 축제이자 이벤트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불신하고 검진 자체를 폄하하고 있다. 일선의료기관에서 수익성 등 이해관계 때문에 건강검진을 ‘싸구려’로 격하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선진제도라며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 판인데, 국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이 이사장은 이에 따라 올해 안으로 검진기관을 신고제에서 다시 인증제로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의사대신 간호사가 검진하고 대충대충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정치를 계속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노’. 당분간 공단개혁에 매진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이 아니면 건강보험제도 개혁이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 11개 관련 개혁 법안이 계류 중이다. 지금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공단 개혁에 총동원하고 있다. 그는 TV 드라마를 볼 시간도, 책을 읽을 시간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신 국민건강에 관한 자료는 누구보다 더 많이 챙기고 있다.
그는 지금 2년 반 정도 남은 이사장 임기 동안 국민건강을 위해 제도 혁신이라는 소명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 중에는 내년 7월부터 도입할 예정인 노인수발보험제도를 조기에 정착시킬 수 있도록 차질없이 준비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적어도 ‘병수발 3년에 효자 없다’는데 노인 수발로 인한 가정파탄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권영일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