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첫 여성 법제처장, 학계 출신이라는 점도 흔치 않은 이력이다.
헌법은 물론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률 1163개, 대통령령 1552개, 총리령 72개, 부령 1335개 등 법령 4122개를 정비하는 부처의 인물이란 점도 떠올렸다. 21개 정부부처의 훈령·예규·고시·공고·지침 8518개까지 합치면 1만2000개를 웃돈다.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김선욱 법제처장을 만났다. 취임한 지 꼭 2년이 됐다고 인사말을 건넨 김 처장에게 우선 국민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법제처를 알기 쉽게 소개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법규 준수를 얘기하자면 먼저 법에 대한 신뢰를 심어줘야 합니다. 신뢰를 얻으려면 국민들이 알기 쉽게 해줘야 옳지요. KDI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준법정신 정도에 따라 경제성장률 1%가 왔다갔다 한다고 합니다. 준법이 얼마나 중요한가 말해주는 대목 아니겠어요?”
국민들이 법제처를 낯설게 느끼는 것은 정책을 직접 챙기기보다는 뒷받침하는 부처라서 그런가 보다고 설명했다. 법제처는 “정부정책이 법령의 형식으로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입법 총괄·조정기관”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국민들의 불편을 덜어 신뢰받는 법령이 되도록 정비하는 게 본연의 정신이라고 덧붙였다.
법령 해석을 둘러싼 정부 내의 다툼에 대해 최종적으로 유권해석을 내리는 것도 중요한 기능 중 하나. 법제처에선 정부 입법계획지침을 매년 11월 말까지 각 부처에 통보한다. 부처에서는 이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이듬해 1월 15일까지 법제처에 제출한다. 따라서 법제처로선 요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때이다. 확정된 정부입법 계획은 3월 31일까지 국회에 제출된다.
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법제처에 최근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2006년 입법추진실적과 2007년 입법추진방향’ 보고에서 지난 4년간의 참여정부 입법추진실적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열심히 일했다는 평가를 받은 점이다.
입법추진 실적을 비교해 볼 때 과거정부보다 참여정부의 실적이 증가했는데 이것은 참여정부 들어 입법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는데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입법과정 국민 참여 적극 유도
국민 입장에서나 부처 입장에서 기뻐할 일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들만 한 작업이 아니라 정부 각 부처들 전체가 힘을 모은 일”이라며 칭찬이 쏟아진다는 말은 뒤로 미뤘다.
아무튼 국민들의 체감과 달리 물밑에서는 혁신을 바탕으로 한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법령정비 실적이 늘었다. 특히 2005년 이후 주요 정책과제에 대한 제도화 작업이 본격 추진되고, 알기 쉽고 투명한 법령 마련을 위한 법제정비 사업이 확대 추진되면서 지난해 정부입법계획 건수 및 국회제출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정부의 주요 로드맵 과제들을 제도화하기 위한 각종 개혁법안 120여 건이 국회에 제출되어 대부분 통과되었고, 10여 건만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그만큼 법령의 체계화에 애쓰고 있다는 방증이다.
양적·질적 변화는 ‘아름다운 우리 말 쓰기’와도 맞닿아 있다. 이런 작업으로 만들어진 개정안들은 정책이나 제도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지만 국민의 법의식을 향상시키는 데 근간이 된다.
“아리송한 용어가 뒤섞여 이해하기 힘들면 어떻게 신뢰가 쌓이겠어요?”
사태(死胎·죽은 태아), 양하(揚荷·짐 나르기), 수득(收得·거두어들이다)하다, 폐질(廢疾·장애)….
한자를 배운 사람도 곧장 해답을 찾기 어려운 말들은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이 단어들은 모두 ‘장사 등에 관한 법률’ ‘해운법’ ‘어장관리법’ 등 법령에 등장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법은 곧 국민의 뜻입니다. 그래서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에서 법률을 제·개정하는 것이지요. 법을 지키고 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법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법치주의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말이나 한자를 써야 왠지 힘이 있어 보인다거나, 권위가 있어 보인다는 등 그런 고정관념이 은연중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 동안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하지 못했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은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실시 2년째다.
지난해 주택법과 국민건강보험법 등 63개 법률을 말끔하게 새로 꾸몄다. 다행히 국회에서 이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적었다. 수십 년 세월에도 엄두를 못 냈을 정도로 난관이 많은 일에 욕심을 부린 용기(?)가 가상하다고 여겼을까. 보통 부처 예산이 국회로 넘어가면 깎이기 십상인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예산이 추가로 배정되어 오히려 예산이 늘어났다.
“겁없이 출발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어요. 인원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직원들에게 늘 미안하죠.”
법제처는 올해부터 정부입법계획 수립 후 그 내용과 추진상황을 ‘참여정부 입법추진 현황시스템’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입법과정에 일반 국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정부입법계획의 정책예고 기능을 강화한다는 각오다.
‘재량행위 투명화 사업’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양적·질적 성장을 도왔다. 정부부터 투명해야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규정을 뜯어보면 두루뭉술한 구석이 많다는 이유를 꼽았다. “예컨대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법적요건에 ‘검사업무를 현저히 해태한 경우’ 라는 표현이 있어요.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법령 우수성 인정받아
법제 관련 업무가 지금처럼 전문화되기 이전에 일일이 구체적으로 규정을 못해서 생긴 부작용이다. 자연스럽게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하게 된다.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게 되고 끝내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각종 법령에 나오는 공무원 재량행위를 보다 투명하게 규정해 부정적인 요소를 최대한 줄이자는 게 이번 작업의 근본 취지다.
이런 노력들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대화는 우리나라 법령의 우수성으로 이어졌다. 일본, 중국 등 외국과 교류를 늘려가는 한편 ‘법제 기관장 국제회의’도 유치할 계획이다.
“일본의 법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폐해가 많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무렵부터는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부럽다고 합니다.”
사회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여 법령에 반영하는 순발력이 일본인들의 부러움을 산다는 얘기였다.
외국과 교류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에는 사뭇 진지했다. 베트남, 몽골 등 이른바 체제변환 국가들에 경험을 전수하면 국가경제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법 체계가 같으면 해석 차이로 생기는 국제적 분쟁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상품을 사더라도 상법, 어음법 등 경제와 관련된 법령을 접근하는 데 문제가 적어 교역에 효율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자칫 심각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를 무렵 재미있는 에피소드 소개를 부탁했다.
“아 예, 저도 따지고 보면 공무원 선배예요. 그것도 지금 바로 이 자리의 중앙청사에서 일했답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약 3년간 지금으로 치면 별정직 사무관 직책을 달고 법무부에서 근무했다는 귀띔이었다. 갓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해외유학을 떠나기 직전까지 3년 동안 공직생활을 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다시 돌아와 보니 가슴 시린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25년간 우리나라의 경제는 많이 발전했는데 비좁은 공간, 옛날 집기 등 공무원의 근무환경은 거의 변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다 보니 조심스러워서 그런 것으로 여겼습니다. 새 처장이 와서 업무가 늘었다는 소리를 들을 땐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인데, 우선 근무환경이라도 바꿔주고 싶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공간이 쾌적하고 열린 공간이 돼야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런 말조차 자칫 엉뚱한 오해를 불러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흔히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회가 단순할 때에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복잡해진 시대엔 다릅니다. 각종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게 됩니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뒤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에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겐 “공공의 이익이 지켜질 때 그 속에서 내 개인의 이익도 지켜진다는 사고방식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글 송한수 기자·사진 도준석 기자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참여정부 출범 이후 입법 실적이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시절에 비해 급증했다. 법제처의 ‘2006년 입법추진실적과 2007년 입법추진 방향’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정부입법 제출건수는 232건으로, 문민정부(166건) 시절을 크게 앞질렀고, 국민의 정부(219건) 때보다도 연간 10건 이상 많았다. 참여정부의 연도별 정부입법 추이도 첫 해인 2003년 148건으로 출발해 2004년 207건, 2005년 242건, 지난해 332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지난해의 경우 국방개혁법 등 각종 개혁관련법 17건, 비정규직보호 관련 3법 등 민생법안 36건,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 특별법, 그리고 과학기술관련 법안 14건 등이 정부 입법안에 포함돼 있고, 제출안의 60% 가량인 192건이 국회를 통과했다. 입법계획 대비 실제 법안 제출 비율도 2005년 64.8%에서 지난해 71.1%로 6.3% 포인트 올라갔다. 법제처는 비전 2030, 정부업무평가 기본법에 따른 성과관리 계획 등 올 한해 참여정부 주요 정책과제의 입법추진상황을 종합 점검해 입법계획에 반영한다. 대통령 선거 등 정치일정을 감안해 가급적 주요 법안들은 6월 말까지 제출토록 할 방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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