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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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1972년 유신독재에 맞선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의장 활동, 때문에 ‘긴급조치 1·4호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수배, 간첩 현상금 10배인 300만 원 현상금의 주인공으로 급부상,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선고,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출옥 후 24시간 감시 요주의 인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 서울대 ‘광주사태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그리고 3차 투옥….
한 나라도, 한 단체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것도 고작 10여 년의 히스토리일 뿐이다. 그런데도 숨이 차다. 간단한 문장들 사이 촘촘히 박힌 사연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B]사형수(?) 뚝심으로 문제 해결[/B]
삶과 죽음을 오가며 살아온 이철.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소설이다. 부러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인가 의심할 정도다. 한데, 어느 날 그가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되었다고 했다. ‘사장’, 그것도 ‘공사’, 게다가 ‘임명’이라니. 순간, 아귀 안 맞는 서랍처럼 헛도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이제까지의 그와는 맞지 않아 보였던 게다. 너무 달달한 선택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던 게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누군가는 낙하산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보은인사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들이 출렁일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는 낙하산이다. 그래서 가장 어렵고 척박한 곳에 투입되었다. 너무도 험난해 누구도 지원하지 않는 곳에 낙하산 달랑 메고 유유히 떨어진 게다. 산지사방 지뢰가 깔린 곳을 잘 헤쳐 나가기 위해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고선 편견과 오해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씨익 웃으며 그랬습니다. ‘보은’이라면 살기 좋은 곳에 안착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처음, 주변의 젊은 친구들이 권유할 때는 솔직히 모욕감까지 느껴졌다는 이철 사장. 쉽지 않은 자리였던 게다. 덤터기 쓰려고 가야 되는가 고민도 됐었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데 그 착잡한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더란다. 어차피 쉽고 편한 길을 걸어온 삶은 아니었잖은가. 노력한 만큼 빛이 나지 않으면 또 어떠랴. 그래, 한 번 길을 내 보자. 그리 생각하니 명쾌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옹골차게 경영하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시작이었고, 1년 전의 일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해서 문제를 덮어두지는 말자, 정면으로 부딪쳐보자는 각오로 출발했습니다. 저라고 장밋빛 보고서를 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의 경영성적을 위해서라도 단기적 경영성과에만 매달리면 되겠지요. 하지만 그런 얄팍함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5년, 10년을 내다보고 기초부터 탄탄히 다지고 뼈대를 세우는 게 제 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고작 1년이니까 뭐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조직인 까닭에 기초만 다지는 데도 수년이 걸릴 문제였다. 하지만 예의 그 뚝심으로 그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갔다. 기존의 것을 뽑아내고 새것을 심기 위한 작업이 1년 내내 한창이었던 셈. 그 결과 조금씩 철도공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업그레이드됐다고나 할까.
지난해 공기업 청렴도 평가에서 건설교통부 산하기관 1등을 거머쥐었는가 하면,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 철도고객센터가 한국능률협회 선정 ‘2006년 한국산업의 콜센터 서비스품질지수’ 평가에서 1위에 선정됐다. 또한 지난해 말 결산에서는 15개 계열사 중 11개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될까’ 싶은 마음에 그렇게 조금씩 희망의 길이 나고 있었다.
초창기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 든 생각은 ‘철도, 참으로 기형이구나’였다. 철도공사 내부의 문제도 문제였지만 외부적 요인은 상상 외로 커다란 상처였다. 때문에 정상적인 발전은 꿈꿀 수도 없었다. 철도공사에 대한 편견, 40년 넘게 외면한 철도 투자가 바로 그것. 그러한 외부 조건이 오히려 내부의 자괴감과 죄책감, 일부 직원의 부패를 불러일으키는 동력이 되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이철 사장의 취임사는 강렬했다.
[B]환부 도려내고 얻은 튼튼한 뿌리[/B]
“중병 아닌 중병이요, 난치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철도에 대한 편견과 국가정책적 지원(엄밀히 말하면 ‘보존’입니다) 부족으로 ‘10조 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까닭이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구경꾼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프다고 대충 살다 죽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어떻게든지 이겨보려고 애써야지요. 그래서 내부에서부터 고쳐나가며 외부에 당당하게 말하는 철도인이 되자고 부탁했습니다. 철도의 꿈과 미래가 다름 아닌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아프더라도 잘라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튼튼하지 못한 뿌리로 어떻게 모진 세상을 견디겠는가. 튼튼한 뿌리를 키우기 위해 이철 사장은 내부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뿌리경영’이라는 그의 경영철학은 새로운 한국철도공사를 위한 맞춤식 경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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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환부를 도려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부 곳곳엔 아직도 공무원 조직의 병폐인 복지부동이 들러붙어 있었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직원들이 안쓰러웠다. 그렇다고 마냥 놔둘 수만도 없는 노릇. 더 큰 출혈을 막기 위해 그는 총대를 메고 내부구조를 조정했다. 불가피하게 정리해야 하는 공장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면서 격렬한 저항에 맞섰다.
“엄청난 손실 때문에 없애야 했지만 한편 그들을 생각하면 짠해집니다. 평생을 한 곳에서 일한 그들의 두려움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한 게 교육을 제공하고 전환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사와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설득한 끝에 겨우 결실을 맺었지요. 그 두려움과 저항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가슴에 깊이 새겨둘 것입니다. 그 아픔이 철도공사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리란 것을 믿고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몸에 밴 관료주의를 벗는 데 1년은 참으로 짧았다. 부러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왜 없었겠는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적자만 내는 별 볼일 없는 회사라고 손가락질 받을 뿐이라는 자조 어린 말들이 스멀거리며 번졌다. 그럴 때마다 이 사장은 ‘명예’를 쥐어주겠노라 약속했다. 5년, 10년, 20년 해가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기업을 만들자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기업의 초석이 되어 보자고 외쳤다.
기초공사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그 이상도 가능한 게 우리의 철도라고 힘을 주었다. 여러분이 기운을 차리면 이후 후배들은 철도공사를 자랑스러운 직장으로 여길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명예, 희망을 불러오는 화수분이 될 것이라고.
“부패가 단순히 물질적 문제만은 아니잖습니까. 몇몇 사람들 때문에 철도공사 직원들 모두가 불명예를 뒤집어써야 하는 건 억울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사기를 떨어뜨리고 모두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B]열차표가 아닌 서비스 파는 기업[/B]
물질적이고 수치적인 정상화보다 정신적인 정상화를 먼저 생각하는 사장, 이철. 그는 직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긍정적 마인드라고 여겼다. 그래서 바로 그 긍정의 중심에 ‘명예’를 심어두었다. 누구도 뽑아갈 수 없도록 튼튼한 묘목을 골라 1년여 동안 제대로 뿌리 내리도록 정성을 다했다. 17개 지사를 방문하는 ‘뿌리투어’와 현장 직원들과 함께 하는 ‘릴레이 뿌리토론’ ‘KORAIL 혁신학교’ 등 다양한 실천운동은 그로부터 연유한 것. 이로써 한국철도의 자부심을 살릴 수 있기를 그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일단은 기본적인 기업 모양새를 갖추는 게 제 목표입니다. 공무원 조직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갖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강조합니다. 고객과의 관계를 바꿔야 한다고,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친절해야 됨을 인지시키는 중입니다.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다가가서 모셔오는 철도공사이기를 꿈꿉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한국철도공사. 운송수단으로서의 기차면 됐지 무슨 고객감동일 것까지 있느냐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기차가 싣고 가는 것은 단순히 사람과 화물만이 아닌 까닭이다. 한 사람의 도전, 한 기업의 미래, 더 나아가 이 나라의 경제, 우리민족의 평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큰 내일을 만드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은 게다. 더불어 아이들이 한국철도공사의 기차를 타고 먼먼 대륙으로 뻗어나가기를, 그 속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그는 기대한다. 그 벅찬 길을 낼 생각으로 이철 사장은 바쁘고 고된 오늘을 쉼 없이 달리고 있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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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