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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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숙려제. 이 다섯 글자를 품고 있으려니 신기하게도 ‘깊이 궁리하게’ 되었다. 최면술사의 주문에라도 걸려든 양, 속절없이 생각에 빠져든 것이다. 제대로 된 ‘숙려’인 셈이었다. 이혼을? 천만의 말씀! 그보다는 ‘결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매운 고추 하나를 베어 문 양, 혀끝에서부터 맴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커다란 바위 하나가 3000년에 한 번씩 인간 세상에 내려오는 선녀의 옷깃에 스쳐 마모되는 1겁이 수천 번 돼야 가능한 게 부부라고 했던가. 그리 돌아보니 참으로 아찔한 인연이다. 굳이 옛말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천륜을 생산해내는 일이지 않은가. 그 제도가 아무리 고리타분하고 가부장적이라 하더라도, 결혼은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B]잘 헤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B]
이처럼 대단한 이들이 헤어지는 것이다. 이혼은 그런 것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어서 ‘남’ 되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나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다. 잘 헤어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이혼숙려제는 간단합니다. 협의이혼을 하려는 부부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후 벌어질 자녀 양육, 면접 교섭, 양육비 등을 사전에 협의해서 결정하는 것이고요. 적지 않은 경우가 오해와 대화 부족으로 이혼을 택하는데, 그 부분을 전문가의 힘을 빌려서 도와주기도 하죠. 상담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정적이지 않게, 잘 헤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선한 미소의 박종택 판사는 한마디로 ‘잘 이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미연에 방지하면 좋을 이혼이지만, 그것을 막을 수 없다면 후폭풍을 제압하겠다는 의미였다. 사실, 이혼은 그 이후 문제가 늘 심각하다. 자녀의 양육부터 시작해서 자녀들의 충격과 폭력 등은 생각보다 큰 사회문제다. 부부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라고,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어쩌겠냐고 말하면서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게 우리 이혼의 문제인 게다. 감정적인 이혼은 그 쓰라린 상처를 덧내기 십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혼을 하되,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노력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혼숙려제를 도입한 것. 그 가장 중심에 아이들이 존재한다고 박종택 판사는 힘주어 말한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B]이혼은 싸우는 기술 부족한 게 원인[/B]
“외국은 이혼이 아무래도 자연스럽잖아요. 다만, 아이 문제에는 관심이 굉장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혼에만 관심이 많아요. 아이가 상처받는 건, 이혼해서라기보다 그 방법과 시스템, 그리고 무관심 때문입니다.”
자식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부모들이지만 실상 이혼을 할 때 뒷전인 경우는 허다하다. 박종택 판사는 그 부분이 늘 안타깝다. 뉴욕의 가정법원에서는 아이들, 소년, 가정 내 폭력, 자녀 양육만을 관리할 만큼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참으로 열악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가정을 지키고, 사회를 지켜내는 것인데 아직은 우리의 인식이 거기까지 닿지 못했음이 아쉽다.
가정파괴로 인해 사회가 떠안게 되는 손실도 엄청나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한데, 모두 뒷짐 진 채 그저 이혼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든다고만 수군거린다. 그건 오해다. 아이들은 이혼 후 두 부모의 이기심으로 병든다. 그것이 박종택 판사의 생각이다. 과연, 틀리지 않았다. 무관심과 방치로 아이들이 점점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이혼숙려제는 아이들을 위한 제도인 것이다.
반신반의였던 이혼숙려제는 적시타였다. 그것도 장외홈런. 이혼숙려제 도입 후 협의이혼 취하율이 2배(9.76%에서 16.87%로) 정도 증가했다. 그뿐 아니다. 숙려기간을 3주일로 연장한 올해의 이혼 취하율은 계속 증가 추세(5월 현재 20.35%). 이쯤 되고 보니, 처음에는 서울가정법원뿐이던 시행 법원도 2006년 현재 광주·대전·수원·춘천으로 확산됐다.
2005년 11월, 국회에 발의된 ‘3개월 이혼숙려제’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혼절차에 관한 특례법’이 통과된다면 앞으로는 더욱 달라질 것이라고 박종택 판사는 이야기한다. 아마 그때쯤이면 오전에 접수해서 오후에 통과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그 동안의 관계를 돌아볼 시간을 얻을 게다. 그 끝이 꼭 화해일 까닭은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누차 강조하지만, 흠집 내는 이별만은 하지 말자다. 그로써 허무해지는 온갖 것들을 보듬자는 의미에서다. 아이들은 두말 할 필요도 없고, 부부 자신들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게 스스로에게 입힌 상처를 예쁘게 봉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간혹 이혼하려는 부부들을 보면서 생각해요. 싸움을 잘하면 해결될 것인데, 싸움의 기술이 부족해서 결국은 이혼까지 하는구나. 기술이 없으면 배워야 되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는구나. 답답하죠, 그럴 때는. 숙려기간과 상담을 통해서 얻는 게 앙금 없애기라면 그것으로도 족해요.”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대학교수, 상담전문가, 종교계 성직자, 심리학자, 의사 등의 상담위원이 포진된 이혼숙려제는 당분간 순항일 듯하다. 효과도 좋을뿐더러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집안일이라며 쉬쉬 숨기려 했던 서툰 관계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은가.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터닝 포인트다. 그 이후는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반대하는 사람들의 걱정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예외조항을 두었다. 이를 테면 가정폭력 등의 긴급한 사유는 바로 처리할 수 있다. 누구를 옭죄려고 만든 것이 아닌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제도인 까닭이라고 박종택 판사는 강조한다. 그 진심은 이미 균열된 가정 곳곳에 닿은 듯하다. 잠깐 상상한다, 아교풀처럼 말랑하고 말간 이혼숙려제도라.
“이곳이요? 올해 지원해서 왔습니다. 청주에서 근무할 때 외에는 이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요. 그런데도 이곳을 지원한 이유는 주말부부도 면하고(웃음), 이 취약한 분야를 위해 뭔가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B]행복 위해 한 템포 쉬어가기[/B]
가정을 지키려고 서울가정법원을 지원한 남자, 소외받고 있는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서 대한민국 모든 가정에 밝은 등불 하나를 선사하고 싶은 남자, 박종택 판사. 그에게는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요즘이다. 출생 후 이름 지을 때부터 사망 후까지 가정에서 이뤄지는 모든 비송사건을 맡고 있는 까닭이다. 그 사건들은 늘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김질케 한다.
가끔 결혼 전에 공부를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배려와 사랑 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까닭이란다.
박종택 판사는 이기심을 버리고 한 발짝 물러서면 모두를 위한 방법들이 보인다고 했다. 감정 때문에 상할 대로 상한 마음을 부여잡고 이혼의 칼을 뽑아 휘두를 것이 아니라 상한 마음을 먼저 돌보아도 늦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나만큼 저 이도 소중하겠구나.’ ‘내 자존심만큼 저 이 자존심도 세워야겠지.’ 그러다 보면 ‘사실’만 보이게 될 것이고, 그 사실을 가려 이혼을 하든지 취하를 하든지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모두가 이기는 싸움은 그렇게 한 템포 쉬어갈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법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너무 당연해서 두말 하면 잔소리겠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으뜸이에요. 국가를 앞세우기 전에 개인이 우선돼야 한다고 봐요. 개인이 행복하면 국가도 행복해지거든요. 이혼숙려제는 개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돕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진심이 상처받은 부부들에게 닿길 바랍니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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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