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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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월 모일 북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다. 이런 글귀의 ‘이 주의 운세’가 눈에 띌 때면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귀인이란 누구일까. 따뜻한 손길로 상한 마음을 보듬는 사람일까, 커다란 비전으로 생을 이끌어주는 사람일까. 어쩌면 생애 단 한번, 어깨를 스칠까말까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게다. 전라남도 장성군 군민을 두고 ‘대단한 행운아’라고 못 박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삶 앞에 나타난 ‘김흥식’이라는 귀인 때문이다.
[B]장밋빛 미래, 교육만이 길이다[/B]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 때, 민주당 공천을 받아 무난히 군수로 당선된 김흥식.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민주당이면 허수아비라도 당선됐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의 지지세력을 등에 업은 군수였다. 하지만 그건 당선 전 상황. 군수가 되자 누구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변화를 모색하려는 그를 모두 껄끄럽게만 생각했다. 그가 선거 당시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주식회사 장성군’이고, 그것이 ‘경제군수론’을 주창한 것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민주당을 대표해서 나온 사람 ‘김흥식’이면 족했으리라. 변화가 양질의 삶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군수 한 사람쯤으로 뭐가 달라지겠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읍·면·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대뜸 “나 군수요. 동네에 무슨 일 없어요?”라고 물었다. 시시콜콜한 동네일부터 시작해 전반적인 사안을 죄다 들어주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사안이 발전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지 맥을 짚었다. 그렇게 장성군을 파악해 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소소한 시작에 불과했다.
“민선 초대 군수로 취임했을 때, 제가 꿈꾼 것은 군민과 공무원의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관행 답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발전적인 장성을 만드는 것이었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고인 채 썩어가는 행정부터 고쳐야했습니다. 어떻게요? 교육이었습니다.”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을 잡았던 경험, 전라남도 내무국에서, 기업의 임원으로서 보고 배운 것을 고향 장성을 위해 제대로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더 먼저, 더 넓고, 더 발전된 곳에서 경험한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 도구로 ‘교육’을 택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한 그였으니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교육만이 힘’이라고 생각한 그에게는 적이 산재해 있었다. 그 혼자만 빼고 모두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변화를 거부했다. 무사안일하게 편안히 근무하는 그들에게 ‘공부해라, 바꿔라’라며 들이대니 좋을 리 만무했을 게다.
군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유난스럽다고만 생각했다.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취임 후 두 달여쯤 지나 ‘21세기 장성아카데미’ 교육을 시작했다. 예산 때문에 한 달에 한번만 하라는 것도 무시하고 네 번씩 강행했다. 다리 하나 안 놓고 도로 하나 안 뚫어도 된다는 심정으로 교육 예산을 책정했다. 주위로부터 숱하게 뭇매를 맞으면서도 절대로 굽히지 않고 ‘21세기 장성아카데미’를 이끌어나갔다.
“진짜 어렵게 시작했습니다. 뭣 하러 헛돈을 쓰냐는 힐난을 부지기수로 듣고 다녔으니까요. 다들 관심도 없고 불편하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1년을 반강제로 참석하게 했어요. 지금요? 매주 금요일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B]소프트웨어 개발이 성공을 부른다[/B]
조순 전 서울시장, 천정배 법무부 장관,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탐험가 허영호 씨 등 각계 인사 초청 특강이 11년째 끊임없이 이어져온 ‘21세기 장성아카데미’. 그동안 강의한 강사가 500명이고 수강한 연인원이 24만 명이니 그 지지도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공무원과 군민은 잠에서 깨어났다.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장성군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지금의 장성군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비결이요? 간단합니다. 생각을 바꾸니 행동이 바뀌었고, 행동이 바뀌니 습관이 변했고, 습관의 변화가 장성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장성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21세기 장성아카데미’는 빙산의 일각이다. 장성군의 교육 프로젝트는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견학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단지 지식의 차이만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소 겪고 부딪치면서 배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은 허상일 수 있습니다. 서울 특급호텔에 가서 만 원짜리 커피를 한 잔 마셔 봐야, 장성의 1500원짜리 커피 맛과 비교할 수 있지요. 서울 시내 백화점 구경을 하고, 큰 은행을 다녀와 봐야 그리고 그런 수준으로 고민해 봐야, 마인드가 바뀐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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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다. 기업체 3박4일 연수를 10여 년째 시키는가 하면 삼성화재, 현대그룹의 현대인재개발원, 한국능률협회 등에서도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유럽 연수도 보내주었다. 몇몇 특정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전원을 다 다녀오게 했다. 그 후에는 미국으로 무려 400명이나 배낭연수를 보냈다. 대상은 공무원만이 아니었다. 교육에 있어서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원하는 만큼을 제공하겠다는 그였다. 강의는 물론 택시기사들의 일본 MK택시 견학, 농민들의 해외연수 등 그야말로 교육에 전력을 다했다.
“1인당 220만 원으로, 1년에 130시간 교육을 받는 장성군 공무원과 교육을 받지 않은 공무원은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신문 기사를 보니까 교육투자를 많이 한 은행이 실적이 좋더군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그에게 교육의 효과가 과연 무엇이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그는 주저 없이 ‘전부’라고 말한다. 교육이란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붓는 콩나물 기르기와 같다고, 콩나물시루는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물이 그냥 새나가는 것 같지만 어느새 콩나물은 훌쩍 커 있고 사람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콩나물이 자라는 데 물이 전부이듯 교육은 사람에게 전부인 게다.
[B]수치화 될 수 없는 교육의 무한한 가치[/B]
“굳이 수치를 들먹이자면 장성이 10년 동안 105억 원에 달하는 상금을 받았고, 168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1년에 10억 원씩 벌어들인 셈입니다. 웬만한 중소기업이 1년에 15억 벌 수 있습니까? 제가 군수로 취임한 후 장성군 이자 수입을 정기예금으로 바꿔놓으니까 그 이듬해 이자수입이 16억 원이나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23억, 지난해에는 46억 원까지 올랐습니다. 군민의 세금도 그렇게 관리할 수 있어요.”
개혁이었다. “시골 촌놈들에게 뭐하자고 돈 들여서 교육을 시키느냐”는 힐난은 이제 감탄사로 바뀌었다. 그의 믿음대로 교육은 사람을 바꾸었고 삶의 질을 180도 바꿔놓았다.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것은 없다. 세상을 알기에 시골 한구석에서도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거머쥘 수 있게 됐다. 3선 연임하는 11년 동안 ‘주식회사 장성군 CEO’임을 자처했던 김흥식, 그로 인해 가능한 변화였다. 인구 5만 명밖에 안 되는 시골 군청의 자치행정을 전국 80여 개 지자체가 다투어 벤치마킹할 정도로 키워놓은 그는 혁명가임에 틀림없다.
이기주의와 관료주의가 팽배한 자그마한 고장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교육의 도시로, 가장 선호하는 기업유치 1위 도시로, 도시 못지않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문화 도시로 탈바꿈시킨 김흥식. 이제와 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개혁을 두려워하는 이들과 싸우느라 참으로 외롭고 고독했다고 한다. 얼핏 지난 시간을 회상하면 목이 멜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지난 11년간 저녁식사조차 밖에서 하지 않을 정도로 자기 자신을 다스렸으며 군의 재정, 예산 운영 실태와 군수의 판공비 사용명세를 실시간으로 올리면서 투명성으로 개혁 의지를 불태웠다. 그 고독한 개혁의 결과로써 우리는 이제 세상이 변할 수 있음을 믿게 됐다. 그로 인해 진정한 귀인은 깨어 있는 자만이 조우하는 것임을 믿게 된 것이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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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