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탈탈탈탈~ 빨간 오토바이가 힘겹게 강원 평창군의 고개 멧둔재를 오른다. 뒤에 빨간 짐칸이 달린 게 한눈에도 우체국 집배원의 것임을 알게 한다. 이따금 밭일하던 농민들이 집배원을 향해 손을 흔든다. 고개 중턱에 난 샛길을 들어선 집배원은 오토바이조차 더는 오르지 못하는 산비탈이 나타나자 오토바이를 세우고는 우편물을 하나 들고 뚜벅뚜벅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평창우체국 집배원 권운식(51) 씨. 그는 이처럼 우편배달을 위해 하루 평균 1백 킬로미터 거리를 오토바이나 도보로 이동한다. 권 씨뿐 아니라 대다수 군 단위 우체국 집배원들은 1인당 평균 10개 리(里)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일하기 쉬운 편이에요. 겨울이 제일 고생이죠. 특히 평창은 눈이 왔다 하면 1미터씩 쌓일 때가 많아요. 그러면 눈 위를 오토바이로 달리는 셈인데, 한번 잘못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 10년 전인가, 눈이 많이 내려 마을 초입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우편물을 배달한 적이 있어요. 한 시간 정도 걸어서 갔다 왔더니 오토바이가 눈에 덮여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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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도 마찬가지다. 폭우가 내리면 계곡 물이 언제 불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번은 계곡 너머 있는 집에 배달할 우편물이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계곡 물이 불고 있다면서 막더군요. 이 정도면 지나갈 만하다 싶어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급류가 밀려와 물 위에 붕 뜨는 거예요. 다행히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땐 아, 죽었구나 싶었죠.”
얼마나 중요한 우편물이었기에 목숨까지 내걸고 배달을 하려 했을까 싶어 물었더니 일간지였다며 웃었다.
“신문 보는 걸 하루 낙으로 사는 분이었어요. 그러니 신문이 안 오면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배달하기로 한 물건은 최대한 빨리 전해줘야죠.”
그의 남다른 책임의식은 이뿐만이 아니다. 10년 전부터 독학으로 기술을 익혀 자기 오토바이는 스스로 고친다. 동료들에게도 기초적인 수리기술을 익혀놓으라고 권유한다. 심지어 필요한 소모품을 직접 구입해 교체함으로써 연간 1천만원의 우체국 경비를 절감하고 있다. 그가 수리기술을 배운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배달을 빨리 하는 게 집배원의 임무인데 오토바이가 고장 나면 임무를 다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고장 난 건 집배원과 우체국의 사정일 뿐이죠. 우편물을 제때 받을 고객의 권리를 우리 잘못으로 빼앗으면 안 되잖아요.”
권 씨가 집배원의 길에 들어선 때는 1979년, 올해로 만 30년이 됐다. 일제강점기부터 평생 집배원 생활을 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집배원은 시골 사람들에겐 가장 친근하고 필요한 존재였다. 마을에 전화가 있는 집이 드물어 전보가 가장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보를 치기 위해, 혹은 전보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집배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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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당시 촌로들은 대다수가 문맹이어서 편지나 전보가 와도 읽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전해주는 집배원이 직접 내용을 읽어주다 보니 자연스레 기쁜 일과 슬픈 일을 제일 먼저 나누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됐다.
“특히 군대 간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어줄 때면 어머니들이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았어요. 지금도 입대할 때 입고 간 옷을 담은 소포를 받을 때면 어머니들이 다들 울곤 해요.”
30년을 한결같이 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불난 집 불을 꺼주기도 하고, 강도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우편물을 전해주러 가는데, 창문으로 검은 연기가 새어나오는 거예요. 뭔가 해서 문을 여는 순간 불길이 확 치솟더군요. 안주인이 불을 켜놓은 채 외출했던 모양이었어요. 119에 신고해도 소방차가 오는데 20분 넘게 걸리니까 그 사이에 집이 다 타겠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불을 껐죠.”

권 씨는 봉투에 적힌 이름만 봐도 어디 사는 누구인지를 대부분 안다. 주민들의 웬만한 개인사도 꿰고 있다. 말 그대로 가장 가까운 이웃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 사는 노인들을 틈나는 대로 보살피고 있다. 그런 봉사정신을 인정받아 지난해엔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가 주는 ‘자랑스런 우정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에요. 형편이 어려운 걸 뻔히 알면서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 그저 제가 도울 수 있을 만큼 도와드린 거죠. 또한 외롭게 사시는 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까 지나는 길에 잠깐 말벗이 돼드렸을 뿐이고요. 좋은 일을 저보다 더 많이 하는 집배원들이 적지 않아요.”
권 씨는 집배원 생활을 하면서 올해 두 딸을 대학과 대학원까지 졸업시켰다. 이젠 요령을 부릴 만도 하건만 “아침 7시면 출근해 다른 집배원들이 곧바로 배달을 나갈 수 있도록 사전 준비작업을 하고, 저녁 6시쯤 배달을 마친 뒤에도 잔무 정리까지 끝낸 후 8시가 넘어서야 퇴근한다”는 게 평창우체국 박영식 우편물류과장의 귀띔이다. 권 씨에겐 집배원이 천직인 모양이다.
그는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다고 했다.
“주소불명으로 반송되는 우편물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이사 가면 주민센터에 반드시 이전신고를 하잖아요. 이전신고 정보를 우체국이 공유할 수만 있어도 반송되는 우편물이 훨씬 줄지 않을까 싶어요. 귀한 우편물을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우리도 안타깝고, 보낸 사람도 힘 빠지는 일이잖아요. 행정안전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글·최호열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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