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4월 2일, 인천항 연안부두 통선장을 출발한 인천본부세관(이하 인천세관) 감시관실 소속 감시정 ‘인천 304호’(50톤급)가 두 줄기의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를 가른다. 인천세관 감시관실 손영택 정장(감시2주무)을 비롯한 소속 대원 6명은 말없이 가스총과 이동용 사다리를 점검한다. 잠시 후 닥칠지도 모를 긴급 상황을 예감한 듯.
5분쯤 지났을까. 가스오일과 벤젠 등 화학제품을 실은 S사의 케미컬선(화학제품 운반선)이 시야에 들어오자 ‘기동’이 시작됐다.
“타타타닥.”
감시정이 배 옆 부분에 닿자 대원들은 전광석화처럼 사다리를 올랐다. 헛디디면 시퍼런 바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발은 사다리에 착착 달라붙었다. 흡사 건물 유리창에 붙어 빌딩을 오르는 스파이더맨이 연상될 정도였다.
대원들이 가장 먼저 ‘침투’한 곳은 선장실. 강진광 반장이 ‘항해 메모(Voyage Memo)’와 ‘선원 명단(Crew List)’, 선용품신고서 등 기초 서류를 점검했다. 강 반장 : “따로 신고할 물품 있나요?”
선장 : “노트북 정도 있습니다.”
대원 : “총기는요? 창고 확인 좀 하겠습니다.”
선장 : “그런 것 없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대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선박 창고와 침실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밀수품이나 총기, 마약류 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침투.
창고를 확인하러 가는 짧은 시간에도 대원들의 시선은 선원들의 눈에 꽂혔다. 선원 중에는 미얀마 국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직감입니다.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외국인 선원은 분명 숨겨야 할 뭔가가 있는 거죠.” 강 반장이 귀띔한다. 대원들은 비좁은 기관실과 기름에 찌든 바닥, 연료탱크 등을 샅샅이 살폈다.
“좁은 기관실 안에 고철을 쌓아둔 곳이나 기름 묻은 바닥 밑에는 금괴 같은 밀수품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연료탱크를 이중으로 만들어놓은 곳도 의심스럽죠.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한 거죠. 뜯어보면 인삼, 산삼 냄새가 올라오기도 해요. 뱀 밀수를 많이 한 배는 뱀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30분간의 수색이 끝나자 ‘상황 종료’. 대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다시 감시정에 올랐다.
2004년 30억원에 들여온 304호 감시정은 물을 뿜어 추진력을 얻는 워터제트 방식. 배 아래쪽에 스크루가 없어 최대 35노트의 빠른 속도로 어망을 타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인천세관 감시관실 직원들은 3척의 감시정과 동고동락하며 국경 최전방에서 ‘선제적 방어’를 펼치고 있다.
“정보 분석 담당자가 인천항에 들어올 선박의 입항예보(EDI) 정보를 분석합니다. 어디서 왔고, 어떤 목적으로 들어왔는지 분석하는 거죠. 만약 이때 밀수 전과가 있는 우범 선원이 탔다든지 선박의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판단되면 입항에 맞춰 ‘기동’합니다.” 손 정장의 설명이다.

감시정의 밀수 단속은 항만세관의 원초적 임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원의 밀수나 선박과 선박을 이용한 ‘분선 밀수’가 급격히 줄면서 단속 업무보다는 입·출항을 돕거나 우범성 선박을 감시하는 활동의 비중이 커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중국과의 교역이 늘고 있는데다 언제 닥칠지 모를 위협적인 순간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선박의 정보 분석과 잠복 감시도 일상이다. ‘신속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업무이기 때문.
“예전에는 감시정이 목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루미늄 재료로 만든 배에다가 30노트가 넘는 속력을 내죠. 첨단 장비가 갖춰지면서 불시에 종합상황실에서 지령이 내려와도 즉각 수색할 수 있게 됐죠.”
33년간 재직한 손 정장의 말대로 세관 업무도 첨단을 자랑한다. 인천종합상황실의 폐쇄회로TV 49대는 인천 내항, 국제항, 남항의 49개 접안시설을 24시간 감시한다. 종합상황실의 모니터에는 마치 방송국 조정실처럼 항만 곳곳의 상황이 비쳐지는데,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할 수 있다.
인천세관 문미호 공보담당의 설명이다. “종합상황실에서는 선원들이 외부 인원이나 차량과 연계해 숨겨 들여온 밀수품을 반출하는 등의 이상행동을 하는지 감시합니다. 24시간 모든 항만을 예의주시하죠. 밀수 정황이 포착되면 곧바로 세관 감시관실에 통보하고, 현장에서 밀수범을 검거합니다.”
2007년 5월에는 컨테이너 차량이 출구로 가지 않고 정박해 있던 화객선(화물과 여객을 함께 수송하는 배) 안으로 순식간에 진입하는 모습이 상황실 모니터에 걸리면서 그 자리에서 명품시계 밀수업자를 검거하기도 했다. 누군가 몰래 종이상자 위에 놓아둔 독일제 권총 1정과 실탄 1백 발을 발견해 압수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종합상황실에서 감시관실로 ‘커튼 치기’가 우려되는 선박을 감시하라는 지령이 부쩍 늘었다. 커튼 치기는 커튼을 쳐서 가리는 것처럼, 컨테이너 문 앞쪽에는 정상적인 물품을 배치하고 뒤쪽에는 밀수품을 숨겨놓는 가장 대표적인 밀수 수법을 가리키는 은어다.

컨테이너 이동 X-레이 검색 차량도 감시 업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첨단 장비다. 10억원에 달하는 이 장비는 컨테이너 내부를 관찰하는데, 검색 차량 모니터에 독특한 형체가 보이거나 물건 안에 또 다른 물건이 들어 있는 것이 감지되면 즉시 해당 컨테이너를 집중 수색한다.
최근 조수기(해수를 담수로 바꾸는 기기) 수입업자가 물탱크 안에 비닐 팩으로 압축한 고추 28억원어치를 숨겨 들여오다 적발된 것도 기둥 모양의 비닐팩이 X-레이 검색 차량에 고스란히 찍혔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즘 밀수는 컨테이너를 이용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사람이 직접 물건을 갖고 개별 통관을 시도하면 여지없이 검색대에서 적발되기 때문이다.
현재 해상기동을 하는 감시관실 직원은 42명(전체 5백4명). 모두 해양수산직으로 2개조로 나뉘어 24시간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을 예의주시한다. 그렇다고 모두 해상기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육상초소에서 감시 업무를 수행한다. 최근에는 해양대, 수산대 등 관련 분야 전공자들이 대거 이 업무에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3주간 신규자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된다.
“이 일은 자부심 빼면 할 얘기가 없어요. 최전선에서 밀수와 싸운다는 자부심이죠. 요즘은 6월 1~2일 열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때문에 긴장감이 더합니다. 우리가 최전선에서 위험요소를 제거해야 나라가 평안하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손 정장의 자부심은 단속 실적으로도 알 수 있다. 지난 한 해 인천세관이 적발한 밀수 단속 건수는 8백62건, 금액으로는 1조7천4백49억원에 달한다.
글·배수강 주간동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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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