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며칠간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말끔히 가신 4월 말. 지하철 7호선 장암역과 잇닿은 도봉차량기지 한쪽에 전동차 8대가 늘어서 있다.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위풍당당한 차량에 감탄하다보면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누비는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은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손길 없이는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 목적지까지 승객을 안전하게 모셔다주는 전동차의 편리함을 누리기 힘들다. 이들은 전동차를 굴리는 마이더스의 손, 서울도시철도공사 도봉기지 차량정비팀원들이다.
1994년 설립된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서울지하철 5, 6, 7, 8호선의 운영을 맡는 기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관할하는 이 4개 선에는 모두 6군데의 차량기지가 있다. 5호선의 방화와 고덕, 6호선의 신내, 7호선의 도봉과 천왕, 8호선의 모란이 그곳이다. 승객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이곳에는 어디나 차량정비팀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전철을 더욱 믿음직스럽고 안전한 시민의 발로 만들려는 이들의 숨은 노력은 추위와 더위,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전철은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하나잖아요. 잔 고장이나 지연 없이 고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려면 지속적인 점검이 필수입니다. 운행점검은 전철이 운행을 마친 새벽에도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정비인력들이 3조 2교대로 24시간 차량 곁에 붙어 있어야 해요.”
도봉차량기지에서 10년 이상 전동차들과 씨름해온 김종기 검사기술파트 과장(41)은 초창기 ‘야근의 추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쓴웃음이 난다. “지금은 히터도 있고 냉방기도 있지만 처음엔 부대시설들이 부실하기 짝이 없었어요. 새벽녘엔 이곳 온도가 영하 10~15도까지 떨어졌습니다. 겨울철 새벽녘에 칼바람을 맞으며 그날 나갈 40여 대의 차량을 점검하기 위해 운행점검과 출고점검을 하다보면 동태가 되기 일쑤였죠. 그런데 몸은 얼어도 정신만은 말짱했어요. 차량에서 문제가 발견될수록 더 탐구심이 불타올랐죠.”
차량 정비가 이뤄지는 검사구역 안에는 1천 5백와트의 직류 전류가 흐르는 전차선을 비롯, 위험물 투성이다. 안전교육이 끊임없이 이뤄지는데도 크고 작은 사고가 적잖이 발생한다. 이렇게 편치 않은 작업조건, 낮지 않은 위험도인데도 이를 감당하게 하고 오히려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이런 솟구치는 탐구심과 엔지니어로서의 승부욕이다.
정비팀은 일상적인 운행점검 외에도 닷새에 한 번씩 하는 5D(day) 점검, 넉 달에 한 번씩 하는 4M(month) 검사, 4년마다 전동차를 종합 진단하는 4Y(year) 검사 등으로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고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하는 셈이다. 기관실 컴퓨터가 고장 부위를 알려주긴 하지만 구체적인 전동차 이상 원인은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뜯어봐야 알 수 있다.

“전동차도 생명체와 같아요. 계속 운행하다보면 노후화되고 그러다보면 삐걱거리게 되거든요.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이나 컴퓨터도 그렇잖아요. 이걸 예방하려면 보고 또 보는 꾸준한 점검과 정비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보고 또 봐도 고장이나 불량 발생을 1백퍼센트 막을 수는 없다. 가장 난감한 때는 선로를 주행하던 차가 일순 멈춰버리거나 운행이 지연되는 때다.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전철의 특징이자 매력이란 뭐니 뭐니 해도 정시운행인데 이런 일이 생기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럴 때는 고객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기계발에 더욱 채찍질을 하게 된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우리 정비팀의 존재 이유가 고객의 편안한 전철 이용이잖아요. 나아가 도시철도공사 자체의 존재 이유도 그렇고요. 이 점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비팀 사람들은 쉬는 날 전철을 타도 그냥 타는 법이 없어요. 뭐 문제 있는 곳이 없나 주변기기나 실내기기를 두리번거리고, 고객이 편안하게 느끼는지도 늘 살펴보게 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점검한 차량이니 절로 그렇게 되는 거죠.”
전철을 이용하는 승객의 눈높이가 높아져감에 따라 도시철도공사의 초점도 초창기 ‘안전운전’에서 갈수록 ‘고객만족’으로 맞춰져 가고 있다. 정비를 비롯해 차량 내 청소와 기기 관리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데도 차량에 토사물이 있다, 형광등이 어둡다는 등의 고객 민원이 한 달에도 몇 건씩 날아든다. 그럴 때마다 높아진 시민의식을 깨닫고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전철이 세태를 알려주는 바로미터가 될 때도 있다. “심야차량의 경우 종점에서 모두 내리시라고 수차례 방송해도 술을 과하게 마신 승객이 차량기지까지 그대로 실려오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의정부의 경찰 지구대에 연락해 집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하죠. 경제가 어렵기 때문일까요, 요즘 이런 분들이 부쩍 는 것 같아요.”
이렇게 안타까운 이들이 늘어날수록 더 쾌적하고 안전하며 제 시간에 맞춰 다니는 차량으로 가꾸는 것이 아픈 속을 풀어주는 자신들의 몫이라고 정비팀은 믿는다. 지하철은 서민의 발이기 때문이다.
전동차로 맺어진 정비팀 사람들의 관계는 가족보다 끈끈하다. 함께 야근하며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전동차 들어오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어떻게 탈이 났는지 대충 짚어낼 수 있다는 ‘차량 도사’들. 전동차의 월간 고장률이 줄어들 때 가장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는 그들. 정비팀 사람들의 바람은 소박하면서도 한결같다. 자신들이 정비한 전동차로 고객 불편이 조금 더 덜어지고 행복은 조금 더 보태지는 것이다.
글·손정숙 객원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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