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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의 ‘청결 파수꾼’ 환경미화원들



입춘이 며칠 지난 2월 초순. 새벽 5시에 찾은 서울 종로 거리는 낮과 사뭇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 밤샘 영업을 하는 업소들의 간판과 네온사인이 호젓하게 빛나고 손님을 기다리는 빈 택시들 옆으로 드문드문 취객들이 지나간다. 한적한 대로를 질주하는 새벽 버스에서 내린 행인들은 추위에 쫓기듯 바삐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같은 낯선 새벽 풍경 속에서 수거수레를 끌고 다니며 온갖 쓰레기와 오물을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헬멧에 주황색 상의 차림의 이들은 서울 종로구청 소속 환경미화원들이다. 차도에서 대형 청소차량이 저속으로 인도 옆을 지나는 동안 차량에 탑승한 환경미화원들이 뛰어내려 생활쓰레기 봉투와 재활용품 봉투를 청소차에 싣는 모습이 활기차다.

새벽녘 도심 거리에서 환경미화원들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서울 시민 대부분이 잠들어 있는 이 시간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 아닐까. 묵묵히 그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온갖 쓰레기가 나뒹구는 거리를 깨끗하게 되돌려놓아 시민들에게 상쾌한 아침 출근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일 년 중 요즘이 제일 낫습니다. 혹한이 지난 데다 유동 인구가 적어 거리 쓰레기량도 적은 편이죠. 3월부터는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가로수 껍질에 꽃가루까지 더해집니다.”

종로2가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박효섭(45) 씨는 거리의 쓰레기를 모아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으로 분류하고, 일반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 대형 수거차량이 가져가도록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유흥업소들이 밀집한 종로2가 일대는 종로구청 관할지역 중에서도 가장 거리청소 업무량이 많은 구역이다. 종로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175명은 9개 반으로 나뉘어 가로 청소, 재활용품과 대형폐기물 처리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주거지역 생활쓰레기는 청소대행업체 3곳(업체당 35~45명)이 맡고 있다.

특이한 점은 박 씨의 청소용 빗자루가 흔히 보는 플라스틱 빗자루가 아니라 대나무 잔가지로 만든 수제 빗자루라는 것. 종로는 유동 인구가 많다보니 매끈하게 코팅 처리된 광고용 명함이나 전단이 많은데 플라스틱 빗자루로는 이런 종이들을 쓸어 담기 어려워 이곳 환경미화원들은 빗자루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그런데 이 대나무 빗자루 수명은 겨울이면 사흘에 불과하다. 얼마나 쓸어 담을 일이 많은지 짐작할 만하다.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답게 이곳 환경미화원들도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겪어왔다. 일년 내내 행사나 시위가 많은 광화문, 종로, 대학로 거리가 모두 종로구청 관할구역에 속하기 때문. 1977년부터 환경미화원으로 일해온 함종환(56) 씨는 연탄재를 실어 나르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근무 여건이 당시 같으면 아무도 환경미화원 안 하려고 할 것”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1970년대는 대로변보다 주거지역 골목의 연탄재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죠. 연탄재는 비가 와서 물을 머금게 되면 말 그대로 ‘천근만근’입니다. 수거수레 무게가 1t은 거뜬히 넘었죠.”

그래서 경사진 언덕길을 오르려다가 연탄재 무게에 못 이긴 수거수레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환경미화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당시 순직한 환경미화원들의 아내는 남편의 뒤를 이어 환경미화원의 길을 걷기도 했다. 지금도 종로구청 소속 여성 환경미화원(10명) 대부분이 순직한 환경미화원의 배우자들이다. 생활고도 문제였지만 당시에는 환경미화원 할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도 배우자가 뒤를 이은 한 이유였다고 한다.

당시 환경미화원들은 출퇴근 시각이 요즘처럼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아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많은 계절에는 새벽 한두 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했고, 변변한 환경미화원 휴게실도 없어 겨울이면 차가운 도시락을 길거리에서 먹어야 했다고 한다. 여성 환경미화원들은 어린 아이를 들쳐 업고 일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는 도로변 청소가 더 어려운 일이 됐죠. 시위대가 도심을 휩쓸고 최루탄이 사방에서 날리던 시절, 깨진 보도블록을 하루에도 몇 트럭분씩 치워야 했습니다. 게다가 거리를 쓸다보면 최루탄 가루가 날려 얼마나 매운지 매일 눈물 콧물을 쏟았죠.”

환경미화원노조 종로지부장이기도 한 함 씨는 “요즘은 깨진 보도블록과 최루탄은 사라진 대신 시위단체들이 가져온 각종 시위용품을 치우느라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 도심 시위 때는 광화문 사거리에 쏟아진 모래더미를 치우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고. 게다가 환경미화원들은 연중무휴로 근무한다. 인원을 반으로 나눠 번갈아 쉬기는 하지만 연휴를 즐길 여유는 없다. 

최근 실업난이 심해지자 환경미화원 지원자가 늘어나 일부 지역에서는 시험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이르고 물리학 박사까지 환경미화원 시험에 도전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환경미화원직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점 때문에 이처럼 지원자가 몰리는 데 대해, 현직 환경미화원들은 “할 사람이 없어 애를 먹던 게 불과 몇 년 전 이야기인데,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청소 업무의 성격 자체가 크게 변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환경미화원이 하루라도 결근하게 되면 해당 구역 쓰레기가 그대로 쌓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성실성이 더 없이 중요하다. 더욱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아 지금도 가족에게 환경미화원임을 숨기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청소대행업체로 일부 업무가 넘어가면서 일인당 업무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사람을 만나거나 식당 같은 곳을 이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몸에 밴 쓰레기 냄새도 큰 스트레스다. 8년차 환경미화원 김두원(44) 씨는 “몇 년 전 몸을 씻고 퇴근했는데도 초등학교 다니는 둘째딸이 ‘아빠, 냄새!’ 하며 얼굴 찌푸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고등학생인 큰딸이 아빠 직업란에 당당하게 ‘환경미화원’이라고 적은 것을 알고 코가 시큰해졌다”는 그는 “우리에게는 깨끗해지는 거리와 더불어 잘 자라주는 자녀들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환경미화원도 있었지만 이젠 고졸 학력이 대다수이고, 대졸 환경미화원도 적지 않다. 학구열도 높아 종로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중에는 방송통신대학 재학생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 시내에만 6000여 명, 전국에는 2만 1000여 명의 환경미화원이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며 매일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만일 이들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3D 업종’이라는 환경미화원의 사회적 지위는 낮을지 모르지만 그 ‘영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만큼이나 대단하지 않을까.

글·박경아 객원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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