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아프리카는 제 영혼의 고향 같은 곳이에요. 예술가로서 제 꿈을 차고 넘치게 이뤘으니, 이제는 제가 아프리카 아이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요.”
성악 분야의 해외 진출 개척자로 꼽히는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교수(65·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가 아프리카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하는 그는 40년 음악 인생과 명예를 모두 내려놓고 내년 봄 아프리카 말라위로 터전을 옮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9천여 명의 고아를 돌보는 현지 가톨릭 공동체에 합류해 말라위 아이들을 위한 봉사로 인생 2막을 열 예정이다. 김 교수는 “그동안 예술가로 누린 모든 것에 감사한다. 이제는 그 감사함을 되돌려줄 때”라며 “새로운 삶,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아프리카로 가려 한다”고 말한다.
그가 아프리카 봉사에 대한 소명을 갖게 된 것은 2005년 안식년 때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였다. 노후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유럽, 미국, 아프리카 3대륙을 여행한 그는 아프리카의 매력에 푹 빠졌고 한국에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돕기에 나섰다.
“잠비아의 헐벗은 어린이들이 마음에 많이 남더라고요. 기아와 가난, 질병에 시달리고, 아이들은 최소한의 교육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기도 했고요. 이곳이라면 제 남은 생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매년 두 차례씩 아프리카를 방문했어요. 가톨릭 신자다 보니 선교 현장을 방문해 크고 작은 숙제를 받아왔죠. 우물을 파고, 병상을 마련하고, 학교를 짓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어요.”
김 교수는 2006년부터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모금운동을 펼쳐왔다. 우물을 파는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1억2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모아 아프리카로 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9차례 아프리카에 다녀온 김 교수는 내년 봄 아예 아프리카 말라위에 터전을 잡는다. 지금 사는 집을 내놓은 그는 집을 처분한 돈 2억원가량을 아프리카와 말라위를 위해 기부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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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적극적으로 아프리카와의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떠날 결심을 했어요. 멀리서 살면 구체적으로 뭐가 필요한지 안 보일 수도 있으니까, 곁에서 가까이 살아야겠다 싶었죠.”
아프리카 여러 나라 중에 특별히 말라위를 선택한 이유는 그곳이 어느 곳보다 도움이 절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말라위는 내전이 없는데도 에이즈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1천4백만 인구에 고아가 1백만명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성품이 온유하고 평화로운 곳이기도 하죠.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어요. 한 나라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렸으니까요.”
말라위에 만들 공동체의 이름이 ‘루스빌로’다. ‘희망’이라는 뜻의 말라위 원주민어. 학교를 짓고 교사들을 지원하고 장학금을 마련하고 우물을 파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에 도움을 줄 후원자를 모집하는 한편, 아이들도 직접 가르칠 계획이다.
“음악과 춤이 그곳 사람들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 있어요. 음악적으로 기여할 일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그곳에서 제2의 김청자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죠.”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그는 고교 졸업 후 독일로 유학 가 아우구스부르크의 레오폴드 모차르트음대, 오스트리아의 빈국립음대에서 공부한 뒤 한국 성악가 최초로 유럽 무대에 데뷔해 25년간 오페라 본고장인 유럽에서 활약한 ‘원조’ 해외파 성악가다.
“사실 가정환경이 풍족하지 않아서 저 혼자서는 음악가가 될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어릴 때 아일랜드 출신의 선교사 신부님 덕분에 성당에서 처음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을 알게 됐고, 유학을 꿈꾸게 됐어요. 독일 유학도 신부님, 수녀님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가게 됐고요.”
유학 시절 수녀님들의 기숙사에 머물며 성악 공부에 매진한 그는 1970년대 스위스 베른시립오페라단의 전속단원으로 활약했다. 그 후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에서 ‘일 트로바토레’ ‘카르멘’ ‘살로메’ 등의 오페라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한국 성악가의 명성을 드높였다. 귀국 후 1994년부터는 15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제자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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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음악가로서의 꿈을 다 이뤘으니 이제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며 “육체의 고향이 한국, 정신의 고향이 독일이라면, 이제 제 영혼의 고향은 아프리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한 달에 1천 달러면 그쪽에서 수십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며 “후원자들을 이 고귀한 나눔에 동참시키는 것도 제가 할 일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 살면서 1년에 한두 번 아프리카를 다녀왔던 삶이 이제는 거꾸로 될 것 같다. 후원자도 모집할 겸 1년에 한두 번 한국에 나와 지인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말한다.
독일 베를린음대에서 테너 색소폰을 전공한 아들(다니엘 글라첼)을 두고 있는 그는 말라위에는 혼자 갈 예정이다.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하던 1980년대 초반 공연을 위해 영국으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독일인과 사랑에 빠진 김 교수는 그와 결혼해 다니엘을 얻었다.
한편 김 교수는 지난 11월 21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퇴임 무대에 올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제자들로 구성된 크누아(KNUA)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3번 4악장의 독창을 불러 성악가로서 마지막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 전 김 교수는 “40년 음악 인생을 이 무대를 통해 마무리한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말러의 음악으로, 사랑하는 제자들과 특별한 무대를 갖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지휘자 정치용 씨의 안내로 무대에 등장한 김 교수는 완숙한 기량으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한 알토 독창을 열창해 관객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공연이 끝나고 홀에서는 김 교수를 둘러싸고 제자들이 사랑을 주제로 한 성가곡을 불러주어 뜨거운 사제애를 느끼게 했다.
글·현윤경(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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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