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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 최초 메이저 우승 양용은 선수



 

“골프대회 사상 최대 이변이다.”“역대 스포츠 사상 세 번째로 큰 이변이다.” 8월 17일 양용은(37)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4)를 누르고 미국프로골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자 AP통신, USA투데이,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이변’이라는 말을 써가며 보도했다.
 

그만큼 메이저대회에서 단 한 차례도 역전패를 당하지 않았던 타이거 우즈가 무명이나 다름없는 양용은에게 패배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다.
 

양용은은 ‘다른 선수 주변의 공기까지 빨아들인다’는 카리스마를 지닌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경기를 했다. 도대체 어떤 이력을 지닌 선수이기에 그처럼 배짱과 평정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바람의 아들, 타이거 우즈를 꺾었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챔피언에 오른 뒤 양용은이 졸업한 제주농고(현 제주고) 교문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바칠 정도로 열심히 하면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의 모습에서 학생들이 많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양용은은 19세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두 살 때 미국의 유명 TV 쇼에 나와 ‘골프 신동’의 존재를 알렸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1972년 제주에서 태어난 양용은은 제주고 1학년 때 보디빌더를 꿈꿨고, 3학년 때는 대학에 가고 싶어 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농가에서 3남5녀 중 넷째로 태어난 그에게 이런 꿈은 사치였다. 결국 그는 고교 졸업 후 6개월가량 아버지의 농사를 돕다가 용돈 벌이라도 하겠다며 골프연습장에서 먹고 자며 공 줍는 일을 했다. 이것이 골프와의 첫 인연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양한준(65) 씨는 “골프는 부자나 하는 운동이니 농사를 짓자”고 설득했고 그는 건설사에 들어가 굴착기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무릎을 다쳐 두 달 만에 그만두고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청춘을 보냈다. 양용은은 그 시절만 떠올리면 “참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1991년 단기사병으로 제대한 뒤 그는 제주 오라골프장 연습장에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공을 주우며 남들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이제부터 이걸로 밥벌이를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조명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밤에 플래시 하나에 의존해 양용은은 선배에게 얻은 중고 골프채로 스윙을 연습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는 “남들이 공 10박스를 치면 나는 1백 박스를 칠 정도로 골프가 정말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스물네 살이던 1996년.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지만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해 스물한 살이던 타이거 우즈는 나이키와 4천만 달러, 타이틀리스트와 2천만 달러의 후원 계약을 맺으며 PGA 투어에 정식 데뷔했다.
 

양용은은 1999년 상금 랭킹 9위에 올랐지만 벌어들인 돈은 1천8백만원 남짓이었다. 스스로 “구두닦이 전국 9위도 그것보다는 더 벌겠다”고 말할 정도로 적은 벌이였다. 이후 3년 뒤 국내에서 첫 승을 올린 양용은은 2004년 일본 투어에서 2승을 올리면서 처음으로 삶의 안정을 찾았다. 양용은은 “일본 투어 시험을 보기 위해 경기 용인시의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남겨놓고 떠날 때는 가슴에서 피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2006년 한국 오픈에서 레티프 구센 등을 제치고 우승한 자격으로 출전한 유럽 투어 HSBC 챔피언스에서 우즈를 제치고 정상에 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우즈를 꺾고 이룬 메이저 우승이 예고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최경주의 길을 따라 2005년부터 PGA 투어 도전에 나섰다. 퀄리파잉 스쿨(자격시험)을 3수(修) 끝에 통과해 2008년 데뷔했지만 29개 대회에서 17차례 컷을 통과하지 못하며 상금 순위 157위로, 힘들게 딴 출전 카드를 잃고 말았다.
 

서른여섯 나이에 이런 역경을 만나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국이나 일본으로 돌아올 법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독학으로 골프를 익힌 그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골프 레슨을 받았던 것이다.
 

그립부터 어드레스, 백스윙 등 골프의 ABC를 다시 배웠다. 양용은은 “골프 인생을 건 마지막 모험이라고 생각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죽을 각오로 스윙 교정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다시 퀄리파잉 스쿨에 도전해 합격했지만 출전 예정 선수들 가운데 빈자리가 나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대기자 신분이었다. 지난 1월 소니 오픈 때는 하와이까지 날아가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허탕을 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던 그에게 골프의 신은 미소를 지었다. 올해 3월 혼다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것. 그리고 5개월 만에 그와는 모든 게 달랐던 골프의 ‘슈퍼 엘리트’ 타이거 우즈를 꺾고 ‘골프 사상 최대 이변’을 엮어냈다.
 

춥고 배고프고 가족까지 힘들게 했던 늦깎이 골퍼의 길,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지금도 골프장에 서 있으면 가슴이 뿌듯해요. 제가 어린 시절 여기에 서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인들 해봤겠어요.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글·민학수(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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