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평양 거리 전체가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소학교 학생들부터 할머니까지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성과를 내지 않으면 죄송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성과는 대통령이 내시는 거지만 ….”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 방북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배우 문성근 씨. 그가 느낀 평양의 모습은 사정이 많이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문씨의 북한방문은 이번을 포함해 세 번째다. 2000년 11월 임권택 감독 등 영화인과 평양을 방문해 영화교류를 제안했고, 2003년에는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 사업을 제안했었다. 그 중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 사업은 아버지인 고 문익환 목사가 방북했을 때 이미 합의했던 내용이라서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남한에서는 올해 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토대를 갖추어 가는 중이다.
“같은 민족인데 남북이 서로 쓰는 말이 달라서는 안 되죠. 더 늦기 전에 ‘겨레말 큰사전’ 사업을 완성해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합니다.”
개성에 남북공동 문화단지 건설 제안
현재 문성근 씨는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남북영화교류추진소위원회 위원이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데 많은 고민을 한 그이기에 문화계 대표인사로 이번 방북단에서도 한몫을 했다.
그는 3일 진행된 분야별 간담회에서 개성지역을 남북한의 문화·예술·학술 분야 공동사업을 벌이는 거점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개성을 선택한 이유는 남북이 모두 편리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남과 북은 문화·예술·학술 분야 교류를 위해 서울과 평양, 금강산, 제주를 오고 갔으나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고 상시적으로 작업을 하기 어려워 한계가 있었다. 특히 금강산은 북측 인사들도 찾아가기 힘든 곳이어서 사랑방격인 ‘제3의 장소’가 절실했다.
개성 문화단지 안에는 애니메이션, 게임 공동제작실, 방송·영화의 실내외 촬영장, 학술교류나 겨레말큰사전 작업을 위한 사무실, 회의실 등이 들어간다. 문씨는 북한 측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북한은 그동안 북·미 관계개선에 집중하느라 사실 사회·문화·예술 교류에 나설 만큼 여유가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제 그 문제는 어느 정도 자리잡아가고 있고 남북 정상선언문에도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을 독립된 항으로 명시했으니 문화계의 교류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겁니다.” 또 한 가지, 우리에게 없는 영화나 필름자료가 있으면 복사해 달라고 요청도 했다.

10·4선언은 문화 교류의 탄력
이번 방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합의서를 처음 본 순간을 꼽았다.
“백화원 영빈관 오찬 모임에 가다가 상황실에서 합의서를 봤습니다. 문정인 교수께서 영어로 번역하시면서 ‘이건 역사적인 문건이야! 이런 합의를 이루어내다니…’하시며 연신 감탄하는데… 저도 정말이지 기뻤습니다.”
문씨는 평양 답례만찬에서 사회를 보기로 하고 단단히 준비해갔는데 첫날 ‘환영만찬’을 여는 북측에서 사회자를 세우지 않는 것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고 말했다. 북쪽이 의전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답례만찬 때 사회를 세우지 않는 것이 낫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데 안숙선 씨가 소리를 할 때 소개할 사람으로 잠깐 나서기로 했는데 얼떨결에 사회를 보게 됐단다.
“준비해간 대본은 아리랑 공연 같은 걸 보지 않았던 때 썼던 거라 좀 미흡하게 느껴져서 현장에서 조금 바꿨어요. 문익환 목사에 대해 어떻게 언급할까를 가장 고심했지요. 그러다 아예 마무리까지 하라고 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최종건배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거 대충했다고 나중에 야단맞는 거 아닌가(웃음).”
그는 잘 알려진 대로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다. 고 문익환 목사는 1989년 단독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하고 돌아와 옥고를 치렀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번 회담에 대한 감회가 크다.
“그 당시 아버지가 김일성 주석과 합의를 봤던 것들이 2000년 6·15선언에 많이 담겼다고 봅니다. 6·15선언이 ‘총론’이었다면 이번 10·4선언은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은 ‘각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땅 속에 계시지만 무척 기뻐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북쪽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그 들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이해하는 깊이가 생겼다고. 통일의 물꼬를 텄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통일의 큰 물결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이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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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