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식을 소재로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요리가 비빔밥이었어요. 비빔밥은 여러 재료를 비벼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역동적이고, 그래서 공연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습니다. 세계 최초로 음식, 특히 한식을 소재로 공연을 만든다는 점도 도전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비빔밥을 소재로 한 넌버벌 퍼포먼스 ‘비밥코리아’를 준비 중인 최철기(36) 감독은 자신의 대표작인 ‘난타’와 ‘점프’ ‘젠’을 뛰어넘는 색다른 공연이 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오는 10월 ‘코리아푸드페스티벌 2009’를 통해 초연될 ‘비밥코리아’는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 CJ엔터테인먼트 등 정부와 민간이 의욕적으로 기획한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그 성공을 위해 주최 측이 뽑아든 ‘비장의 카드’가 넌버벌 퍼포먼스의 1인자인 최 감독이다.
최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 콘텐츠로 자리 잡은 ‘난타’와 ‘점프’를 기획 감독하며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명성은 베이징올림픽 기념 공연 당시의 일화가 잘 말해준다. 베이징올림픽 기념 공연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공연 관계자들이 경합을 벌일 당시 중국 공연 담당자가 “‘난타’와 ‘점프’를 만든 최철기 감독을 섭외해온다면 무조건 계약하겠다”고 해 일본 공연 담당자가 그 자리에서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해서 중국에서 선보인 공연이 바로 ‘젠(Zen)’이다. 이 공연은 중국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현재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비빔밥의 특징인 ‘비빈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역동적인 소재가 필요했어요. 그중에서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것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비보이들이 떠오르더군요. ‘비보잉’과 함께 비빔밥을 만드는 과정에서 볶는 소리 등을 비트박스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전통무술인 태껸 등도 접목했습니다.”
![]()
‘난타’ ‘점프’와 차별되는 이번 ‘비밥코리아’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성이다. 비보잉, 비트박스 등 음악적 요소들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요 퍼포먼스가 될 것이라는 게 최 감독의 말이다. 특히 이번 공연엔 대형 비빔밥을 무대에서 직접 만들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음식 냄새도 공연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공연 중에 관객들에게 비빔밥을 직접 맛보게 하는 퍼포먼스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오감(五感) 중 촉각을 제외한 시청각 및 후각과 미각까지 공연에 총동원되는 셈이다.
최 감독의 욕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비빔밥이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웰빙’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한국의 수려한 자연을 표현하는 영상을 비보잉, 비트박스, 무술과 함께 역동적으로 뒤섞어 선보일 계획이다.
최 감독이 특히 이번 공연에 애착을 갖는 이유 중엔 그의 유별난 한식 사랑도 한몫했다. 외국에 머무는 기간이 많은 최 감독은 “해외에 나가서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먹지 못하면 화가 나서 일이 안 된다. 그래서 요즘엔 한식당이 없는 곳으로 출장을 떠날 땐 된장과 고추장을 싸가지고 나가 찍어먹는다”며 입맛이 그야말로 ‘골수 토종’이라고 말했다.
연극이나 공연 무대에서 성공한 배우나 감독들은 지독하게 배고픈 시절을 이겨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점프’를 준비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5년을 준비했습니다. 나중엔 돈이 떨어져서 팔 수 있는 것을 다 내다 팔고 ‘점프’의 기획서와 시나리오가 모두 들어있는 노트북 컴퓨터 한 대만 남을 정도였습니다.”
공연의 성사 여부는 투자자를 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최 감독 역시 ‘점프’의 기획안을 들고 수십 명의 투자자들을 만났다. 많은 이들이 ‘점프’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최 감독이 ‘오케이’하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점프’의 모티프에만 동의하고 많은 부분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고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또한 저 혼자만이 아니라 스태프와 배우들이 함께 고생했는데, 우리 공연이 아닌 엉뚱한 공연을 올리자고 이야기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비록 배는 고팠지만 훌륭한 공연은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배수진을 쳐야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타협을 거부하고 ‘마이 웨이’를 선택한 대가는 혹독했다. 밥값이 없어 굶는 것은 일상이고, 차비가 없어 걷는 일도 예사였다. 여배우 중 한 명은 생리대 살 돈도 없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결국 최 감독은 ‘점프’의 스태프와 배우들을 모아놓고 “이제 할 만큼 했으니 헤어지자”고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많은 후배들이 ‘공연 쪽 일을 하고 싶은데 조언을 주세요’ 하고 찾아옵니다. 그때 제가 하는 말이 ‘3년만 온갖 열정을 다 쏟아 부을 자신이 있다면 도전하라’입니다. 3년 동안 온갖 열정을 기울인다고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3년으로는 어림도 없죠. 그러나 3년간 열정을 불태웠다면, 쏟아 부은 3년의 열정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합니다. 배수진을 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노력이 빛을 발할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 ‘점프’팀이 산 증인이에요.”
최 감독은 ‘점프’를 준비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아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사흘 뒤 누가 따로 연락한 것도 아닌데 이들 모두 다시 연습실에 모였다. 이유는 단 하나, 지난 세월이 아까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력의 결과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2005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에 초청받은 ‘점프’는 1천8백여 작품 중 티켓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점프’를 보기 위해 에든버러 도시를 돌고 돌아 줄을 선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최 감독과 배우들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제 꿈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품을 만드는 겁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와 중국의 스토리, 일본의 기술력을 결합한 작품이죠. 아직까지 무대예술은 서양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동양의 신비를 무기로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고 싶습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온 최 감독이 그리는 ‘꿈의 무대’가 어떤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글·최철호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