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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인디애나 존스, 독립큐레이터 이원일 씨


아시아의 스필버그, 미술계의 인디애나 존스, 독립투사, 전사, 방랑자…. 이원일(48) 큐레이터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이 큐레이터는 지난 4년 동안 텃세 심한 해외 미술계에서 굵직굵직한 미술관 전시와 국제비엔날레를 10여 차례나 맡았다. 심포지엄과 초청 강연, 심사 등을 맡느라 무려 2백50여 회나 비행기를 탔다. ‘시차’를 무시한 그의 강행군은 결국 나폴리에서 강연 도중 피를 흘리며 응급실로 실려 가는 걸로 마무리됐다. 그 아찔한 기억을 돌이키며 이 큐레이터는 “이제 그렇게 무식하게는 안 한다”고 말했지만, 베이징에서 막 돌아와 기자를 만난 그의 일정은 여전히 살인적이었다. 




현재 그는 2009 프라하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 2010 캐나다 밴쿠버동계올림픽 기간의 조각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았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프라하비엔날레는 세계적 미술 전문지인 이탈리아의 ‘플래시 아트’가 주관하는 미술 대전이다. 그는 공동 큐레이터 중 한 명으로 한국관을 맡고 있으며, 출품작가 10명의 작품 20여 점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국 작가들을 세계 무대에 선보일 좋은 기회입니다. 한동안 세계 미술계는 아시아 미술을 주목해왔습니다. 아시아 미술 내에서도 한국미술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봐요.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은 서구의 미학체계나 학문 바깥에 존재하되 한국성과 세계성이 호환되는 작가들입니다. 거기에 유니크한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하죠. 넘버원(No.1)이 아니라 온리 원(Only 1)이 될 수 있는 작가들이 환영받을 것입니다.”

이 큐레이터는 서구의 편협하고 오만한 미학체계와 역사를 거침없이 공격해왔다. 200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의 프레젠테이션 때 “당신이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해 말하는 적법성에 대해 말해보라”는 MoMA 관장의 주문에 “당신이 먼저 미국과 유럽이 일방적으로 써온 역사, 즉 미술사에 대한 정당성을 1분 동안 얘기한다면, 나도 아시아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쏘아붙여 그들을 굴복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어찌 보면 공격적으로 비칠 수 있음에도, 자신이 ‘먹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껏 세계 미술계는 서구의 패권주의적인 미술사 기술(記述) 때문에 모순과 불균형이 팽배했죠. 저는 아시아의 큐레이터로서 서구의 편견을 깨뜨리며, 동서의 융합과 미술사의 복원을 이야기합니다. 전 그들의 경험 바깥에서 온 변종 생명체와 같은 존재인 거죠. 왜 흥미롭지 않겠습니까?”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그의 큐레이터관(觀)과 삶의 태도를 아우르는 건 ‘어항 밖 이론’이다. 물고기는 어항을 떠나면 죽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그는 물고기는 어항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고기가 어항 밖으로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죽는다고? 천만에. 물고기는 어항 밖 세상을 보기 시작할 것이고, 나아가 어항 밖 세상에서 살기 위한 호흡법을 깨우칠 것입니다.”

그는 한국미술의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 혹은 아시아라는 어항에서 벗어나야, 바깥에서 볼 수 있어야 우리의 실체가 더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위대한 한국인이 될 게 아니라 위대한 개인이 되는 게 먼저다. 백남준은 ‘한국의 아티스트’가 아니라 ‘위대한 아티스트’가 먼저였다”는 논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허브’니 ‘아시아 하이웨이’니 하는 공허한 수사학 대신에 우리나라의 태생적 한계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모두가 동의할 만한 수사학을 만들어내자고 역설한다. 그래야만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5년 전에는 그 또한 ‘어항 속 물고기’였다. 성곡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학예부장으로 일하던 그는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게 고문처럼 느껴져서’다. 마침 그때 제4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다. 그는 무작정 떠났고, 독립큐레이터로 첫발을 뗐다.

그러자 희한하게도 일이 몰려왔다. 2004년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미디어전, 2005년 중국 상하이 젠다이현대미술관 개관전, 2006년 상하이비엔날레, 그리고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인 독일 ZKM미술관의 ‘Thermocline of Art-아시아 현대미술전’의 공동 큐레이팅. 이곳에서 그는 멘터가 된 페터 바이블 관장을 만났다. 2008 세비야비엔날레 때는 전 세계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원일은 큐레이터계의 스필버그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던 바이블 관장은 이 큐레이터의 정신적 스승이자 아버지다.

현재 이 큐레이터는 스위스 BSI은행 문화재단의 상임 큐레이터로도 일하고 있다. 월 2천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원하는 대로 전시를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꿈의 직장’이다. 월급의 대부분을 전시 기획과 항공료에 쏟아붓고 있는 그는 “아시아적 비전을 장착한 채 날아다니는 전투기처럼 살아가겠다”고 했다. 바람이 있다면, 더 많은 후배들이 양성돼 ‘아름다운 편대 비행’이 가능했으면 하는 것이라고.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데, 그의 가슴에 달린 배지가 눈길을 끌었다. 독일어로 ‘미술관은 일요일에 쉬지 않는다’고 씌어 있었다. 그 배지는 ‘이원일다움’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글·정지연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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