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980년대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계를 풍미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를 빼고는 김연아를 말하기 힘들다. 2006년 오서 코치를 만나기 이전의 김연아가 ‘교과서 점프’를 무기로 삼는 ‘테크니션’이었다면, 오서 코치를 만난 후 김연아는 ‘예술연기의 달인’으로 새로 태어났다. 주니어 시절 출전한 국내 대회에서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던 김연아는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기로 여자 싱글 선수 중 유일하게 8점대 연기 점수를 받았다.
오서 코치 자신도 김연아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선수 시절 초반에는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라 불릴 정도로 점프 기술이 유명했지만, 후반에는 예술연기로 더 이름을 떨쳤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일본)의 라이벌 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도 오서 코치. 그는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와 우승을 다퉜는데, 남자 싱글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김연아는 오서 코치에 대해 “아사다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내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덕분에 나는 마음 편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다”면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연아의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은 늘 유쾌하다. 그의 ‘해피 바이러스’는 김연아에게 금방 전달됐다. 윌슨을 만나기 전 김연아는 ‘인터뷰하기 어려운 스타’ 가운데 한 명이었다. 대답은 거의 단답형이었고 카메라 앞에서도 잘 웃지 않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들은 윌슨 코치에게 “김연아를 ‘행복한 스케이터’로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윌슨 코치는 영화관, 공연장을 김연아와 함께 누비며 감춰져 있던 김연아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안무가로서 윌슨은 천재적이다. 주니어 시절 김연아를 가르친 신혜숙 코치는 그의 안무에 대해 “윌슨 코치의 안무는 허를 찌른다. 전혀 맞지 않을 것 같던 선율과 안무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고 평했다. 특히 이번 시즌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는 안무가 압권이라는 평.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가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을 두고 피겨 전문가들은 “잘 짜인 안무와 이를 탁월하게 해석한 김연아의 시너지 효과”라고 입을 모은다.
김연아가 무대에 서는 시간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프로그램을 합쳐 7분이 채 안 된다. 그는 이 시간 동안 의상, 안무, 연기 등 모든 것이 어우러진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 이를 돕는 것이 피겨음악 편곡 전문가와 의상 전문가다. 야심 차게 올 시즌을 준비하던 김연아는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 두 곡을 배경음악으로 고른 뒤 윌슨에게 소개받은 캐나다 디자이너와 서울의 윤관의상실에 각각 의상을 의뢰했다. 탁월한 그의 선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극찬을 불렀다. 지난해 10월 김연아가 미국에서 열린 ‘스케이트 아메리카’에 출연했을 때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김연아의 의상은 우아하고 훌륭하고 화려했다. 단연 최고의, 진짜 드레스였다”고 칭찬했다.

김연아가 <죽음의 무도>를 연기하는 시간은 고작 2분 40초 안팎이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원곡은 7분가량의 긴 곡. 김연아의 연기와 함께 끊기는 느낌도 없이 음악이 끝나는데 나머지 4분 20초는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의 선수들은 원곡을 부분부분 발췌, 편집해 경기에 사용한다. 피겨 음악에는 뮤지컬처럼 기승전결이 있고, 물 흐르듯 흘러가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안무가는 편곡 전문가에게 곡 편집을 의뢰한다. 미셸 콴은 30여 명의 편곡가와 작업했고, 아사다 마오의 코치 타티아나 타라소바는 20여 명의 편곡가를 고용했다. 김연아는 올 시즌 윌슨이 소개한 새 편곡가에게 의뢰해 빼어난 연기를 음악으로 뒷받침했다.

김연아 뒤에는 그림자처럼 그의 어머니 박미희 씨가 함께한다. 그저 스케이팅을 좋아하는 팬에 지나지 않던 박 씨는 김연아를 키워내면서 피겨 전문가가 다 됐다. 스케이트 부츠가 맞지 않아 고생할 때는 직접 날을 뜯어 조이고, 부츠를 분해해 조립하면서 부츠에 통달했다. 박 씨는 “연습 링크에서 선수들의 모습만 봐도 오늘 누가 우승할지 감이 온다”고 말할 정도로 베테랑이 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코치보다 낫다”고들 한다. 김연아가 지금까지 훌륭한 코치들을 만나 좋은 환경에서 스케이트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힘이 크다. 똑 부러진 성격으로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코치와 세세한 점을 조율하기 때문에 잡음이 덜 생기는 편이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는 2007년 5월 김연아와 손을 잡은 뒤 그림자처럼 함께하며 각종 민원을 해결한다. 오랜만에 나타난 ‘대형 스타’에게 끊임없이 몰려드는 미디어를 정리하는 일도, 선수의 주 수입원인 CF와 후원 계약을 관리하는 일도 IB스포츠의 일이다. 박 씨는 “IB스포츠가 일을 덜어줘 연아와 나는 스케이트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글·온누리 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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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