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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임희춘,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수상




 

‘어이구야~’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1970~80년대 안방극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코미디언 임희춘(본명 임진상·77) 씨가 지난 11월 국립극장 무대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11월 22일 열린 제1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다.

대중문화예술상은 대중예술인들의 위상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처음 마련한 상이다. 임 씨는 이날 배우 신구, 성우 고은정 씨와 함께 최고의 영예인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정부에서 코미디언에게 이런 귀중한 상을 줘도 되느냐”며 너스레를 떨던 그였지만 감격을 가누지 못하고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시 감정을 추스르던 그는 두 눈에 눈물이 괸 채 “코미디언이 마이크를 잡고 울면 안 될 것 같다. 제 유행어라도 한마디 들려드리겠다”며 왕년의 유행어 ‘어이구야~’를 외친 뒤 관중의 환호 속에서 무대를 내려갔다. 이날 객석에서 휠체어를 탄 채 지켜보던 코미디언 구봉서 씨가 그의 수상을 유난히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임 씨의 말처럼 ‘정부가 코미디언에게 훈장을 주는 시대’가 됐다. 코미디언 임희춘의 이번 수상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시상식 후 열흘이 지난 12월 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임 씨에게 “당시의 눈물이 화제가 됐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코미디언은 우스운 사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사람들이 코미디를 한다고 하면 일단 우습게 본다”며 “직업상 웃겼을 뿐인데 어딜 가든 코미디언이라는 이유로 조금씩 깔보는 시선이 느껴졌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1952년 극단 ‘동협’으로 데뷔해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극장> <명랑극장> 등 1970~80년대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주름잡던 대표 코미디언이었다. 연극배우로 시작한 그였기에 코미디언에 대한 멸시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고 한다.

“당시 연극인들은 코미디언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었어요. 농담이나 하는 천박한 직업으로 여겼던 거지. 연극 한다고만 해도 ‘딴따라패’, ‘굿패’라며 깎아내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6·25전쟁 때 피난을 가다 부모님을 잃고 혼자 서울로 돌아온 그는 구두닦이, 냉차장수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다 배우 모집 공고를 보고는 무조건 찾아갔다. 첫 공연을 하던 날, 긴장한 그는 그만 엔지(NG)를 내고 말았다.

“내 차례인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급기야 등 떠밀려서 무대로 나왔는데 멀대 같은 놈이 다리는 휘청거리고, 표정은 기묘하고, 대사도 버벅대니 이건 코미디가 따로 없는 거지. 덕분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고, 비극은 희극으로 변하고 말았지요.”
 

당대 최고 스타였던 김희갑 씨가 당시 연극을 보러 왔다가 그런 임 씨를 보고는 ‘저놈 한번 키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김희갑 씨와 구봉서 씨를 차례로 만나며 코미디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코미디언으로 전업한 뒤엔 고향 어른들도 ‘창피하다’며 ‘보지 말자’고 했다고 한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임 씨를 비롯해 서영춘, 이기동, 배삼룡 등 이른바 ‘바보 연기의 일인자’들이 출연정지를 당해 졸지에 백수로 지내던 때도 있었다.

마치 자서전을 쓰듯 찬찬히 과거를 회상하던 그는 이내 특유의 익살맞은 표정으로 ‘어이구야~’를 연발했다. 그는 “무대에서 항상 ‘졸병’, ‘하인’ 역할만 했지만 양반을 향해 재치 있게 뱉어낸 이 한마디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다시 시상식 때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되짚었다. “코미디언에게 훈장을 줬다는 건 코미디언을 대중문화예술인으로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더구나 내가 처음 포문을 연 셈이라 더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임 씨는 15년 전 3층짜리 자택의 1층을 사무실로 개조해 ‘노인복지후원회’를 열었다. 은퇴 후 자신을 위해 웃어주던 세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이 일에 뛰어들었다.

매년 전국의 복지회관을 찾아다니며 ‘전국 웃음경연대회’를 열어 까마득한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선다. 가수 현미·태진아, 탤런트 전원주를 비롯해 방일수 등 동료 코미디언과 그 부인들의 모임인 ‘코주부’도 그가 앞장서 주도했다. 대중예술인의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코미디언은 고된 직업입니다. 가수는 한 곡만 히트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지만 코미디언은 매주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잖아요. 행사를 나가도 꼬박 두 세 시간은 진행하고, 중간 중간 웃겨야 하고, 쉴 수도 없고, 제일 불쌍하죠. 가족들도 힘들긴 마찬가지고요.”

임 씨는 후배 코미디언들을 위한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는 “코미디 전용극장 같은 게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며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은 대중문화예술인들에게 웬만해선 문을 열지 않는다. 특히 코미디언들이 설 무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훈장도 받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성과도 있었다. 지난 9월 사단법인 코미디협회가 정부로부터 정식 법인설립 허가를 받은 것. 그동안 변변한 협회조차 갖지 못했던 코미디언들은 이번 일로 대중예술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보다 건강이죠. 건강하기 위해서는 웃음이 필요합니다. 이게 제가 평생 살면서 코미디언들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는 이유랍니다.”
 

글과 사진·공감코리아(korea.k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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