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배웠죠?”
“선사시대요!”
“그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뭘까요?”
좀 전의 그 씩씩한 목소리들은 다 ‘오데로’ 갔나? 책장과 노트 뒤적이는 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경기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의 한 건물 2층에 자리한 ‘푸른빛 평생학교.’ 오후 7시를 넘긴 시간. 불을 환히 밝힌 채 국사 수업이 한창이다. 교육생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국사 수업을 하는 이현호(45) 씨는 지난 시간 배운 것들을 되짚고 다음 단원으로 넘어갔다.
퇴근 시각인 오후 6시 무렵 근무처인 경기도청 홍보기획관실에서 만난 그는 분명 공무원(행정주사)이었다. 하지만 걸어서 10분 거리인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수업에 참석한 교육생은 2명. 경인방송 자막을 보고 신청해 올해 10월 1일부터 수업을 받기 시작한 권옥식(56), 유진선(57) 씨다. 그들은 필기를 하면서 선생님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한 시간 내내 선생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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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씨는 “선생님이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설명해줘 국사 공부가 어렵지 않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그동안 아이들 뒷바라지로 공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꼭 대학에 진학해 선생님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간절함이 묻어나는 말들을 편안하지만 당찬 모습으로 쏟아냈다.
진심은 통한다고 한다. 이 씨의 헌신적인 마음이 짧은 시간이지만 교육생들에게 전해지면서 그들은 지식뿐 아니라 나눔의 의미까지도 체득한 듯했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그가 5년째 야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푸른빛 평생학교(교장 이휘수)는 1986년 청소년 전문 야학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야학에서 공부할 청소년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지면서 12년 전부터는 주부 전문 야학으로 바뀌었다.
야학 운영비는 매년 수원시에서 지원하는 문해교육자금 9백만원이 전부다. 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글반 등 문자해독 교육을 실시하는 복지관이나 야학 등 평생교육시설에 지급되는 지원금인데 이마저 지원 항목이 정해져 나오다 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 씨는 “지난해 겨울에는 난방비가 없어 두 달가량 야학 문을 닫기도 했다”면서 이번 겨울에도 난방비 등이 걱정된다며 얼굴빛이 잠시 흐려지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이 씨는 하루도 수업에 빠진 적이 없다. 휴가철에도 그렇고 연말이면 한 번쯤은 모임이 겹쳐 건너뛸 법도 하지만 야학 수업은 그에게 그 어느 것에도 양보할 수 없는 시간이다.
“대학생은 물론 뜻있는 많은 분들이 봉사활동으로 생각하고 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가기도 한다”고 말하는 그는 가르치는 일은 사명감이 없으면 힘들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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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2녀 중 차남인 이 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집안이 넉넉지 않아 일하면서 공부해야 했다. 학원을 다니면서도 근로장학생은 늘 그의 차지였다. 그럼에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법관이 되고 싶었고, 공부를 하면서 한때 교사를 꿈꿨으나 여의치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야학에서 그 꿈을 어느 정도는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저처럼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 배움의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는 그는 자신이 가르친 교육생 중 수원시내 고교에 입학한 청소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그런 교육생들이 고맙다고 찾아올 때면 가슴이 뿌듯하다”면서도 겸연쩍어했다.
선행은 본업에 충실할 때 더욱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씨는 공무원으로서 업무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2009년 경기도 공무원 제안에서 노력상을 수상했고, 전 직원 ‘현답활동’에서도 장려상을 받았다, 현답활동이란 현장에 답(現答)이 있으니 현장을 답사(現踏)해 현명한 답(賢答)을 얻으라는 의미다. 또 같은 해 말 실시된 범도민 폐휴대전화기 모으기 실적에서는 4위, 경기도 바로 알기 시험에서는 3위의 성적을 기록하는 등 업무와 관련된 많은 활동에서도 전력을 다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 또 그해 12월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반바지 등을 경매에 부쳐 많은 모금을 했던 ‘경기도 홍보대사와 함께하는 무한돌봄 자선경매’ 행사 아이디어도 그에게서 나왔다.
이 씨는 업무뿐 아니라 야학, 그리고 소년소녀가장 등 힘든 이웃을 돕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며 수원시 소재 연무초등학교에 급식비로 매월 1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시설 봉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매월 청소, 목욕 봉사도 하고 후원회비도 낸다. 이 밖에 크고 작은 후원비를 합치면 매월 기부금만도 그의 월급의 10퍼센트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모범공무원상을 받아 상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부인의 성화도 만만치 않을 성싶은데 그는 부인한테 늘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야학교사며 후원금을 내는 것도 집사람의 동의가 없다면 힘든 일인데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이 씨는 가장으로서 고등학생, 중학생인 두 아이들에게는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좋지만 늘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한다”며 가족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야학교사 활동 외에도 불우이웃, 사회복지시설 등을 찾아 지난 한 해 3백 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하는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해왔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눔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눔 활동에 동참하는 데 제가 쓸모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늘 그렇듯 나눔은 물질이나 시간을 뛰어넘은 넉넉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글·강선임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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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