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경기 김포시에 자리한 작업실 겸 자택에서 만난 서예화가 한한국(43) 씨는 대작 한 점을 펼쳐보였다. 가로 세로 1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글자들로 완성한 작품의 이름은 ‘희망 대한민국’. 가로 4.5미터, 세로 6.5미터의 특수 종이 위에 약 6만 개의 글자로 한반도 지도를 그려냈다.
글자로 그림을, 그것도 정교한 지도를 그린다고 하면 머릿속에 작품의 형상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작품을 그리고 칠하는 대신 글씨를 쓰는 서예 작업만으로 지도의 형체를 잡고 채색한 듯 공간을 메워 완성한 것이다. 마치 찍어낸 듯한 글자 하나하나를 보면 ‘글씨를 썼다’, ‘지도를 그렸다’는 표현보다는 ‘기운을 새겼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싶다.
구상에만 2년, 완성하는 데 5년이나 걸렸다.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남북한의 강원도는 태극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채색했는데 이 작업 역시 붓이 아닌 손가락에 색을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수인(手印)’으로 완성했다. 그가 이 작품을 꺼내 보여준 이유는 지금까지 16년 동안 모든 작품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가 그 작품 하나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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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한글을 재료로 선택한 것은 한글이 가장 한국적인 정신을 담은 글자라고 생각해서다. 초성, 중성, 종성의 조화는 화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기에도 제격이다.
‘희망 대한민국’이라는 작품 안에 든 3만 글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제헌헌법,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시로 이뤄져 있다. 게다가 독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글씨로 완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을 알리고, 분단국가의 평화통일을 기원하고,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것. 이 세 가지가 작업을 하는 이유예요. 작품 한 점은 그냥 작품일지 몰라도 그 작업을 하면서 새긴 희망의 기운은 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의 작품은 한 번만 보면 작업시간이 오래 걸리리라는 걸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점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6개월 이상이다. 그런 그가 G20 국가의 지도를 모두 그려 특별전까지 열게 됐다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사실 그가 처음 각국의 지도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외국인들도 많은데 한반도 지도를 보여주는 것보다 그들의 나라를 한글로 그려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을 감상하면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자연스럽게 ‘한국이 어떤 나라인데 그 나라 말로 이렇게 우리나라의 지도를 그렸을까’ 하는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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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국가를 하나씩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한 국가가 완성되면 다음에는 문득 떠오르는, 때로는 꿈에 나온 나라들을 그렸다. 평생 그려 세계지도를 완성한다는 게 목표였다. 그러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우리나라가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까지 그린 나라는 총 26개국. 퍼즐 맞추듯 G20 참가국들을 완성된 작품과 하나하나 맞춰보니 19개가 맞아떨어졌다.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행사인 만큼 지금까지의 작품을 통해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희망하는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 남은 하나는 바로 유럽연합. 지난해 11월 다시 붓을 잡아 부지런히 유럽연합 지도를 그렸고, 드디어 올해 5월 모든 G20 정상회의 참가국의 지도를 완성했다. 각 나라 지도에 쓰인 내용은 대부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이거나 평화를 기원하는 글들이다.
16년간의 작업은 육체적으로 고됐다. 무릎을 꿇고 앉아 글씨를 쓰다 보면 무릎에서 피가 나는 일은 다반사였다. 엎드려서 작업을 하다 보니 피가 머리로 쏠려 20~30분 만에 손이 떨려 붓을 잡기도 힘들었다. 허리를 펴고 다시 붓을 잡기를 반복하며 하루에 12~16시간씩 작업에 몰두했다.
몸도 몸이지만 경제적으로 힘이 부치던 시절도 있었다. 일반 한지가 아닌 커다란 특수 종이를 쓰다 보니 종이 한 장 값만도 1천만원. 그러던 중 5년 전 일본의 한 고위관계자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 작업실, 심지어 작품을 걸 전시관까지 제공할 테니 일본에서 작업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 한글로 계속 작업해도 좋다고 했다. 단, 일본인으로 귀화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울 때라 마음이 끌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한글로 한반도 지도를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한들 그곳에서는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길지 모르잖습니까.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그것만은 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지요.”
전 세계에 한글을 알리고 화합의 메시지를 새기겠다는 그의 작업은 계속된다. 2012년 핵 확산 방지 50개국 정상회의를 맞아 초대형 지도 작품을 계획 중이다. 내년에는 지금까지 그린 각국 지도를 한복에 새겨 각국 대사들을 초청해 패션쇼를 열려고 한다.
이런 그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형 작품들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완성한 지 10년 넘은 작품들은 매번 작품을 접었다 폈다 하며 훼손되기도 하지요. 이런 작품들을 반듯하게 전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힘이 날 것 같습니다.”
글·정고은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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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