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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설명이 필요 없는 언어 세계인이 즐기는 예술로”

2025년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 2대 보유자가 된 최성우 한국궁중꽃박물관장. 어머니 황수로 박사에 이어 왕실 연회와 의례에서 사용된 궁중채화의 명맥을 잇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장(宮中綵花匠) 최성우 관장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서화 ‘정해년의 궁중잔치’는 1887년 1월 고종이 신정왕후 조대비의 팔순을 기념해 경복궁 만경전 등에서 베푼 궁중연회의 모습을 열 폭 병풍에 담은 작품이다. 왕실 행사답게 음식상과 연회장 곳곳에 놓인 꽃장식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면 무희와 궁인은 물론 참석자들의 머리 위에도 꽃이 장식돼 있다. 조선시대 궁중연회에서 꽃은 빠질 수 없는 장식이었다. 음식상을 꾸민 상화(床花), 연회 공간에 놓인 준화(樽花), 머리에 꽂는 잠화(簪花)까지 연회장은 온통 꽃으로 채워졌다.
한겨울에도 이 같은 꽃잔치를 벌일 수 있었던 건 생화(生花)가 아니라 가화(假花)였기 때문이다. 조선 왕실은 봄과 가을처럼 꽃이 풍성한 계절에도 생화를 꺾어 실내를 장식하는 일을 삼갔다. 풀 한 포기조차 귀하게 여긴 조상들의 생명 존중 마음 때문이다. 대신 비단과 종이로 꽃을 만들어 썼다. 이처럼 왕실의 연희와 의례에 쓰인 가화를 ‘궁중채화(宮中綵花)’라고 한다.
궁중에서는 채화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화장(花匠)이란 직책을 둘 정도로 그 위상이 각별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작 기술이 끊기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이 전통을 복원해낸 인물이 황수로 박사다. 그는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을 토대로 채화의 재료와 기법, 형식을 하나하나 되살려냈다. 황 박사는 2013년 1월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 보유자로 지정됐다.
황 박사가 살려낸 궁중채화의 명맥은 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2025년 12월 22일 황 박사의 아들인 최성우 한국궁중꽃박물관장에게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 2대 보유자 증서를 수여했다. 최 관장은 어머니의 작업을 도우며 궁중채화 기능을 익혔고 2016년 국가무형유산 이수자로, 지난해 6월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2020년부터는 어머니가 설립한 한국궁중꽃박물관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최 관장은 2025년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념 공연 ‘연경당 진작례’ 궁중 상화 전시를 비롯해 2024년 프랑스 파리올림픽 코리아하우스 ‘시간의 형태’ 특별전시, 같은 해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 방한 기념 창덕궁 영화당 특별전시 등을 통해 궁중채화의 아름다움을 알려왔다.
미술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문화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문화 프로젝트를 꾸준히 선보여 왔다. 서울 통의동의 80년 된 보안여관을 복합문화공간 ‘보안1942’로, 부산 초량동의 100년 된 목조가옥을 ‘오초량’으로 재탄생시키는 등 공간과 예술을 결합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이와 함께 궁중채화를 교육하고 확장하기 위한 연구 공간인 ‘궁중채화서울랩’을 운영하며 현대미술가·식물학자·공예가·문화기획자 등과 함께 궁중채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1월 13일 찾은 최 관장의 작업실에는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모란과 연꽃, 복사꽃이 가득했다. 화병에 꽂힌 꽃들은 실제 꽃을 옮겨놓은 듯 생생했지만 단순한 재현에 머물지 않았다. 꽃의 높낮이와 방향, 간격까지 계산된 배치와 화려한 색감, 여기에 꽃을 향해 날아든 벌과 나비까지 더해져 입체적인 조형미를 드러냈다. 최 관장은 “궁중채화는 생화를 흉내 내는 장식이 아니라 자연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조형물”이라고 말했다.

최성우 한국궁중꽃박물관장이 궁중채화를 만드는 모습. 천연염색한 비단을 꽃 모양으로 자르고 달군 인두에 밀랍을 묻혀 모양을 잡아가며 꽃 한 송이를 피워낸다. 사진 C영상미디어

궁중채화는 단순한 꽃장식과는 다른 예술로 느껴진다.
궁중채화는 조선왕조의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미감과 기품을 담아낸 궁중 문화이자 공예 예술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진찬(進饌)과 진연(進宴) 등 왕이나 왕실 어른의 생일, 세자의 탄생과 책봉, 혼례 같은 궁중 잔치에 사용됐다. 대규모 연회가 열리면 왕과 왕비는 물론 문무백관과 종친, 악사, 무희에 이르기까지 연회 공간과 인물들의 머리 위를 장식하며 궁중의 권위와 위계, 품위를 드러냈고 평화·장수·건강 같은 상징적 의미도 담았다. 단순히 생화를 흉내 낸 장식이 아니라 궁중의례와 상징체계 속에서 탄생한 조형물이다.

생화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궁중에서 생화 대신 채화를 사용한 데에는 기능적·사상적 이유가 함께 작용했다. 우선 계절의 한계다. 궁중 잔치는 꽃이 피지 않는 1~2월에도 열렸기 때문에 생화를 조달하기 힘들었다. 한 차례 연회에 참석하는 인원이 2000명 정도였는데 이때 필요한 꽃은 많게는 2만 송이에 달했다. 수급뿐만 아니라 자연을 해치는 일이기도 했다. 의궤에 ‘자연의 꽃을 꺾지 말고 만들어 쓰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잔치가 열흘에서 길게는 열이틀까지 이어진 점 역시 생화 사용을 어렵게 한 요인이다. 시들지 않는 꽃을 통해 왕조의 영원성과 번영을 상징하려는 의미도 담겼다.

궁중채화는 어떻게 제작하나?
비단이나 모시 같은 천연섬유에 천연염료로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생화에서 염료를 뽑아내는 과정 자체가 2~3개월 정도 걸린다. 이 염료로 염색한 천은 가위질에도 올이 풀리지 않도록 다듬이로 두드려 조직을 단단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윤기까지 더한다. 이렇게 준비한 천을 여러 겹 겹쳐 꽃잎 모양으로 오린 뒤 밀랍을 발라 인두로 지지며 실제 꽃잎에 가까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꽃잎을 여러 장 겹친 뒤에 꽃술을 연결하면 꽃 한 송이가 완성된다. 꽃술은 과거에는 노루 꼬리털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모시나 삼베를 꼬아 가느다란 꽃술을 만든 뒤 꿀과 아교를 발라서 송홧가루로 색을 입힌다. 완성된 꽃은 여러 송이를 한 가지에 달아 구성한다. 꽃을 매다는 가지는 인공재료가 아닌 말린 매화 가지 등 자연 가지를 사용한다.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꽃 종류도 다양할 것 같다.
채화로 만든 꽃에는 과꽃, 연꽃, 모란, 국화, 감꽃, 월계화, 오얏(자두)꽃, 복사꽃, 도라지꽃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오얏꽃(李花)은 궁중의례에서 어좌 좌우를 꾸미는 데 쓰인 대표적인 꽃이다. 오얏꽃은 이씨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꽃으로 궁중에서 중요한 의례가 열릴 때 왕의 자리 양옆에 홍벽도화준(紅碧桃花樽) 한 쌍으로 놓여 의례의 위엄을 더했다. 대형 백자 항아리에 꽃을 장식한 화준은 보통 높이가 3m에 이른다. 복사꽃 역시 임금이 주관하는 잔치에 주로 사용됐다. 복사꽃은 천상계의 꽃으로 여겼는데 왕을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로 인식한 사상과 맞닿아 있다. 모란은 부귀와 다산을 상징해 중전이 주관하는 내진연에서 주로 활용됐다.

꽃뿐 아니라 벌, 나비, 새도 만든다.
꽃 주변에 날아든 벌, 나비, 새들은 왕을 따르는 신하와 백성을 상징한다. 왕과, 신하, 백성이 하나가 되어 태평성대를 이루는 모습을 표현한다. 왕을 위한 꽃에는 봉황을 장식하기도 한다. 꽃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에도 각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전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왕조의 문화를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그 과정에서 궁중의례를 담당하던 수많은 화장(花匠)이 강제로 끌려갔고 남아 있던 꽃 장식 역시 상당수 불에 타 사라졌다. 어머니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궁중채화를 연구·복원하는 데 일생을 바치셨다. 어머니의 외조부는 고종 때 비서실 직원 격인 궁내부 주사를 지내셨다. 때때로 고종 황제가 하사한 비단 꽃 잠화를 집으로 가져왔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어릴 때 접했던 궁중채화를 복원하기로 한 건 60년 전 일본 유학 시절이었다. 한 일본인이 꽃장식 문화는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만 있다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아 우리나라의 전통 꽃장식 문화를 반드시 복원하겠다고 결심하셨다.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 등의 기록을 연구하여 궁중채화의 기법을 복원해냈고 2013년 1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로 지정됐다.

어머니의 뒤를 잇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일을 할 마음이 없었다. 남자가 꽃을 만든다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이미 문화기획자로서 맡고 있던 일도 많았다. 2007년 1월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 취임을 기념해 미국 뉴욕 유엔본부 로비에서 한국 전통공예품 전시회가 열렸다. 어머니가 만든 궁중채화 작품도 놓였는데 이곳에 갔다가 마음이 바뀌었다. 전시에는 ‘직지심체요절’ 영인본과 달항아리 등 15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유독 어머니 작품 앞에서 관람객의 발길이 멈췄다. 전통공예는 문화적 배경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꽃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문화기획자의 시선으로 보니 궁중채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나의 조형물이자 문화를 전달하는 미디어처럼 느껴졌다. 그 경험을 계기로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궁중채화를 직접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를 알리는 매개체가 될 수 있겠다.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와 2024년 프랑스 파리올림픽 때 열린 코리아하우스 전시에서도 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오히려 외국인 관람객들이 궁중채화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며 감탄했다. 세계적으로도 궁중연회를 위해 수천, 수만 송이의 비단 꽃을 체계적으로 제작해 사용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지난해 중국 실크박물관 관장이 방한했을 때 궁중채화를 보고 크게 놀랐다. 실크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인데도 중국에서는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궁중채화의 가치가 더욱 분명해졌다. 전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국만이 지닌 독보적 자산이라는 점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궁중채화는 단순히 보전해야 할 유산을 넘어 한국 문화를 세계에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겠다.
아직 복원되지 않은 기록들을 더 연구해 궁중채화의 빈 부분을 완성해 나가고 싶다. 동시에 궁중채화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궁중에서 쓰던 꽃이니 경복궁이나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조선 5대 궁궐에 궁중채화를 장식해두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궁중채화를 배울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경남 양산에 있는 한국궁중꽃박물관은 접근성 문제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서울 통의동 보안1942 건물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수자 중심의 전문 교육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최근에는 전통기법을 오히려 새롭고 ‘힙’하게 받아들이는 흐름이 있다. 전통이라는 틀에 가두기보다 궁중채화가 지닌 조형미와 상징성, 그리고 오늘날에도 유효한 미적 가치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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