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삼겹살·국밥에 위스키는 안 되나요?” 한국의 맛 입힌 K-위스키의 도전

도정한 기원위스키 대표 &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
위스키는 ‘일상의 술’이라기보다는 ‘격식의 술’에 가깝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위스키 소비국이었지 생산국은 아니었다. 그 공식을 바꾸겠다고 나선 이들이 있다. ‘K-위스키’를 내걸고 우리 땅에서 증류하고 숙성한 술로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낸 이들이다. 그리고 도전은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졌다.
2025년 11월 11일 ‘2025 샌프란시스코 세계주류경연대회(SFWSC)’에서 최고상인 ‘베스트 오브 클래스(Best of class)’ 수상자 명단에 국산 브랜드가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싱글몰트 부문과 블렌디드 부문에서 각각 최고상을 차지한 도정한 기원위스키 대표와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였다.
“소주와 맥주처럼 위스키도 국민의 식탁과 늘 함께하는 술로 만들고 싶어요.”
수상의 여운을 안고 만난 두 사람은 ‘K-위스키’의 지향점을 소주와 맥주에 빗대 설명했다.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고급 주류가 아니라 삼겹살과 국밥 같은 한식과도 부담 없이 어울리는 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곁들일 수 있는 술이 되길 바란다는 뜻이다.
위스키는 곡물을 발효·증류해 만드는 술이라는 점에서 소주·맥주와도 닮아 있다. 일반적으로 위스키는 발효와 증류를 거친 뒤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 색과 향, 깊은 풍미를 완성한다. 재료와 제조방식에 따라 싱글몰트, 블렌디드, 그레인으로 나뉜다.
보리 맥아 100%로 한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싱글몰트’, 몰트와 그레인을 혼합한 ‘블렌디드’, 옥수수·밀 등 다양한 곡물을 사용하는 ‘그레인’이 있다. 싱글몰트는 한 증류소에서 보리 맥아 100%로 만든 위스키다. 증류소의 개성이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 블렌디드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혼합해 균형을 맞춘다. 그레인은 옥수수나 밀 등 다양한 곡물을 사용해 비교적 가볍고 깔끔한 맛을 낸다.
도 대표와 강 대표의 회사는 각각 2020년, 2023년부터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 신생 브랜드다.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적 해석을 더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는 두 대표를 1월 중순 한자리에서 만났다.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기원위스키 증류소에는 짙은 발효 향과 함께 K-위스키를 향한 포부가 배어 있었다.

위스키 사업에 뛰어든 계기부터 수상까지의 여정이 궁금하다.
도정한: 맥주공장을 경영해 본 경험이 있고 주류회사에서 근무한 이력도 있다. 언젠가는 직접 술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만한 한국 위스키가 아직 많지 않다는 판단이 계기가 됐다. 주조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 다양한 주류 전문가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품질만큼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다. SFWSC 수상은 국산 위스키의 가능성을 확인한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서민적인 술이 되기 위한 여정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강기문: 2019년부터 맥주공장을 운영했다. 발효 공정의 공통점 덕분에 위스키로 확장하는 데 자신감이 있었다. 이번 수상은 의미 있는 성과지만 아직 만족할 단계는 아니다. 첫 단추를 끼운 것에 불과하다. 일회성 성과가 아니라 국민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드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서민적인 위스키’라는 표현이 ‘고급 주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시도로 느껴진다.
강기문: 위스키는 여전히 ‘특별한 날에 마시는 비싼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브랜드의 가치는 상패가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식탁과 삶 속에 오래 머무는 술이 되고 싶다. 특별한 날뿐 아니라 평범한 저녁에도 부담 없이 곁들일 수 있는 술, 문턱은 낮추되 품질은 지키는 것이 방향이다.
소주, 맥주와 비교했을 때 소비자는 여전히 비싸다고 느끼지 않을까.
도정한: 위스키는 천천히 음미하는 술이다. 병당 가격뿐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지도 봐야 한다. 소주와 맥주는 개봉 후 빨리 마셔야 제맛을 유지할 수 있고 와인이나 샴페인 역시 한번 따면 보관이 쉽지 않다. 반면 위스키는 개봉 후에도 비교적 풍미가 오래 유지되고 상온 보관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최근 음주 문화가 회식과 과음에서 벗어나 가까운 사람들과 분위기를 즐기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도 위스키와 잘 맞는다.
브랜드 역사가 깊어야 위스키가 맛있다는 시각도 있다.
도정한: 전통이 주는 상징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맛을 결정하는 것은 원액의 완성도와 블렌딩, 숙성 과정에서 얼마나 엄격한 기준을 지켰는지에 달려 있다. 브랜드 역사만으로 따진다면 국제무대에서의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입 위스키와 비교했을 때 K-위스키의 강점은.
강기문: 합리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소비자가 새로운 감각과 다양한 시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생산자와 시장의 거리가 가까워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과감한 실험을 통해 차별화된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다. 깊은 역사 대신 민첩성과 실험정신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우리나라 전통 술은 지역별 색채가 뚜렷하다. K-위스키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강기문: 아직은 색을 단정하기보다 시간을 쌓아가는 단계라고 본다. 한국의 사계절이 만드는 숙성 환경, 한식과의 조화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국산 식자재를 활용한 시도도 가능한가.
도정한: 충분히 가능하다. 지난해 국내산 홍고추를 활용한 한정판 위스키를 선보였다. ‘한국인의 매운맛’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한 제품이었는데 홍고추 특유의 매콤한 향과 자극을 위스키의 기존 풍미와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가장 큰 과제였다. 소비자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최근에는 오크통에 수정과를 먼저 숙성해 향을 입힌 뒤 그 통에 위스키 원액을 넣어 추가 숙성 실험을 진행 중이다. 어떤 맛으로 나타날지 기대도 크지만 실패해도 괜찮다. 결과와 관계없이 한국적 요소와 위스키의 접점을 넓혀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경험’을 위스키에 담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필요하다.
국내 위스키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지원은.
강기문: 기업이 더 안정적으로 투자하고 품질 개선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현재의 종가세(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는 원가가 상승하면 세 부담도 함께 커지는 구조인 만큼 산업 초기 단계에 있는 국내 증류소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과세 체계가 마련되면 품질 개선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위스키를 만들고 싶은가.
강기문: 화려한 수식어로 기억되는 위스키보다 사람들의 일상과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술을 만들고 싶다. 해외 브랜드와 협업도 더욱 확대해 세계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겠다.
도정한: 한국 위스키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한국 싱글몰트 위스키의 출발점이 되고 싶다. 초심을 잃지 않고 품질과 풍미를 꾸준히 이어가겠다. 지금은 세계 위스키 시장에서 작은 움직임에 불과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와 개성이 쌓이는 위스키, 한국 위스키의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내는 술을 만들겠다.
백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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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