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서로의 속도에 맞춰 함께 세상을 바꾸다

장애인식개선 앞장서는 오정현·지현 자매
“지현이는 자신이 남들과 약간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네, 생각하는 게 조금 달라요. 숫자랑 시간 개념, 돈 계산 같은 거요.”
“사실 지현이가 3급 지적장애인이에요. 지현이가 지적으로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옆에 있다 보니 잊게 돼요. 최대한 화내지 않으려고 하다가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도 해요. 많이 미안해요.”
2020년 5월 유튜브 채널 ‘아보피치’에 올라온 영상의 한 장면이다. 채널을 운영하는 오정현·오지현 자매는 이 영상을 통해 지현 씨의 장애를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장애를 드러내고 살아서 좋을 게 없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가까운 지인들조차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정현 씨는 “부모님은 지현이가 치료를 많이 받으면 나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장애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겠죠”라고 떠올렸다.
처음엔 두 딸의 유튜브 활동을 완강히 반대했던 부모님은 이제 “그때 너희의 선택이 천 번 만 번 옳았다”며 응원한다. 가족 안에서 시작된 변화는 세상으로 번지고 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다를 게 없구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네요. 제가 오해했어요’라는 댓글이 부쩍 늘었다. 3월에는 지현 씨가 발달장애인 청년들의 연애를 다룬 SBS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실 커플’로 이어지며 화제를 모았다.
두 자매는 장애인식개선 전문강사로도 활동하며 학교와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300회 넘게 강의를 진행했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은 ‘장애가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는 그날까지’다. 두 자매의 활동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은 2025년 말 기준 28만 8000여 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11.0%를 차지한다. 인지와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일상생활 전반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가족의 돌봄 부담도 적지 않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9월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추진방안’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발달장애인이 돌봄부터 자립까지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공적 지원을 보장하고,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지역사회에서 보통의 일상을 누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6년, 두 자매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들어봤다.

지현 씨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지현: 머릿속이 하얘지고 긴장도 많이 됐어요. 그런데 언니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줬어요. 저를 편안하게 해주니까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정현: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평소 좋아하던 메이크업 영상을 혼자 올리기 시작했죠. 그러다 지현이가 한 번도 화장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당시 지현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거든요. 지현이에게 화장해주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기로 하고, 장애를 공개하는 데에도 지현이의 동의를 구했어요.
그때는 발달장애가 있는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크리에이터가 많지 않았어요. 비장애인은 그런 모습을 접할 기회가 적으니 관심을 갖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지현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재미있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의 일상을 담는 유튜브 콘텐츠는 어떻게 기획하나요.
지현: 언니가 주로 방향을 잡아요.
정현: 제가 먼저 주제를 고민한 뒤 지현이에게 의견을 묻는 편이에요. 지현이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때도 있고요. 최근에는 지현이가 SBS ‘내 마음이 몽글몽글’을 통해 연애를 시작했는데, 시청자들의 관심이 굉장히 많았어요. 연애하는 모습처럼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경험하는 평범한 순간들을 영상에 담으려고 해요.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졌나요.
정현: 예전에는 ‘언니가 동생을 도와주는 모습이 예쁘다’는 반응이 많았다면, 요즘은 ‘지현 씨가 혼자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모습이 멋지다’는 댓글이 훨씬 많아졌어요.
지현: 저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연예인이 된 것 같아요. 꿈만 같아요.

함께 영상을 만들고 활동하면서 자매 사이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지현: 예전에는 언니가 제 속도에 맞춰주지 않았어요. ‘이거 해’, ‘이거 먹어’ 하면서 명령하듯 말하고 설명도 충분히 해주지 않았어요. 저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들어야 이해가 될 때도 있거든요. 요즘은 언니가 제 속도에 맞춰 반복해서 설명해줘요. 큰 발전이에요.
정현: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에요.(웃음) 예전에는 제가 늘 지현이를 챙기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유튜브를 시작하고 함께 일하면서 저 역시 지현이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가족 모두 지현이의 속도를 존중하려고 해요. 급한 마음에 대신 해주기보다 지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고요.
장애인식개선 강의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정현: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 공공기관, 사회적기업, 복지관까지 다양한 곳에서 강의해요. 의무교육이다 보니 지루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저도 직장에 다닐 때는 그랬거든요.(웃음) 그래서 정형화된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장애 유형이나 특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저희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드려요. 지현이는 발달장애인으로서 겪은 일과 현재의 고민을, 저는 비장애인 자매로서 지현이를 부끄러워하고 편견을 가졌던 과거를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지현이의 플루트 연주와 성악 공연도 곁들이고요. 듣는 분들이 저희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어요.
강의 현장에서 여전히 장애에 대한 편견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나요.
정현: 장애를 잘 몰라서 하는 말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에는 비장애인 같아요’, ‘장애를 극복한 모습이 멋져요’ 같은 표현이죠. 좋은 의도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장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런 표현을 들을 때면 우리가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느껴요.
지현: 장애인도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편견을 없애고 싶어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느낀 계기가 있었나요.
정현: 최근 한 대학교에서 기억에 남는 질문을 받았어요. 언젠가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느냐는 질문이었죠.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더라도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변화가 쌓이면 지현이도 조금씩 자립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어요. 사실 예전에는 지현이의 자립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일상생활에서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자립이 반드시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더라고요.
지현이는 현재 한국발달장애인문화예술협회를 통해 장애인 연주단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주변을 봐도 정규직으로 일하는 발달장애인을 찾기 어렵고, 개인의 능력이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업무를 맡은 경우도 많아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현 씨가 생각하는 자립은 어떤 모습인가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도 궁금해요.
지현: 자립에 대해 매일 생각해요. 저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요.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다운증후군 배우인데, 그 언니가 출연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고 꿈을 갖게 됐어요. 저도 연극 ‘프레드’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직접 해보니까 연기를 더 하고 싶어졌어요.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정현: 지현이와 활동하기 전까지는 뭐든 제가 다 해주려고 했어요. 부모님도 마찬가지였고요. 막상 지현이에게 직접 해볼 기회를 주니 생각보다 훨씬 잘하더라고요. 서툴지만 혼자 설거지와 빨래도 하고,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길도 혼자 다녀왔어요. 당사자의 능력을 믿어주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삶과 마음을 잘 돌봤으면 좋겠어요. 가족이 건강해야 장애인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아보피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현: 장애에 대한 편견과 동정을 없애고 싶어요.
정현: 구독자가 이제 1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목표는 10만 명이에요.(웃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담아 더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채널로 키워가고 싶어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정현: 제가 뭔가 해보자고 제안하면 지현이가 힘들다고 할 때도 있지만 결국 함께해줘요. 자기가 원하는 것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요. 가끔 지현이 없이 강의하러 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요. 그저 제 곁에서 함께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지현: 언니는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마음은 해님 같아요. 제가 모르는 게 있으면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페스티벌이나 클럽에도 데려가줬어요. 함께 강의할 때도 제가 어려워하면 신호를 주면서 도와줘요. 언니가 옆에 있어서 좋아요.
이근하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