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올림픽 도전하는 ‘쇼트트랙 여왕’ 최민정
스타트 총성이 울리자 최민정이 몸을 던지듯 앞으로 튀어나간다. ‘사각사각’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긁는 소리만 또렷하다. 순식간에 속도가 붙는다. 카메라가 그의 질주를 쫓아가기 벅찰 정도다. 반대편 코너를 돌아 카메라를 향해 다가온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 깜짝할 새 벌써 다시 반대편 코너에 가 있다. 한 바퀴, 두 바퀴, 눈으로 속도를 쫓아가다 보니 몇 바퀴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파고든 코너 자리에 스케이트 날 자국이 선명하다. ‘띠링띠링’ 실내빙상장 전체에 종소리가 울리자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가 시작된다. 선두를 지키던 그는 마지막 바퀴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스케이트 날을 내밀면서 여유롭게 결승선을 통과한다. 세 번째 올림픽을 준비하는 최민정의 훈련 현장이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꿈의 무대’이다. 동시에 선수가 견뎌온 시간의 무게를 증명하는 자리다. 한 번 참가만으로도 ‘올림피언’이라는 이름이 주어지는 무대를 세 번 연속 밟기는 쉽지 않다. ‘쇼트트랙의 여왕’ 최민정(28·성남시청)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이어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인 만 16세부터 줄곧 태극마크를 달고 뛰어온 최민정은 이번 대회에서 전례 없는 기록에 도전한다. 우선 여자 1500m 종목 3연패다. 올림픽 쇼트트랙 역사상 개인 종목 3연패는 아직 한 차례도 없다. 우리나라 동계올림픽 최다 금메달에도 도전한다. 최민정은 평창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세 개, 은메달 두 개를 획득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한 개를 추가하면 ‘쇼트트랙 선배’ 전이경과 최다 금메달 타이 기록,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 하나만 더 목에 걸어도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이 보유한 역대 최다 메달(여섯 개)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만난 최민정은 ‘세 번째’라는 수식어에 담담했다. 그는 “올림픽이 주는 무게감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지금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보여주고, 과정 자체를 많이 누리다 오고 싶다”고 말했다.

주변의 기대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부담보다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쇼트트랙은 평소에 주목을 덜 받다가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훨씬 주목받잖아요. 그래서 올림픽을 통해 최대한 쇼트트랙을 알리고 싶어요.
올림픽처럼 큰 대회 때 특별한 관리법이나 경기 당일 루틴이 있나요?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특별히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다 기존에 해왔던 것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당연히 부상당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경기 당일에도 정해진 일정을 정확하게 지키려고 해요. 영양제처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챙겨요. 각자의 루틴이 있겠지만 저는 루틴이 늘어날수록 피곤하다고 생각해서 줄이는 편이에요. 오히려 덜어내고 경기에 집중하는 거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 꼽는다면?
‘꾸준함’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대표팀 생활을 오래하면서 뭐든지 꾸준히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점을 꼽자면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더 걸린다는 점이에요. 국제적인 트렌드도 변하고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선수들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저도 변화해나가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요.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라이벌은 누굴까요?
너무 많죠.(웃음) 특히 요즘은 북미나 유럽 선수들도 모두 잘하는 것 같고 기량도 많이 올라와 있어요. 예전에는 한 대회에서 2~3명 정도만 신경썼다면 지금은 6~7명까지 계속 신경쓰면서 경기를 치러야 하거든요. 훨씬 치열해졌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을 유지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보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선수들은 어렵거나 위기인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이 있어요. 이번 올림픽을 포함해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위기를 이겨내는 힘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높은 위치를 지킬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선배들을 보면서 저희가 꿈을 꾸고, 저희를 보며 후배 선수들이 꿈을 꾸면서 그 정신력을 이어온 것 같아요.
임종언, 김길리 등 첫 올림픽에 나서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후배 선수들과 함께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이 있어요. 각자의 개성이 강하다는 점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개성을 잘 살리면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스타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회가 다가올수록 흔들릴 수도 있지만 자기 것을 끝까지 잘 지켜나가면 모두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이번 대표팀이 ‘역대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한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과 김택수 국가대표선수촌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쇼트트랙에 애정을 갖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어요. 선수들도 그걸 분명히 느끼고 있고요. 그런 응원과 지원 덕분에 저희도 한 팀이 돼서 더 책임감 있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심을 주신 만큼 선수들 사기도 올라가고 그만큼 팀도 더 단단해졌다고 느껴요.
쇼트트랙 경기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종이 울리는데, 그때 기분은 어떤가요?
몇 번째 있느냐에 따라 달라요. 두 번째에 있다면 마지막에 한 명만 추월하면 되니까 앞사람을 추월하는 데만 온 신경을 써요. 첫 번째로 달리고 있을 때는 한 바퀴만 버티면 1등을 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든 선두를 지키려고 집중하죠.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연습벌레’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연습량이 궁금합니다.
선수촌에 있으면 오전 6시부터 8시 정도까지 빙상 훈련을 하고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까지 다시 빙상 훈련을 해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지상 훈련, 저녁 식사 이후에는 2시간 내외로 개인 운동하는 방식이에요. 이게 기본 루틴이고 지금은 올림픽 앞두고 보강훈련을 추가해서 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최민정 선수를 응원해온 팬들이 많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스케이트를 타다 보니 그만큼 오래 응원해주신 분도 많아요.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응원이 제가 계속 빙판에 설 수 있는 큰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응원해주시는 만큼 좋은 경기로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변함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쇼트트랙 경기 자체를 재미있게 보시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승부를 떠나 최민정 선수에게 스케이트는 어떤 의미인가요?
스케이트를 타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요. 솔직히 경쟁하는 것보다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시원한 바람을 맞거나 빠른 속도감을 느끼는 것도 늘 설레고요. 물론 경기 중에 앞 선수를 추월하거나 연습 과정에서 안 되던 기술이 되는 순간의 성취감도 짜릿합니다.
선수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스케이트를 빼놓고 제 삶을 생각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쇼트트랙 발전을 위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운동 선수들마다 경기 전이나 훈련 때 듣는 음악 루틴이 있던데요. 자신만의 음악 루틴이 있나요?
딱 한 곡을 듣기보다 그때그때 다른데요. 요즘엔 그룹 ‘에픽하이’ 노래를 많이 듣고 있어요. 시끄러운 노래는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렇다고 너무 처지는 노래도 운동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에픽하이’ 노래를 듣다 보면 편안해져서 많이 듣고 있어요.
올림픽을 마치고 마음을 남긴다면 어떤 해시태그를 달고 싶나요?
제가 해시태그를 잘 이용하는 편이 아니라서 재밌는 질문인데 어렵네요.(웃음) 사실 이번 올림픽은 ‘웃으면서 끝내는 올림픽’이 됐으면 좋겠어요. 무난하게 ‘#응원해주셔서감사합니다’로 하면 좋을 거 같아요. 평범한 말이지만 사실 많은 뜻이 담겨 있거든요.
올림픽이 끝나면 뭘 가장 하고 싶은가요?
여행을 가고 싶어요. 휴양지에 가서 좋은 것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어요. 특히 자고 싶을 때 언제든 자고 싶어요. 2025년 5월에 선수촌에 입촌했거든요.
올림픽을 마친 뒤의 자신에게 미리 한마디를 한다면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고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쉬라는 말도 해주고 싶어요.
오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