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포화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 노래할 수 있다면

포화 속의 합창 The Choral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이야기다. 서부전선이 치열해지자 영국군의 프랑스 파병이 늘어난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한 시간 떨어진 시골마을 램스든도 전쟁의 몸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돌아오지 못한 아들, 불구가 되어 귀향하는 형제가 늘어가지만 징집영장은 끊이지 않는다. 전황은 하루하루가 다르고 주민들은 불안에 익숙해진 듯하다. 공부도 생업도 놀이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전장의 연기처럼 미래가 희뿌옇다.
그래도 나름 버틸 용기를 준 곳이 있었다. 남녀노소가 모인 램스든 합창단이다. 시의원이자 공장 오너인 덕스베리가 지원하는 아마추어 합창단, 이들이 ‘The Choral’이다. 하지만 점점 위기다. 남자들이 연이어 입대하니 단원 수가 쪼그라들었다. 덕스베리를 비롯한 토박이들이 모인 운영위원회가 합창에 진심이어서 천만다행. 쉬 접을 생각이 없다. 지휘자마저 그만두자 새 지휘자를 물색하며 재건에 힘쓴다. 이때 등장한 ‘헨리 거스리 박사’(랄프 파인즈 분)는 램스든의 구세주다. ‘적국’인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한 이력 때문에 반감을 사긴 했지만 바그너도 만나봤다는 실력자다. 이보다 나을 순 없는 대안이었던 것.
합창단의 수준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거스리 박사’가 할 일이 태산이다. 단원은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이들은 음정이 달리고 박자도 어긋나기 일쑤다. 무엇보다 단원 보강이 급선무. 거스리 박사는 합창단엔 계급이 필요 없다 선언하고 마을에 남은 젊은이 물색에 나선다. 사창가 여인도 상관없다는 말은 선명하고 굳건하게 들린다. 노래는 자유이며 하모니는 평등이라 말하는 듯하다. 합창단을 해봤던 한 사람으로서 꽤 공감한 장면이다. 사람이 아쉬우니 오디션은 헐겁다. 아직 영장을 받지 않은 젊은 한량들, 빵집 종업원, 구세군 단원 등이 모여들었다. 노래를 원래 좋아한 이도 있지만 노래 말고는 딱히 마음 둘 곳 없어 선택한 이도 많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통 아닌가. 징집영장이 나이 가리지 않고 무더기로 쏟아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무대에 올릴 곡은 에드워드 엘가의 오라토리오 ‘제론티우스의 꿈’.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하려고 했지만 독일에 대한 반감이 만만치 않았다. 넷플릭스 영화 ‘스트레이(THE STRAYS)’에도 등장한 이 곡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연옥을 거쳐 천국에 도달하는 여정을 그린 19세기판 ‘신곡’. 죽거나 부상당하는 군인이 속출하는 전쟁통의 현실을 연옥에 빗대어 연기하고 노래한다. 웅장한 합창과 솔리스트의 노래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로 구성되는 곡이다. 엘가에게 공연 허락을 구하고 뜻밖의 솔리스트 에이스도 발굴한 거스리 박사. 이제 연습에만 매진해야 할 때다. 다행히 모습을 갖춰가는 합창단이 대견하다. 합창단 후원자이자 단장으로서 테너 솔로를 도맡았던 덕스베리는 새로운 에이스에게 역할을 양보한다. 저마다 제 색깔 내느라 충돌을 일삼던 단원들도 점점 가족이 돼간다. 젊은 단원 여럿이 자전거를 타고 시골 가로수길을 달리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고 싶다.
하지만 거스리 박사의 속은 조금 시끄럽다. 단원 수도 적고 오케스트라도 구할 수 없는 데다 원작과 다른 젊은 솔로를 내세웠으니 걱정이다. 엘가에게 편곡과 무대 스케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실상을 알면 공연을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공연일. 영장이 나와 있다. 공연 다음날이면 또 몇몇 젊은이가 입영열차를 타야 한다. 하지만 단원들 모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성취감에 들떠 있다. 입대를 앞둔 어린 청년들도 행복하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노래는 꽃처럼 피어날 참이다.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지지만 램스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결국 무대에 올려진 ‘제론티우스의 꿈’. 공연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결말이자 핵심 메시지다.
‘The Choral’의 한글 제목은 ‘포화 속의 합창’이다.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은 ‘조지왕의 광기’, ‘히스토리 보이즈’로 유명한 거장. 인간애에 집중하는 감독이라서인가. 전쟁영화인 듯한데 전투신이 보이지 않는 따뜻한 휴먼 스토리다. 절망 속에 피워낸 사랑과 희망 이야기라 더 훈훈하다. 게다가 음악이 함께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The Choral’은 전쟁의 참혹상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고통과 슬픔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남은 자들의 이야기’다. 거스리와 램스든은 끝까지 무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음악과 노래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의 공포를 예술로 승화하려는 거스리의 사투는 성공인가 실패인가. 끝까지 봐야 답할 수 있을 듯.
‘절망은 없다, 노래할 수 있다면’. 써놓고 보니 이만한 한 줄 평이 없을 것 같다.
글 이상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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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