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 퇴원해도 운동은 꼭 이어가셔야 해요.”
“제가 편마비 환자인데… 어디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재활 치료로 입원한 환자들은 병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한다. 재활은 장기간 관리가 필요하지만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 정고운 대표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소셜벤처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이하 움직임연구소)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년 장애인 생활체육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혼자 운동하기 어려워서(27.8%) ▲시간이 부족해서(17.6%) ▲체육시설과 거리가 멀어서(16.2%) ▲시설 이용료가 비싸서(9.7%) 등이 꼽혔다. 운동 의지는 있지만 접근성이나 환경 제약 때문에 실제 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움직임연구소는 이러한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2020년 문을 열고 척수손상·뇌졸중·뇌성마비·치매·고령자 등 건강취약계층에게 ‘배리어 프리(무장벽) 운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낮은 경사로, 넓은 화장실… 모두에게 열린 공간
평일 점심시간이 막 지난 무렵 부산 금정구의 움직임연구소를 찾았다. 헬스기구와 필라테스기구가 놓인 넓은 공간 한가운데 트레이너와 수강생 다섯 명이 원을 이루고 서 있었다. 그중 두 명은 뇌성마비와 척수손상으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자, 준비해볼게요!”
트레이너의 구령과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삑” 소리가 울리자 다섯 명이 일제히 움직였다. 시작은 같았지만 동작은 제각각 달랐다. 팔 벌려 뛰기로 호흡을 끌어올리는가 하면 10㎏이 넘는 굵은 밧줄(배틀로프)을 위아래로 흔들어 전신 근육을 깨우는 수강생도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덤벨 스쿼트로 하체 단련하기, 양팔로 바이크 굴리기, 랫풀다운(긴 손잡이를 아래로 당겨 날개뼈 아래쪽부터 허리까지 등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 동작이 반복됐다.
30초 운동 후 30초 휴식이 한 세트. 신호가 다시 울리자 수강생들은 시계 방향으로 한 칸씩 이동해 새로운 동작에 들어갔다. 같은 운동이라도 각자의 몸 상태와 목적에 따라 동작이 달라졌다. 가령 휠체어를 탄 수강생은 뛰어오르는 동작을 팔을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대체하는 식이다. 몸 상태에 맞춰 운동법을 재해석하는 ‘어댑티드 피트니스(Adapted Fitness)’ 방식이다.
모든 세트가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다함께 스쿼트 자세로 뛰어오르는 동작이 시작됐다. 세 사람은 폴짝 뛰어올랐고 한 사람은 그 리듬에 맞춰 덤벨을 머리 위로 힘껏 들어 올렸다. 또 다른 사람은 작은 기구를 아래로 내렸다가 천천히 올리는 방식으로 동작을 맞춰갔다. 단체 운동이 끝나자 개별 운동 시간이 이어졌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한 수강생은 “보디프로필 촬영을 목표로 운동법을 알아보던 중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됐다”며 “반년 동안 꾸준히 운동한 결과 근력이 붙고 호흡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은 전직 휠체어펜싱 선수로 팔꿈치 부상 이후 재활을 위해 이곳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려웠는데 여기서 코어 근육을 강화한 이후 일상 동작이 한결 수월해졌다”며 “턱이 낮아 어디든 이동할 수 있고 동선이 넓은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움직임연구소 시설 곳곳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숨어 있다. 문턱은 휠체어 바퀴가 걸리지 않도록 없애고 계단은 낮은 경사로로 대체했다. 화장실 입구도 넓게 설계돼 있다. 화장실 내부 또한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확보돼 있다. 옷을 갈아입기 편하도록 손잡이와 의자도 갖춰놨다. 움직임연구소를 만든 정 대표는 “이곳에 들어왔을 때 ‘여기서는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마음껏 운동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운동이 일상으로 이어질 수 있게
움직임연구소의 운동은 같은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는 방식이 아니다. 각자의 몸이 가능한 범위에서 동일한 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유산소운동의 목적이 심폐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다리를 쓰지 못해도 상체 동작으로 심박수를 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동작의 모양이 아니라 운동의 본질이다.
움직임연구소는 센터에서의 운동이 일상에서도 이어지도록 돕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수영·필라테스·마라톤 등 생활 스포츠 활동을 시도해왔고 4년째 운영 중인 서핑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다. 하반신을 쓰기 어려운 참여자들은 서서 파도를 타는 대신 엎드린 자세에서 패들링과 푸시업을 반복하며 균형을 잡는다. 현재는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울·부산·대구에서 참가자를 선발해 약 100일간 훈련한 뒤 바다로 나가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그램 개발은 창업 초기 구성원들의 전문성과 경험에서 출발했다. 정 대표는 물리치료 전공 후 스포츠의학을 공부했다. 여기에 호주에서 물리치료를 배운 팀원, 특수교육 전공자이자 크로스핏 지도자, 스포츠 재활 전공자, 보디빌딩 출신 트레이너까지 다양한 경력들이 힘을 모았다. 사고 후 하반신 마비를 겪은 전 골프 선수까지 합류했다. 덕분에 운동 방법의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졌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과 신체의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사람에게 맞춘 운동 프로그램’이 완성돼갔다. 기업부설연구소 ‘무브먼트 R&D’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은 별개”
정 대표는 “우리는 새로운 걸 창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 운동을 사람에게 맞게 적용(adaptation)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별한 장비를 쓰기 시작하면 지속성이 떨어진다. 가능한 한 피트니스 시장에서 쓰는 장비를 그대로 가져와 각자의 몸 상태에 맞게 변형해 사용하는 이유”라고 했다. 서울에서 움직임연구소 쇼룸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누구든 보고 복제해서 더 많은 사람이 이런 환경을 누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 움직임연구소는 온라인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비가 내려 휠체어 이동이 어렵거나 욕창으로 외출이 제한되는 등 대면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시간 비대면 코칭, 개인 맞춤 운동 영상, 재활 강좌 구독 등으로 이뤄진 온라인 서비스는 병원 퇴원 이후 운동할 곳을 찾지 못한 이용자들에게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움직임연구소 이용자의 약 70%는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이고 나머지 30%는 암 생존자나 신장 이식자처럼 신체 제약이 있는 경우다. 정 대표는 “우리가 하는 일은 8점을 10점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0점을 1점, 3점으로 올려 일상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move-well, stay-well, be-well(잘 움직이고, 건강을 유지하고, 잘 지내고)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선천성 뇌성마비가 있는 40대 여성 수강생이 몸이 불편한 것과 건강하게 사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하더라. 딸이 ‘우리 엄마는 장애가 있었지만 정말 건강하게 살았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운동한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정 대표는 “아침에 눈 뜨고 기지개를 켜고 화장실에 가고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는 그 사소한 움직임이 쌓이면 삶이 바뀐다고 믿는다”며 “몸이 불편한 사람만을 위한 전문 공간이라는 표현 자체가 또 하나의 벽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든 섞여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근하 기자

국민 누구나 건강한 삶을 위해
반다비체육센터 지원액 상향하고
고령층 스포츠 프로그램 신설
정부는 국민 누구나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생활체육 참여 기회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낙후된 공공체육시설의 개·보수를 지원하고 국민체육센터 건립 지원액을 늘려 생활권 내에서 손쉽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확충하고 있다. 체력 측정과 맞춤형 운동처방을 제공하는 국민체력인증센터도 기존 75곳에서 101곳으로 확대해 개인 맞춤 건강관리 기반을 강화한다.
고령층의 운동 활성화를 위한 지원도 신설됐다. 정부는 어르신 대상 스포츠 프로그램 지원 사업을 새롭게 도입해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장애인의 생활체육 참여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반다비체육센터’(장애인·비장애인 통합형 생활체육 시설)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2025년 30억~40억 원 수준이던 지원액을 2026년 40억~5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해 장애인 체육시설의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11월 10일에는 ‘제1차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장애계 간담회’도 열렸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종합계획을 마련 중이며 관련 포럼과 장애인단체 심층인터뷰 등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 역시 그간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마련된 종합계획안에 대해 장애계 의견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