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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한반도에서 68년 만에 전쟁을 끝내려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전쟁입니다. 지금이니까 마음 편하게 하는 이야기지요. 7월 28일 전쟁이 처음 났을 때 사람들은 그 전쟁이 4년 이상 계속되는 세계대전이 되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주요 참전국들은 기껏해야 두세 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지요.

한여름에 시작된 전쟁은 지루하게 계속됐습니다. 벨기에의 서부전선 참호 속에만 갇혀 있던 병사들과 초급장교들은 지쳐만 갔죠.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한 독일군 병사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습니다. 참호에서 노래를 부르다니요. 평소 같으면 야단맞을 일이죠. 하지만 크리스마스잖아요. 한 병사의 노래는 독일군 전체의 합창으로 번졌습니다. 불과 90m 떨어져 있는 영국군의 귀에도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영국군도 자연스럽게 캐럴을 불렀습니다. 상대방 진영에서도 들리는 노랫소리에 안심이 되었을까요. 독일군은 참호 위로 촛불과 전등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를 하나둘 올려놓았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용기인지 만용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독일군 병사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참호 위로 올라갔습니다. 아무런 엄폐물이 없는 곳에 환한 등을 들고 맨몸으로 나선 것입니다. 영국군에게는 한 방이면 적을 죽일 수 있는 찬스입니다. 그 순간 양측 모두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은 그에게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잠깐의 침묵 후 양측의 수많은 병사들이 너도나도 참호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가섰습니다. 악수하고 포옹하고 선물을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서로 총을 쏘지 않기로 약속하고 흩어져 있던 양군의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그 유명한 축구시합이 열렸습니다. 축구 경기는 격렬했습니다. 당연하지요. 독일 대 영국인데요. 양측의 신부와 목사가 심판을 봤습니다. 결과는 독일의 3-2 승. 독일의 마지막 골은 오프사이드였다는 영국 측의 주장이 있지만요. 어쨌든 이 축구 경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그런데요, 아름다운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양군의 수뇌부는 대노합니다. 주동자를 색출해 처벌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자 다시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같이 캐롤을 부르고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축구를 했던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을 계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는 크리스마스 휴전이나 크리스마스 축구 같은 미담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휴전은 휴전일 뿐이지요.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습니다. 북한은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치고 내려왔죠. 그들은 전쟁이 금방 끝날 줄 알았을 것입니다. 석 달 후인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전선은 압록강까지 올라갔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의 참전으로 지금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긴 대치를 하게 됐습니다. 무슨 전쟁이 70년 가까이 되도록 끝나지 않을까요?

한반도에서 68년 만에 전쟁을 끝내려 합니다. 휴전(休戰)이 아니라 종전(終戰)입니다. 오늘 악수하고 내일 전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전쟁을 끝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평화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요. 어렵게 얻은 평화를 지키려면 강해야 합니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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