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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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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한글날이 되면 세종대왕을 기리는 여러 행사들이 열린다. 언론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정신과 위업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과 이런저런 추모행사들을 새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만 ‘세종문화상’만큼은 다시 되돌아볼 가치가 있다. 세종문화상은 한글 창제를 비롯해 찬란한 한국문화를 발전시킨 세종대왕의 창조정신과 그 위업을 기리기 위해 정부에서 1982년에 제정한 상이다. 정부는 해마다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 이 상을 수여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에도 제33회 세종문화상의 5개 부문(한국문화, 예술, 학술, 국제협력·봉사, 문화다양성) 수상자를 발표하고 시상식을 개최했다. 그렇다면 제1회 때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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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제1회 세종문화상 공고’ 편(동아일보 1982년 4월 19일)을 보자. “제1회 세종문화상 실시계획 공고”라는 헤드라인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이어졌다. “세종대왕은 민족문화의 기틀을 만세에 다지고 그 내실을 살찌워 꽃피우게 한 민족사상 드물게 보는 문화 지도자이십니다. 대왕의 이념은 겨레의 일상과 더불어 있었고, 식산흥국(殖産興國), 자강(自强), 진취(進取)의 주재자(主宰者)이셨습니다”라며, 온 국민이 세종대왕을 기리고 받들어야 하는 연유를 설명했다. 정부는 이런 취지에서 “세종대왕의 창조정신과 흥국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문화의 정체성의 일익으로 삼고 그 개화(開花)를 통해 인류문화의 전진에 기여케 하고자” 세종문화상을 제정해 한글날에 시상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 무렵의 시상 부문은 문화·예술·학술·과학기술·교육·국방 등의 여섯 분야였다. ‘식산흥국’이나 ‘주재자’ 같은,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는 낱말도 등장한다. 식산흥국이란 산업을 장려해 나라를 일으키자는 뜻. 1906년 3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가 결성된 직 후 안창호 선생이나 장지연 선생의 연설에서 자주 쓰이던 이 낱말이 1980년대에까지 쓰이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동안 세종문화상은 상당한 수준의 권위나 지명도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민간의 여러 문화재단에서 거액의 상금을 주는 문화상을 제정하면서 세종문화상 후보자의 추천 수와 업적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상의 권위나 지명도를 높일 방법은 없을까? 그렇다고 해서 세종문화상의 상금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두루 알다시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은 50프랑을 상금으로 주는데 우리 돈으로 1만5천원 수준에 불과하다. 초라한 상금이지만 그 권위와 공정성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으리라.

앞으로 세종문화상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키워갈 필요가 있다. 이 상은 세종대왕의 창조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부가 상훈법에 따라 제정한 거의 유일한 문화상이다. 상금 액수 때문에 세종대왕의 이름을 내건 상의 가치가 빛을 잃는다면 우리네 문화 척도가 그만큼 척박하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말이 없으리라. 어마어마한 상금이나 그 어떠한 명분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에서 천명하신 “새로 스믈여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안 하고져 따라미니라” 같은 한글 창제정신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세종문화상의 가치를 높이는데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을 때다. 모두가 한글을 쓰면서도 외국 ‘글로벌’을 설 때도 있는 글로-벌 시대에는 더더욱.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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