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버킷리스트·유서·자서전 등 다양한 웰다잉 준비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삶과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남은 삶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노년을 바라보는 시점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채워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연극의 마지막 장이 노년이다.”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노년에 대하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인생의 마지막 장에서 서투른 배우처럼 쓰러지지 말자”고 조언한다. 인생의 2막에 들어서는 은퇴 시점, 그동안 잘 살아왔다면(well-living) 잘 죽는 것(well-dying)을 고민해봄으로써 연극의 대미를 장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두려운 존재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노인에게 죽음을 얘기하는 것을 금기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이 갑작스레 닥친다면 당사자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떠날뿐더러 남은 가족은 더 큰 충격과 슬픔을 겪게 된다. 요즘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을 외면하기보다 남은 삶을 채울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입관 체험 통해 삶을 되돌아보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김성민(가명·68) 씨는 아직 죽음을 준비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또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10년 전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진 경험을 하고부터다. 자식 둘을 모두 교육시키고 경제활동을 이어가며 노후 걱정은 없겠다 싶던 찰나였다. 그는 4년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점차 차도를 보여 지금은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을 만큼 건강해졌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죽음에 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죽음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면서 영정사진을 찍고 유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유서를 쓰고 있자니 그동안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후회는 남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아이들도 바르게 자라줬다. 다만 자신의 삶에 미련이 남았다. 그동안 치열하게 사느라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자동차를 운전하고 여행도 다니지만 젊은 시절에는 앞만 보고 여유 없이 살아왔다. 유서를 다 쓴 다음에는 입관 체험을 했다. 관에 들어가 누운 후 뚜껑이 닫히니 적막만 흐르는 관 속에서 눈물이 났다.

입관 체험을 하고 난 김 씨는 삶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기로 했다. 유서를 쓰며 느꼈던 삶의 미련을 더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이런 생각을 갖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장례에도 동참하기로 했다. 그는 “장례식에 수천만 원씩 쓸 필요가 있나? 장례식에 쓸 돈을 살아 있는 동안 의미 있게 쓸 생각이다. 우리나라 장례 문화에는 허례허식이 있는데 이젠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장례 방법도 생각해뒀다. “수목장을 원한다. 매장을 하면 자식들이 묘를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바빠서 찾아오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며 화장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작은 장례란 허례의식과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 간소화한 장례를 말한다. 김 씨와 같이 작은 장례 실천에 서약하면 본인이 수의, 관, 음식 대접, 부고 범위 등의 장례 절차를 미리 정해 유족에게 일종의 유언장을 남기게 된다. 작은 장례에 따라 관은 종이관이나 소박한 관으로 대체하고, 수의 대신 평소 즐겨 입던 옷을 이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신문 부고 내지 않기, 부의금·조화 받지 않기, 가족장 중심으로 장례 치르기 등 규모, 절차, 비용 등을 대폭 줄이는 방법이 있다.

서대문구청 복지정책과 김시우 주무관은 “작은 장례 서약에 동참하면 유언장을 적고 관, 수의, 화장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을 유족에게 남긴다. 평균 1300만~1500만 원 소요되는 장례 비용이 작은 장례에 동참함으로써 500만~600만 원으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작은 장례에 참여하면 유족에게 전가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노년층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늘어나는 추세다.

장례 방법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장례 방법으로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통계청의 사회의식 조사에 따르면 ‘매장(묘지)’ 28.6%, ‘화장 후 봉안(납골당, 납골묘 등)’ 37.3%, ‘화장 후 자연장(수목장, 잔디장 등)’ 31.2% 등의 순으로 장례를 원한다고 답해 2011년 각각 38.3%, 31.7%, 25.0%와 차이를 보였다. 고령화 사회, 가족 구조 변화, 매장 공간 부족 등으로 앞으로 화장률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작은 장례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삶을 정리하는 과정으로는 ‘자서전 쓰기’가 대표적인 방법이다. 나이가 들어 ‘나도 한 번 살아온 길을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자서전을 쓰는 일반인이 늘고 있다. 서울시 송파구에 거주하는 이현수(65·사진) 씨도 지역 복지센터에서 ‘자서전 쓰기’ 모집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자서전을 써보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자신이 없었다. 특별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책을 쓸 만큼 문장력이 뛰어나지도 않아서다. 하지만 매주 기억을 더듬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니 꽤 괜찮은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서전 집필, 나를 인정하고 정리하는 기회

자서전은 다른 사람에게 읽히는 글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적어나가는 것이다. 오래된 기억을 꺼내다 보면 잊고 있었던 옛날 일이 불쑥 떠오르기도 하고 추억에 젖기도 한다. 주제를 고르기도 어렵지 않다. 부모님 이야기, 어린 시절의 추억, 여행 일화 등 대부분이 소소한 일상으로 채워진다. 이 씨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솔직하게 쓴다. 밝히기 망설여지는 내용도 있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나를 인정하고 정리하는 기회가 된다”고 했다.

공동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연 이현수 씨

▶ 공동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연 이현수 씨

더욱이 자서전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서전에는 이 씨가 기억하는 자기 자신, 부모님, 가족, 친구들이 등장했다. 주변 사람이 함께 기록되는 셈이다. 이 씨가 자서전을 쓰자 아들도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더 관심을 갖고 물어보더라고 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이 씨는 자서전을 고령의 어머니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자서전에 자신과 어머니의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 자서전을 계속 써나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10여 명이 모여 공동 자서전을 만들고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자서전을 쓰면서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나게 되는 기쁨을 맛본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서전 쓰기를 권한다.

자서전은 유명인사나 특별한 사람들만이 쓰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모두의 인생에서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독자가 있는 글이 아니기에 자서전은 고백에 가깝게 써 내려가면 된다. 글쓰기가 부담스럽다면 사진과 삽화를 혼합한 형태부터 녹화·녹음 등 동영상 자서전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으니 자기에게 편한 형태를 골라 시작하면 된다.

은퇴자의 자서전 집필을 독려하는 장영희 자서전 쓰기 사업단 단장은 “자서전 집필은 자신이 살아온 길에서의 안타까운 점, 용서할 사람 등을 스스로에게 고백하는 과정이다. 구체적인 심정을 적어보면서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며 “그동안 살아온 삶을 반추해보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좌표를 설정하는 계기가 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웰다잉 준비를 통해 삶을 완성하는 기회를 갖자

10년 후일지 20년 후일지 죽음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은퇴 후 노년기에 접어드는 과정에 있다면 웰다잉 준비를 통해 삶을 완성하는 단계를 거쳐보면 어떨까. 천상병의 시 ‘귀천’의 한 구절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고 말할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자.
버킷리스트 쓰기 :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보고 싶은 것을 목록으로 정리한다. 체력, 시간, 건강이 허락한다면 제약이 덜하므로 버킷리스트 작성과 실천은 최대한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유서 쓰기 : 유언장에 가장 많이 적는 말이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라고 한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과 이 말을 나누고 가족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자서전 쓰기 :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정리하고 자신에게 고백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남은 삶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용서와 화해하기 : 아름다운 이별은 용서와 화해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다. 마음에 담아뒀던 일이 있다면 조금씩 털어내는 연습을 하자.
사전 의료 의향서 준비하기 : 치료가 불가한 상태의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사전에 준비한다면 차후 가족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
사전 장례 의향서 준비하기 : 자신의 뜻에 따라 상장례가 이뤄지도록 작성한다. 관, 매장 방법, 수의 등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가족에게 전달할 수 있다.
입관 체험 : 가상 죽음 체험을 통해 남은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 열심히 살아가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참고 : 대한웰다잉협회

‘e하늘’ 장사 종합 서비스

정부는 매장 위주 장사제도의 합리적인 개선과 화장문화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화장장 예약, 장사 시설 찾기, 장례용품 가격 정보 등을
‘e하늘’ 장사 정보 시스템에 게시함으로써 장사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사 관련 상담 ‘e하늘’ 장사도우미 : 1577-4129
누리집 : www.ehaneul.go.kr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