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부부 사이에도 예절과 대화는 필수, 은퇴 시점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 필요해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다. 때문에 소홀하기도 쉽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화목한 가족관계가 기본이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개인주의가 가족에도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건강한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을 알아본다.
예로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고 했다. 노후 생활도 마찬가지다. 중장년층의 대부분이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등을 노후 고민으로 꼽지만 가족관계는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족의 중심을 이루는 부부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부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본격 은퇴가 시작되는 시기에는 부부가 모두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통계청은 2016년 부모와 자녀가 동거하는 비율이 29.2%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인 반면 부모만 따로 사는 경우는 68.2%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밝혔다. 즉 부부관계에 따라 노후 생활의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다.
“평소 쌓인 것을 얘기했다면 고쳤을 텐데…”

서울에 사는 장인규(가명·62·사진) 씨는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다. 이전보다 생활은 빠듯해졌지만 자식들도 다 결혼한 터라 오히려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 씨의 아내는 이혼서류를 꺼냈다. 아내는 그동안 남편에게 무시 받았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지 않았다며 이제 더는 참고 살지 않겠다는 주장을 펼쳤다. 장 씨는 짚이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 쌓인 것을 얘기했다면 고쳤을 텐데 아내가 그토록 힘들어 하는지 몰랐다. 30년을 넘게 같이 살았는데 갑자기 이혼소송을 제기하니 배신감이 먼저 들었다.”
자식들이 엄마를 말려주길 바랐지만 두 자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라도 제대로 된 인생을 찾기 위한 엄마의 뜻을 존중한다며 부추기는 느낌마저 들었다.
법원은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장 씨에게 있다며 위자료 3000만 원을 아내에게 지급할 것과 아내의 몫으로 9500만 원의 재산분할을 결정했다. 장 씨는 재산분할금을 지급하기 위해 조만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정리하고 작은 평수로 옮긴다고 했다.
황혼이혼은 20년 이상 함께한 부부의 이혼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평균 연령 50대 이상의 이혼이 여기에 포함된다. 3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한 장 씨도 황혼이혼에 해당하는데 이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이혼부부 3쌍 중 1쌍이 황혼이혼이었을 정도다. 법원행정처에서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황혼이혼을 선택한 부부는 총 3만 2626쌍으로 전체 이혼 건수의 29.9%를 차지했다. 신혼이혼(결혼기간 4년 이하)의 비율 22.6%도 앞지른 수치다.
황혼이혼을 하는 시기는 자녀들이 장성해 부모로서의 부담이 사라지는 때다. 또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남은 생을 자유롭게 살길 바라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황혼이혼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법무법인 가족의 엄경천 대표변호사는 “과거와 달리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특히 자녀가 독립한 시점에서 여성이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것이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다. 황혼이혼은 은퇴와 맞물리는 시기다. 적절한 수입이 없는 경우라면 이혼 후의 삶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부부가 소유하던 부동산·동산을 2명의 개인으로 나누며 부가적 비용 소요도 크다. 외로움도 큰 문제가 된다. 자녀가 독립하는 시기에 이혼할 경우 1인 가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장인규 씨는 아파트를 정리한 후 1인 생활용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살림을 도맡아 하던 아내 없이 살면서 가사까지 책임져야 하니 막막하다고 했다. 장 씨는 아내가 마음을 돌리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단호한 아내의 태도에 속이 탄다고 했다.
엄 변호사는 “1991년 재산분할 청구권이 생기며 여성들의 이혼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상됐다”며 “황혼이혼에 대한 여성의 부담이 줄어들면서 이혼소송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는 가족의 기본단위다. 이혼은 부부 사이의 신뢰가 깨져 발생하는 극단적 가족의 해체다. 건강한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도 기본적인 예절과 대화가 필요하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처 주는 언행은 피하고 서로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표현이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은퇴를 맞는 시점에서는 달라진 생활환경에 남편과 아내 모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서로 간의 독립성을 보장해주고 사생활을 존중하는 태도도 겸비해야 한다. 부부 사이에 갈등을 인지하고 있다면 부부 상담을 통해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딸 키우기보다 손주 돌보는 게 더 어렵다”
중장년층은 은퇴 후 자녀의 학업, 결혼 등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며 부부 중심의 삶을 기대한다. 하지만 최근 손주 양육이 은퇴자들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와 같은 신조어도 낯설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2012년 발표한 조사에서 맞벌이 부부의 50.5%가 부모에게 육아를 도움 받는다고 답변했다. 워킹맘이 아닌 경우도 10.1%가 조부모와 함께 육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2014년 발표한 ‘서울시민이 희망하는 노후 생활’을 보면 정반대의 속마음이 드러난다. 조사 대상인 60세 이상의 서울시민 71.8%가 황혼육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손주 육아가 여가시간을 빼앗고 자녀와 갈등을 낳는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이영아(가명·35) 씨는 중소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맡고 있는 워킹맘이다. 출산휴가 후 이 씨가 바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근처에 사는 친정어머니 덕분이다. 친정어머니가 9개월 된 딸을 돌봐줘 매일 아이를 맡기고 출근한다. 이 씨가 받는 월급은 200만 원. 여기서 어머니께 매월 70만 원을 드리면 남는 월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가능한 맞벌이를 이어갈 생각이다.
이 씨는 “어머니는 손주가 태어나면 절대 봐주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막상 아이를 낳으니 믿고 맡길 곳이 엄마뿐이었다. 육아가 보통 일이 아닌데 엄마께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 씨의 어머니 홍은숙(가명·64) 씨도 편치만은 않다. 한없이 예쁜 손녀를 보고 있자면 즐겁지만 아이가 다칠까, 무슨 일이 생길까 늘 노심초사다. 홍 씨는 “딸이 먹는 것에 예민해 이유식을 만들 때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딸을 키울 때보다 손주를 돌보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점차 무릎과 손가락 관절에 이상이 오고 건강에도 무리가 생기는 것 같다. 한창 저축해야 할 시기인 딸이 건네는 용돈도 신경 쓰인다.
황혼육아는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갈등을 야기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는 “처음부터 손주 육아를 확실히 해주거나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섭섭함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만약 아이를 돌보기로 결정했다면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육아에 참여해 신체적, 심리적 부담을 덜어야 한다. 자녀에게서 육아 사례비를 받되, 황혼육아가 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자녀들이 인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 황혼육아에서 갈등을 빚는 가장 큰 원인이 육아 방식에 대한 견해차인 만큼 자녀와 수시로 대화하며 서로의 육아 방식을 이해하고 원칙을 세워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다.
임영주 대표는 “조부모가 손주를 키우는 일이 가족에 도움을 준다는 점과 그로 인해 자녀들의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은퇴자 스스로 황혼육아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상담, 망설이지 말고 무료로 받자!
베이비붐 세대는 대부분 노부모를 봉양했지만 자식에게서는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샌드위치 세대다. 부모 부양에 대한 견해를 묻는 통계청 조사에서도 자식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율이 1998년 89.9%에서 2016년에는 30.8%로 1/3수준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노후설계는 부부 중심으로 하되 외로운 노후가 되지 않도록 자식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방안들이 필요하다. 가족문제로 상담이 필요하다면 누구나 지역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무료 가족교육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중년기 가족교육 중년기 가족교육은 중·노년기에 나타나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한 지식, 중·노년기 부부관계 및 부모자녀관계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가족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경제교육 등을 통해 노후를 준비할 수 있게 한다.
• 노년기 가족교육 자녀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가족관계도 변화한다. 경제적 주도권을 갖고 있던 부모가 돌봄을 받게 되며 노년기의 가족들은 새로운 역할에 적응해야 한다. 노년기의 가족관계, 죽음 준비, 건강한 생활, 알뜰한 소비 등 노년기에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해 교육한다.
• 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전화 1577-9337
손주도 돌보고, 돈도 벌고!
요즘 육아에 적극 나서는 ‘할빠’ ‘할마’들이 적지 않다. 서울 서초구, 강동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손주 돌보미’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조부모로 확대한 형태다. 부모에게는 안심할 수 있는 육아를 제공하고 조부모에게는 경제력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서초구의 경우 할아버지, 할머니가 25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한 달에 40시간씩 손주를 돌보면 월 최대 24만 원을 지원한다. 이유식 만들기, 동화 구연, 응급처치 등 아이를 위한 수업과 ‘황혼육아 스트레스 관리법’과 같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도 있다.
강동구에서도 ‘조부모의 행복한 육아 교실’을 실시하고 있다. 신생아 목욕, 속싸개 싸는 방법, 연령별 이유식 영양 간식 조리법, 예방접종 일정 등을 알려준다. 강동구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통해 “손자녀 양육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노후 생활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단 ‘손주돌보미’ 프로그램 시행 여부는 지자체별로 다르므로 각 시·군·구 관할기관이나 건강가정지원센터에 확인이 필요하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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