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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이산가족·실향민의 포기할 수 없는 희망

“함경도 우리 고향 앞 바닷가로 나가는 길에 옹달샘이 하나 있습니다. 옹달샘 물 한 잔 떠서 시원하게 목을 축였던 기억이 나요. 고향 옹달샘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요. 그 옹달샘을 기억하는 사람도 아마 우리가 마지막이겠지요.”

2000년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모습

 2000년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모습 ⓒ뉴시스

아흔의 노구를 이끌고 기자와 마주 앉은 실향민 김송순 할머니가 68년 전 6·25전쟁 중 떠나온 휴전선 넘어 함경도 고향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4월 27일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6·25전쟁 당시 고향인 북한 지역을 떠나 대한민국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을 만났다.


“10년 전 동생 살아 있다는 소식 듣고 꿈만 같았어요”

김송순 할머니

 김송순 할머니 ⓒC영상미디어

김송순 할머니는 1950년 홀로 고향 함경남도 북청을 떠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 모두 고향에 남겨둔 채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지 68년이 흘렀지만 김 할머니는 고향을 떠나던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너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며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다른 실향민과 이산가족이 겪고 있는 애절함보다는 나은 형편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 친동생이 북한 고향에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이지만 동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확인할 수 있기에 가슴 한곳을 억누르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형제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동안 알지도 못했다”며 “이들이 보냈을 힘든 세월을 생각하면 늘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10년 전 처음 고향에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며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가 막혔지요. 동생이 보내준 편지를 보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계속 흘렀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동생이 보낸 편지로 처음 알게 됐는데 제 마음이 어땠겠어요. 형제들도 다 세상을 등지고 동생 한 명 살아서 가족이며 고향 이야기를 그렇게 편지에 적어 보내준 거예요. 그 편지를 잡고 있는 손이 너무 떨려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김 할머니는 곧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신문과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 기대와 바람, 그리고 걱정과 아쉬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후 혹시라도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기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만남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게 되면 수많은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쉬움과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제 나이 이제 90입니다. 68년 전 헤어진 동생과 하룻밤만이라도 얼굴 맞대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70년 가까운 시간 떨어져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족이 만나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고, 경계해야 하고, 묻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나눌 수 없다면 68년 만의 만남이 더 큰 아픔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김 할머니는 실향민, 이산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는 결정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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