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별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봅니다."
3년 전 호스피스 병동에서 유방암 말기였던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 이영우(가명) 씨는 아들, 딸과 함께 아직도 그 시간을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추억한다. 삶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 아내. 그리고 다시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 믿으며 다가오는 아내의 임종을 믿지 않은 그와 아이들은 임종 몇 시간 전에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호스피스 의료진의 상담과 권유로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들, 엄마와 딸은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각각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이자 엄마였던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의료진에게 "이별을 준비하라고 할 때는 의사선생님이 너무 야속했어요. 그런데 빈소가 차려지는 동안 생각해보니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하게 돼서 후회가 없어요.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로 분리된 구역이라 여겨지는 곳.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던 호스피스 병동에도 평범한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환자와 가족, 간호사는 환한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식사를 걱정하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또 병원 관계자와 환자의 벽은 허물어져 있었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 우리나라에서 매년 7만3000여 명의 암 환자가 사망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 호스피스 병상은 1100여 개로 호스피스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진은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영화 ‘목숨’의 한 장면.
호스피스, 환자 중심 치료 및 프로그램
환자와 가족 정서 · 심리상담 통해 죽음 준비
아주대병원 김경미 간호사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6년째 환자의 치료를 계획하고 증상을 관리할 뿐 아니라 환자·가족 심리상담 등으로 환자와 가족을 보살피고 있다.
김 간호사는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환자와 가족이 객관적인 결정을 내리기 힘들 때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곳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 병동을 환자를 죽음에 이를 때까지 방치해두는 곳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환자의 죽음에 대한 결정권이 의료진과 가족에게 있어요.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오히려 환자는 결정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완화의료병동(호스피스)에선 환자가 중심이에요."
호스피스 병동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봉사자가 한 팀이 되어 환자들을 돌본다. 환자의 증상 관리뿐 아니라 환자의 사회경제적 문제, 정서 상태 등을 전문의가 지속적으로 상담하며 환자의 안정을 돕고 있다.
프로그램도 임종교육 이외에 음악치료, 미술치료, 원예치료, 소원 들어주기 등을 다양하게 진행하며 환자와 정서적 교감을 이어간다. 또 가족들은 정서적, 심리적 상담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죽음이라는 낯선 영역을 알아간다.
호스피스 병동이 국내에 정착된 지는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심리상담 등으로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낸 사례가 생겨나면서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점점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전국에 호스피스 병상은 1100여 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7만3000여 명의 암 환자가 사망하고 있는 가운데 호스피스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아주대병원 호스피스 병동 또한 입소 대기기간이 일주일에서 길게는 3~4주까지 걸린다.
말기암 가정형 호스피스
3월 2일부터 17개 기관에서 시범 운영
2014년 보건복지부 조사 자료를 보면 국내 말기암 환자의 80~90%가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절반 이상의 암 환자가 적절한 통증 치료를 포함한 증상 관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김 간호사는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이 남은 시간을 잘 보내려는 말기암 환자 등에게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스피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호스피스 병동과 가정형 호스피스 등으로 인프라를 확보한다면 더욱 많은 이들이 웰다잉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웰다잉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아주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진료를 맡고 있는 종양혈액내과 이현우 교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죽음을 자연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맞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20년 전만 해도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74.7%가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환자의 75%가 병원 또는 객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어요. 웰다잉에 대해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죠."
현재 아주대병원은 가정형 호스피스 시범기관으로 선정돼 3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가정형 호스피스에 대해 김 교수는 "사실 많은 말기암 환자가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으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특히 존엄사 논란 속에서 남은 생을 가장 잘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책정된 수가 상황으로는 병원에서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레 내놓았다.
"실제로 가정 방문 호스피스를 하게 되면 한 가정당 2~3시간이 소요됩니다. 하루 약 9시간 근무하는 의료진을 기준으로 본다면 하루에 세 가정을 방문할 수 있는데 아직은 이에 대한 인프라가 미미한 실정입니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더 현실적인 지원방안이 나와야 전국적으로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이 정착될 수 있을 겁니다."
이 교수는 "예전에는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저조했지만 최근 10년간 정부가 호스피스 사업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면서 국민들의 호스피스 연명의료에 대한 의식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며 "호스피스 완화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국민들에게 죽음에 대한 건전한 인식을 심어나간다면 우리나라도 웰다잉을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탄생만큼이나 죽음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죽음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인식된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웰다잉이겠지요."
인터뷰 · 이현우 (아주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2016.02.29
글 · 박샛별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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