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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리 설 풍속, 어디서부터 왔을까

민족 최대의 명절로 불리는 설날. 때가 되면 으레 고향으로 가고 가족들을 만난다. 또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올린다. 하지만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언제부터 설날을 쇠었을까. ‘설날’이란 이름은 어디서 왔으며 떡국은 왜 먹을까. 유래를 짚어봤다.

 

복주머니 들고 있는 사람들

 

우선은 이름이다. 설날의 어원에는 약 세 가지 설(說)이 따라붙는다. 우선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이다. 새해는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다. 묵은해를 지나 새해를 맞기 전 단계인 설날은 낯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낯설다는 의미를 차용했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선날’이다.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돼 설날로 와전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섧다는 삼가다(謹愼) 혹은 ‘조심해 가만히 있다’라는 뜻이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생긴 말이다.

7세기 역사서에 드러난 설날 흔적

이렇게 이름 붙여진 설날을 우리는 언제부터 쇠었을까. 여러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언제부터 우리가 설날을 민족 최대 명절로 여기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역법(曆法) 제정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을 제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역법은 천체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으로 세시(歲時)를 정하는 방법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에는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역사서를 봐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할 수 있다. 설날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은 7세기 중국의 역사서에 나타난다. <수서(隋書)>와 <구당서(舊唐書)>의 신라 관련 기록을 보면 왕권국가에서의 설날의 면모가 잘 나타난다. “매년 정월 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 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봐서 오늘날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때 민족 명절로 자리 잡아

설날이 근세의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그 후의 일이다. 고려시대 들어서 설과 정월대보름, 삼짇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기 시작했다. <고려사>에 나오는 원정(元正) 등 9대 속절(俗節) 외에도 고려 속요(俗謠) ‘동동(動動)’을 비롯해 개인 문집에도 세시명절과 풍속에 대한 기록들이 다양하다. 오늘날 논의되는 설을 비롯한 각 달의 세시풍속은 고려 때 정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앞서 삼국시대에도 이미 설의 세시풍속이 상당히 있었다. 하지만 고려에 와서는 더욱 다양해졌으며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했다. 그렇다고 다른 명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세시명절이 전승되고 세시풍속이 행해졌다. 고려시대에는 팔관회와 연등회 등 불교 세시풍속이 강세를 이룬 반면,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설 차례를 비롯한 조상 제사가 중시되는 등 유교 세시풍속이 나름대로 힘을 발휘한 것도 특징이다.

떡국, 고대 태양숭배 신앙서 유래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떡국 먹기,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우선 설날의 대표음식 떡국을 보자. 설날의 음식을 통틀어 ‘설음식’ 또는 ‘세찬(歲饌)’이라고 하는데, 정월 초하루 제사 때 제물(祭物)로도 차리고 손님에게도 낸다.

떡국은 지금은 쇠고기나 닭고기로 끓이지만 옛날에는 꿩고기로 많이 했다고 한다. 설날에 흰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고대의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음의 표시로 흰색의 떡을 사용한 것이다.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설날에 마시는 술은 데우지 않고 차갑게 마시는데, <경도잡지(京都雜誌)>에서는 “술을 데우지 않는 것은 봄을 맞이하는 뜻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떡국을 만들고 나서는 차례를 지낸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을 갖춰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르다.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와 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한다.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다양한 세시풍속과 그 유래

설빔
정월 초하룻날 아침.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를 ‘설빔’이라고 하며 보통 대보름까지 입는다. 설빔의 어원은 ‘세비음’인데,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원일(元日) 조에 따르면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陰)’이라 한다고 했다.

덕담
일가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새해에는 합격하길 빕니다” 등과 같이 그 사람의 신분이나 장유(長幼)의 차이에 따라 소원을 빌어주며 서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열양세시기> 원일 조에도 “설날부터 사흘 동안 시내의 모든 남녀들이 왕래하느라 떠들썩하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길거리에 빛나며,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면서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문안비
설날에 여자는 세배를 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중류 이상 양반 가문의 부인들은 자기 대신 잘 차려입은 젊은 여종을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있는 집에 보내어 새해 인사를 전한다. 이때 새해 인사를 다니는 계집종을 일컬어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문안을 받는 집에서는 반드시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한 상 차려주며 약간의 세뱃돈도 준다.

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두는 습속이 있다. 이를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해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신앙도 있다.

야광귀 쫓기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만일 신을 잃어버리면 신 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신을 방 안에 들여놓는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두니 이는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또 세고, 세고 하다가 신을 신어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청참
새해 첫새벽에 거리로 나가 방향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소리로 그해 1년 중 자신의 신수(身數)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 데서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아니고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

참고자료 | 국립민속박물관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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